도란도란 프로젝트 - 마흔 두 번째 주제
어울져 오는 듯 하더니
그리 멈춰있나
오는 길마다
흔적을 두더니
이내 또 아스라이 멀어지더라
너는 그렇게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어룽어룽
모든 것들을 품었다
둥그렇고 깨끗한 그
훤히 보이는 속내에도
부끄럼 없이 일렁이며
부지런히
새로운 물길을 받아내고
욕심 부리지 않고
양껏 받아낸 물을 머금고
너는 다시 바닥으로
스르르
-Ram
커피향과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주로 카페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카페 테이블 위엔 쬐끔 오래된 맥북, 이면지 한뭉치, 잉크펜,(예전에는 잉크펜보다 볼펜을 선호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냥 이면지에 자유롭게 쓰기엔 잉크펜이 훨씬 가볍고 부드럽고 편하다. 볼펜은 깨알같이 필기할 때, 시험 등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할 때 등 또박또박 글씨를 꾹꾹 눌러쓸 때만 사용한다), 그리고 진동벨. 드륵 드르륵. 진동벨이 울린다. 주문한 아이스 커피가 나왔다. 신선한 원두인가보다. 얼음들 위로 크레마가 아직 남아있다. 빨대를 물고 커피를 한 입 쭉- 들이킨다. 유리컵 중간에 크레마 자국이 남는다. 대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수증기를 포함한 공기가 얼음과 커피가 가득 든 차가운 유리잔 주변에 다가온다. 찬 기운에 놀란 수증기는 결국 물방울이 되어 유리잔 주변에 다다다닥 붙어버린다. 물방울들은 모이고 또 모여, 주르륵 흘러내리고, 컵 밑바닥 주변에 동그랗게 원형을 이루며 테이블에 고인다. 옆에 커피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도 없이 맥북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가 컵에 눈길 한 번주지 않고 왼손만 뻗어서 컵을 쥐고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아까 있었던 자리가 아닌, 조금 더 왼쪽에 컵을 놓는다. 물방울들은 새로운 자리에 온 줄 어떻게 알고 또 그자리에 신나게 고인다. 이제 나는 오른손을 뻗어 이면지를 찾는다. 맥 뒤로 이면지가 손에 만져진다. 이면지를 내 앞쪽으로 끌어와 펜으로 글씨를 쓰려던 찰나, ‘앗!'하며 낮고 조용한 비명을 지른다. 이면지가 동글동글 테이블에 원형을 이루며 고여있던 물방울들을 살포시 덮었던 것이다. 한 장, 아니 한 두장의 이면지가 물방울들에게 점령당하고야 말았다. '흐으’. 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물방울들이 점령한 이면지를 가차없이 테이블 위에서 추방시킨다. 그 뒤로 나는 일하고 있을때 컵 아래에 물방울 고이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컵받침을 주는 카페를 선호하며, 컵받침을 주지 않는 카페에 가면 휴지를 이용해 그 물들이 테이블에 묻어 고이지 않게 컵 아래에 받쳐놓는다.
하긴. 이 뿐만이 아니다. 카페에서 일할 땐 내가 엄청 깐깐해지는 것 같다. 2014년 2월 2일 내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면 중간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집에서 머리 쓱 묶고, 옷 휘리릭 입고
맥 하나 옆에 끼고 집 앞 까페로 나왔다.
음,
근데 정말이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만 보아놓은 까페다.
커피 맛은 둘째치고……………………………
1. 동그란 테이블.
지금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음..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의 테이블만 동그랗다.
음..
2. 의자의 높이.
디자인 의자라서, 엉덩이 자리를 깊게 뺀 건 이해한다.
이해하는데, 의자가 너무 낮다. 의자가 너무 낮아 ㅜㅜ
나 그리 키가 크지도 않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지금 애써 옆으로 모아놨다. 헝
3. 카페 음악
선곡은 백 번 양보했다. 뭐 요즘 유행하는 노래 틀수도 있지. 자꾸 레리꼬 레리꼬 나오는데,
그래, 다들 엄청 좋아하는 노래니깐 괜찮아.
