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여든 네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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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길목마다

너로 물들어있었다.


우연히

너의 기억이 묻은 곳들을

지나갈 때에


자꾸만 너를 떠올리게 된다는

그 사실이

나를 붙잡는다.


그런 날들이

자꾸만 너를 붙잡나보다.


우연한 것들인 줄 알았던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다 너로 물들어 있던

익숙한 것들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우연한 모든 순간을.



-Ram


1.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가다 순간 라쳇 소리가 들리면 순간 멈칫하며 마음이 일렁이는 때가 있었다. 특히 해가 갓 뜨려고 하는 아주 이른 아침엔 더욱. 그렇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가 점점 멀어지는 한 떼의 로드를 멍하니 보다 다시 정신차리고 마음을 다 잡는다. 그래, 어딜 가나 그때의 나를 마주칠 수 있고, 그저 그때의 나 일뿐이었다고. 수도 없는 다독임 속에 섞인 과거들이 뒤섞이고 뒤섞이며 덩어리를 이뤄 나를 덮치려고 할 때 나는 빵 반죽을 스크래퍼로 가르듯 순간순간을 곱씹으며 정면으로 맞선다. 나는 그때 충분히 행복했었고, 전혀 아쉽지 않은 선택들이었다고 나를 위로하면서.


2.

신기하게 영어 단어를 공부하다 보면 며칠 전 내가 공부한 영어 단어가 다른 곳에서 쓰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엔 그런 단어 중 하나가 rummage였다. 어떤 사람은 냉장고를 뒤질 때 rummage를 쓰고, 또 어떤 사람은 꽁꽁 싼 이삿짐 바스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때 rummage를 썼다. 다음 주엔 어떤 단어들이 내 눈에 띌지 궁금하다.



-Hee


사고처럼 발생한 우연한 일 앞에서 누군가는 평소의 태도와 습관을 찾고, 누군가는 전생의 업보까지 돌아본다. 언젠가의 나도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믿었었다. 아마 스스로를 쥐어 짜내며 노력하는 일에 자신감이 조금 있었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욕도 조금 있었고, 나도 사회도 어설프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만큼 멍청했던 것 같다. 자신감도 의욕도 없이 속편하게 살고 싶은 요즘은 모든 일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일들이다.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일. 머리도 아프지 않고 속도 편하다. 내가 어쩔 수없는 불완전함을 조금이나마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것인지, 어리석게 편협한 방향으로만 뻗어나가고 있는 것인지는 역시 모르겠다. 이게 틀렸다는 것을 언젠가 깨닫게 된다면 아 그렇구나~ 하고 다시 고치면 되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냥 모르고 싶기도 하다.



-Ho


2023년 4월 1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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