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쉰 세 번째 주제
여행 중 멘붕으로 휴재합니다
-Ram
시선이 마주쳤다.
어떤 이의 시선1.
‘종종 우체국에 와서 택배를 보내는 그녀다. 오늘 신고 온 부츠가 예쁘네. 가방도 내가 한번도 사본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네. 그녀가 묻는다. 저울에 택배 무게를 재봐도 되냐고. 항상 무언가를 뽁뽁이에 고이 싸서 들고오는데, 대충 화장품인것 같기도 하면서, 어떨때는 접시같기도 하고. 그렇게 뽁뽁이채로 들고와서 1호박스를 자연스럽게 꺼내어 물건을 담는다. 처음에는 상자를 패킹하는것도 서툴렀는데, 이제는 곧잘한다. 해외로 보내는 일이 잦아 무게에 민감한 그녀다. 인터넷에서 미리 조사를 해왔는지, 특정 국가로 보낼때 무게가 어느정도 나가야 어떤 요금이 부과되는지 잘 알고 있다. 아, 그런 적도 있었다. 지난 번에도 어김없이 무게를 재보는데, 무게가 살짝 넘어가서 그녀가 당황하며 다시 패킹을 풀어, 포장했던 뽁뽁이의 남는 부분을 거의 남김없이 잘라버렸다. 그리고 다시 패킹해서 가져왔는데, 아직도 무게가 오바되었다. 완전 당황한 그녀는 어떻게 해야되지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국장님이 상자 날개를 아예 잘라서 무게를 맞춰준 적도 있었었지. 원래 국장님이 그런 건 잘 안해주시는데 그날따라 직접 상자 패킹도 해주시고. 아, 맞다. 내일이 크리스마스구나. 그녀한테 뭐하냐고 물어봐야겠다. 어머, 남자친구를 만난다고 해맑게 이야기를 하네. 좋겠다. 나는 그냥 집에서 남편이랑 보내야 하는데. 괜히 데이트마저 부럽다. 나도 예전에 그랬을 때가 있었는데.’
어떤 이의 시선2.
'이번에 보낼 택배는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북유럽이니 3국가에 해당되겠지. 그쪽 지역은 택배를 많이 보내봤으니, 뭐 오늘도 무게가 많이 넘지는 않을거야. 1호 박스를 꺼내서 포장을 하자. 아, 우체국에 있는 그, 명칭도 잘 모르겠는 박스테이프 도구. 박스테이프를 스카치테이프처럼 편하게 잘라 쓰라고 있는 도구인데, 나는 그게 참 어렵네. 스카치테이프처럼 얇지도 않아서 자르는데 애 먹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 톱니부분으로 자르려다가 박스테이프가 잘리진 않고 보기싫게 주욱 늘어나기만 하고. 쳇. 그냥 그 도구에 끼워져 있는 박스테이프를 죽 늘려서 가위로 자르자. 박스 포장은 다 했고, 이제 포스트잇에 적어온 주소를 잘 맞춰서 붙이고, 마지막으로 CN22도 잘 보이게 붙이면.. 완성! 빨리 접수하고 전철타러 가야겠다. 아, 대기자가 조금 있네. 기다려야지. 저 여자분은 항상 친절하다. 예전에도 거의 처음 우체국와서 택배보낼때,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 언제든 올때마다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이제 얼굴도 어느정도 익혀서 아는척도 하시고. 아, 맞다. 예전 여름에 내 가방이랑 시계를 보고 예쁘다며 어디꺼냐고 물어보시고. 예쁘게 봐주셔서 기분이 좋았지. 나중에 올땐 비타오백이라도 하나 사서 갖다드려야겠다. 드디어 내 차례네. 오늘도 어김없이 항상 웃는 얼굴이라 기분이 좋다. 아, 크리스마스인데 뭐하냐고 물어보시네. 웃으면서 말씀드렸더니, 갑자기 울상인 표정으로 좋겠다며, 부럽다며, 자기는 남편이랑 집에 있는다고 하신다. 음. 남자친구든 남편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랑 있으면 좋지 않나? 결혼해서 명칭만 바뀌었을 뿐인데, 왜 저런 반응이신지.. 물론 결혼하면 연애랑은 다르다고 하지만, 난 저렇게 되긴 싫다.’