근데 자꾸 노래를 다 안듣고 끝에 잘라먹는건 뭐야 ㅜㅜ
끝까지 다 듣고 그냥 다음곡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주면 안되겠니….
———————————
이 날도 굉장히 뭔가 예민했었나보다. 불만 투성이였군. 원래 이런 투덜이가 아닌데 말이다. 와하하하하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카페에 있다. 오늘은 왠지 커피 대신 자몽티가 땡겨서 자몽티를 마시고 있다. 조금만 더 추워지고 찬바람이 쌩 불면 카푸치노를 마셔야지.
-Hee
1. 빗방울 소리가 참 좋던 공중전화박스에서
『 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또다시 비참한 심정으로 뒤돌아 설 테지만,
오늘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내가 너에게 전화를 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말야.
일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힘든 순간을 홀로 맞서기로 한 결정을 나는 잘 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오로지 홀로 놓여져 있는 힘든 순간에 유일하게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너야,
내 마음 속에 살고 있는 과거의 너가 지금의 나를 여전히 위로해준단다
비록 나의 꿈에서일 뿐이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따듯한지 몰라.
최근에도 그런 선명한 꿈을 꾸었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너와 헤어지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 보고 겪어 보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너는 보석처럼 홀로 빛을 내는 사람이구나
언젠가는 너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겠지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면 참 행복하겠지만
지금의 너는 내가 사랑했던 너와 다를 테니까
너는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어,
너에게 나보다 더 따듯하고 밝은 사람이 나타나길 함께 바랄게
그리고 나 역시도 언제나 너가 내게 바랬듯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분발하겠다
너의 목소리를 너무나 듣고 싶지만
그랬다간 바보같이 아파할 것 같아 이만 끊을게
잘! 지내렴 』
하지만, “여보세요” 수화기 넘어 들리는 차분하고 안정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 참 많이 컸구나, 목소리가 어른스러워졌다 ‘ 생각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따듯하고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가 차갑고 담담해 지는 것이 무서워
나는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누군가를 혼자서 좋아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라지만,
누군가에게 그이가 원치 않는 그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끔찍한 일일지도 모른다.
빗방울 소리가 참 좋던 공중전화박스에서 나와
우산을 쓰고 돌아선다.
물방울들은
깊게 눌러 쓴 우산과 상관없이
떨어져 흐른다.
2. 물방울과 기름방울이 서로 섞이지 못하는 것처럼
구태여 내가 나를 달래어 달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사소한 것들에 묻어 나오는 상처를 너는 견뎌내 줄 수 없었고, 나 역시 너의 상처를 달래줄 수 있을 만큼 어른스럽고 안정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요구 보다는 그저 이해해 주는 것, 가만히 들어주고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너의 심정을 공감하고 그 순간에 네 곁에 있어주는 것,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었고, 너 역시 나에게 그런 사람이길 바랬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나의 세상일 뿐이었고, 당신의 세상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나의 세상에서 나는 한방울 물방울이었고, 남녀노소 사회계층에 상관없이 어느 물방울이든 함께 흐를 수 있는 친구 같은 삶(그리고 큰 흐름을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이 내가 생각하는 삶이었다.
당신의 세상에서 당신은 모든 것에는 위치가 정해져 있고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사회계층에 따라 그에 걸맞은 언어와 행동 그리고 책임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당신은 무엇인가 해결되어야만 했고 무엇인가 해결 해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무엇이 해결되지 못하고 해결 해주지 못할 때 당신은 나를 밀어내었다.
당신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어, 누군가 한쪽은 그 상처를 해결해 줄 수 있어야지 않을까”
어쩌면 ‘공감’이 필요했던 것은 나의 상처였고, ‘해결’이 필요했던 것은 당신의 상처였을까? 나는 당신을 ‘공감’ 해줄 수 있었지만 ‘해결’ 해주지 못하였고, 당신은 ‘해결’ 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줄 순 있었지만 ‘공감’ 해주지는 못하였다.
물방울과 기름방울이 서로 섞이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린 다른 사람이었고 그렇게 멀어져 갈 뿐이었다.
-Cheol
당분간 휴재합니다.
-Min
2014년 10월 2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