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마흔 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그런 건 정말 싫어


의무감에 내뱉는 단어들,

감정 없이 내민 손,

마치 오늘 치

감정을 해치우려는 행동들이


사람을 더 비참하게 해.


매일을 뜨겁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서툴렀던

표현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무엇이든 네게

의무감만 남긴 관계가

나에게 무슨 감정으로 남겠어.


애써서 웃고,

안기는 시간은 그냥

우리의 어중간한 숙제일뿐,


아무 의미도, 미래도 없는

애매한 시간일 뿐.



-Ram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해묵은 미련들을 덜어내는 것.

영어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

러닝 컨디션을 늘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더욱 갈구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

아마 평생의 숙제.



-Hee


1.

어쩔 줄을 모른 채 걷다가, 마지못해 뛰었다가를 반복하며 겨우 끝마친 결혼식이 중간고사라면 이제부터 남은 삶을 지혜롭게 같이 살아가는 일이 기말고사일 것이다. 그야말로 지나치다 싶을 만큼 많은 과제물들이 기말시험을 대체하는 혹독한 과목. 나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방학숙제를 미리 해두고 가뿐한 마음으로 개학을 기다린 적 없는 학생이었고, 언제나 결과를 과정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긴 해야 할 것이라는 희미한 암시를 느낀다. 중간고사에서 깎아먹은 점수를 메울 만큼 좋은 성적을 위해서. 재수강을 면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로 최선을 다한 뒤의 후련한 마음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2.

전에 독서 동호회를 운영하며 책임감으로 독서를 하던 시절에는 매달 한두 번씩 서점에 들러 책을 사 왔었다. 먹는 데에 쓸 돈을 의식적으로 참으며 아껴뒀다가 책을 사서 읽는 데 소비하는 일은 개인적인 성취였고 일종의 취미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년이나 독서 동호회를 운영했음에도 끝내 독서는 습관이 되지 못했다. 엉뚱하게도 도서를 구매하는 일은 습관이 되어버려서, 읽지도 않을 책을 책장이 다 차버릴 때까지 정신 못 차리고 꾸준히 사들였었다.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마음으로 사 왔던 그 책 더미로부터 벌써 몇 년째 고통을 받는 중이다. 미니멀리즘을 운운하며 가진짐들을 다 내다 버릴 때도 책들 만큼은 차마 못 버렸다. 책을 몽땅 다 스캔해서 pdf 파일로 저장한 뒤에 중고서점에 팔거나 나눔할 계획으로 스캐너까지 구매했는데도 도무지 진전이 없다. 누군가 기한을 정하고 시켰으면 벌써 끝났을 일인데... 아 그냥 하기가 싫다...



-Ho


부모님의 말을 술회하자면, 나는 어릴적부터 어딜 가든 책을 놓지 않는 아이였다고 한다. 밥을 먹을 때나 어딜 움직일 때든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고. 그렇지만 다 자란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그저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고 평가할 만큼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직접적인 도움을 줬다고 자각했던 부분은 어릴적 상식 퀴즈에서 자유롭게 정답을 말하던 기억 뿐이다.


게다가 나는 엉뚱한 면도 없잖아서 다수가 읽고 해석하는 방식처럼 지식을 습득하는 대신, 꽂히는 문장 하나, 문단 하나로 글의 전체 주제를 파악했었다. 그리하여 숙제는 과학 과목 빼고 언제얼추 맞기 일쑤였다. 여기서 얼추란 열심히는 읽은 덕에 어느 정도 내용은 파악하고 있으나 꼼꼼한 친구들처럼 정답의 ‘극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 버릇은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아서, 숙제는 늘 재미있을때까지. 성적은 늘 커트라인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바야흐로 많이 읽어도 (다수의 방식으로) 제대로 읽지 않으면 소용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읽기를 숙제처럼 집어들었다면 나는 열등생에 그치고, 책은 내 손을 떠났으리라.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큰 어른이 성적이니, 숙제니 무슨 소리인가 싶을 지도 모른다. 그치만 돌아보면 우리는 깨나 많은 일상을 숙제처럼 한다. 제때 일어나기, 약속장소에 나가기, 가끔은 가면을 쓰고 말하기 등. 조금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능동적으로 하고 있다 여기는 일 중 다수는 세상이 나를 움직인다고 여길 수 있을 만하다. 그리하여 무기력한 사람들에게는 세상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은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숙제를 매번 지겨워하지 않았듯, 누군가에게는 이 숙제가 항상 즐거울 수 있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한 없이 간단한 일이라도 몸에 칼이라도 찬 것 처럼 무거울 수 있다. 숙제를 수행할 때는 자아가 한 없이 약해져 자신과 행동 사이에 의지가 유리될 소지가 크다. 재밌는 숙제는 더 이상 숙제가 아니다. 결국, 다수가 공감하는 숙제란 흥미와 의지가 분리된 채 남은 껍데기다. 마치 알맹이는 쏙 먹고, 쓰레기만 남았을 때, 그 불용품 뭉치가 숙제인 것이다. 그치만 쓰레기도 알맹이를 품었을 때까지는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정말 가끔 우리는 쓰레기 더미에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금은 비하의 의미라서 금기시 되고 있긴 하지만-게임 업계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출시 전에) 직접 해 보는 것을 “개밥 먹기”라고 칭하곤 했다. 개발 업계 사람들 중 다수는 매년 회고(retro)를 발행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 감상을 술회한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이것들은 말하자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행위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매일 가치있지 않은 것 처럼, 한 해의 하이라이트 중에서도 암부를 드러내어 다시 한 번 옥석을 찾아보는 것이다. 충분히 복잡해진 자기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한 번 어지를 준비를 하는 것일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이 숙제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수는 그 무게를 치우고 스스롤 정리 할 것이나 일부는 너무나 과중한 무게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마치 아이들의 미숙한 숙제를 봐주는 선생의 존재가 필요하듯이. 숙제는 꼭 100점으로 끝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다. 여러분의 삶이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 좋은 동료와 함께 커트라인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즐겁기를 바란다.



-소고


2022년 7월 2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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