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여든 다섯 번째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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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사랑인지 묻는다면
엄마가 남겨둔 메모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늘 덤벙거리고
자주 흘려듣던 나를 위해
혹은, 내가 말해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엄마 주변엔 늘
포스트잇이나 수첩 조각들이 즐비해있다.
몰래 그 조각들을 들여다보면
언젠가 나에게 사달라고 할 화장품,
기타 학원에서 배운 코드,
집에 똑 떨어진 장볼 것들 등등
두서 없이 적혀있곤 했다.
그때 그때마다 휘갈겨 쓴
어른의 글씨체로
나이스 투 미츄 같은
영어를 한글로 풀어 쓴 말이 쓰여 있을 때면
온통 복잡한 마음 뿐이다.
늘 무엇이든 오케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저 메모장들이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을지,
나의 삶과
그녀의 시간, 그리고 가족의 불편함 같은 것들을
저 메모장 속에 빼곡히 써놓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잔뜩 눌러쓴 것들 중에
나의 생일과, 나의 집주소
그리고 동생의 기숙사 주소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녀의 삶엔 아직도
온통 내가 메모 조각 만큼이나
불면 날아갈까, 젖어들까, 구겨질까 싶은
그런 사람인가보다.
그걸 어떻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어.
-Ram
짧은 생일 축하 메세지부터 마음을 꾹꾹 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길어진 이메일, 누구든 받기 싫은 장문의 카톡 메세지, 줄줄 외우고 들어갈 프레젠테이션 스크립트, 러프하지만 실속 있는 디테일한 여행 일정, 간단한 회의 내용, 온갖 플로우, 생전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 없는 영어 인터뷰 내용, 도무지 외울 수 없는 해외 주소, 일주일에 한번 써 내려가는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글, 유튜브나 구글링하다 우연히 만난 영어 문장과 단어들,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적 또는 물적 자원들, 로딩 화면 때부터 이미 무거움이 느껴지면서 다시 켜보기도 싫은 항공사 앱에서 복사한 예약번호. 아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더 많고 다양한 내용들이 새하얀 메모장에 기록됐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엔 5월에 출발해서 한 달 넘게 있을 방콕의 숙소 후보들이 메모장을 스쳐 지나간다. 이제 곧 결정을 해야지. 며칠 전 새로 산 운동화와 함께 무더운 방콕 시내를 누벼봐야지.
-Hee
고등학생 때 사용하던 Mp3 플레이어가 고장이 나면서 애써 모은 플레이리스트가 몽땅 다 사라져버렸을 때 비로소 나는 해묵은 음악 취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롭게 태어난 취향은 잡식성으로 자라났다. 수용할 수 있는 폭이 이전보다 대단히 넓어진 셈이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상실감은 금세 사라졌다.
신중하게 찍은 필름 매거진 십수 개를 통째로 잃어버렸을 때도, (클라우드 대신 외장하드를 사용하던 시절) 핸드폰을 잃어버리면서 몇 년 간 찍었던 사진들을 잃어버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허탈한 마음을 잘 이겨내고 나면, 계속 쌓여나가는 나의 현재에 과거의 무언가가 껴들 틈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매달 클라우드 용량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요즘에야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메모장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면 아마 여태 겪은 적 없는 큰 좌절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단지 취향을 잃어버리는 문제를 넘어 20대의 나를 모두 잃어버린 기분이 들 테니까. 그렇다고 어디 다른 곳에다 옮겨둘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다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 뒤에 맞이하게 될 다음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Ho
2023년 4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