-Hee
하얀 바닥에 검은 매트가 깔려있고 군데 군데 운동기구들이 놓여있다. 그곳에는 동그란 안경을 끼고 붉은색 트레이닝복과 검은바지를 입고 있는 분주한 청년이 있다. 사람들에게 운동을 시작할 때 알아두면 좋은 사소한 지식들을 전달하면서 여느 때보다 바쁜 1월을 보내던 청년은 문득 고민에 빠졌다.
‘다시는 봄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다 청년은 이런 해괴 망측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일까?청년의 입장에서 돌아보자면 사실 그는 지금 고민 같은 건 하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을 돕는데 분주하다. 그럼에도 그 청년은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주제 ‘같으면서도 다른’에 대한 생각의 끈을 마음 한 켠에 잡아두고 있다. ‘다시는 봄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해괴 망측한 생각은 바로 그 주제를 생각하다가 튀어나온 것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그 주제를 생각하면서 청년에게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계절’이다.
일정 범위 내에서의 전체적인 변화와 흐름에서 보자면 ‘계절’은 매번 동일하게, 그것도 일정하게 정해진 주기로 찾아온다.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언제나 같은’ 변화인 것이다. 우리는 그 주기 (즉 일정한 단위) 속에 존재한다. 매번 돌아가는 주기는 같지만(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시공간 속에서), 그 단위 속에 존재하는 우리(만물)는 매번 다르다.
어찌되었든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결국 ‘다시는 봄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해내고 만다.
‘다시는 봄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계절의 변화는 나의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에 다시 투영된다. 봄이 되어 꽃이 피고, 여름이 되어 뜨겁게 달아오르며 가을이 되면 쓸쓸히 지기도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다시는 아무것도 없다. 대신 ‘사랑’의 계절은 현실의 시간단위로 일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평생에 걸쳐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 ‘사랑의 계절’은 약 4년에서 5년의 시간을 걸쳐 겨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봄이 오는 듯, 몇 번의 꽃이 피었으나 진정으로 봄이 오지는 않았다. 지난 겨울과 지금의 겨울을 나고 있는 나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정말로 다시 봄이 올까?’
‘올까?’
‘오나?’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아마 당연히 온다고 대답해줄까?
그러면 나는,
‘에이~ 정말?’
봄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입가엔 작은 여유의 미소가 어려있다. 사랑의 계절의 각각의 때에 차근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숙했기 때문일까? 이 겨울이 구태여 싫지는 않은 까닭이다.
나를 다시 한번 꽃 피워줄 찬란한 봄. 그런게 다시 올까?
어쨌든, ‘같으면서도 다른’ 그 것. 큰 의미에서는 나에게는 사랑이라는 같은 개념. 하지만 작은 의미에서는 나에게 찾아올 전혀 다른 대상. 그 것은 바로 당신일까?
-Cheol
20대의 연애는 만남보다는 헤어짐이 힘들었던 것 같다. 뭐 그렇다고 좋은 이성을 만나는 것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저런 이유로 끝나는 과정들이 시작보다 더 힘들었을 뿐이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들은 항상 비슷한 패턴을 보였는데 예술을 좋아했고, 감성적이었고, 이상적이었다. 내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여자에게 끌렸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내가 여자를 보는 기준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내가 즐기는 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선한 인간성이었다. 외모라든지, 가치관이라든지, 종교관이라든지, 가정환경, 직업, 소비패턴 등등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보는 몇 가지 기준들이 늘어나곤 했지만, 20대의 연애야 뭐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만한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20대의 사랑과 연애는 달콤한 만큼 끝이 썼다. 웃긴 것은 처음은 다 비슷하고, 괜찮았는데 그 끝은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나는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해가 갈수록 외모가 좀 늙고 약간의 가치관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말투, 종교, 학벌, 가정환경, 취향, 성격 같은 것들은 바뀌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글쎄, 물론 사람마다 항상 자신을 똑같은 방식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만나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다. 하지만 그 문제가 아니다. 이성이자 애인으로서의 존재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가진 벽을 허물어 보여주기 마련이다. 사랑은 희생을 요구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감추는 이는 매우 드물다. 하여간, 분명 비슷한 기준과 호감에 끌려서 눈이 맞은 두 사람이 끝에는 정말 악연이 되어 추하게 끝나게 될 수도 있고, 진한 감정은 아니어도 그래도 꾸준히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는 좋은 친구로 남게 되기도 한다는 것은 여전히 내게 놀라운 일처럼 느껴진다.
가장 더럽게 헤어진 경우와 가장 좋게 헤어진 경우를 한 번 생각해보면 그 사이에는 ‘조건 있는 요구와 조건 없는 지원’이 있었다. 한 여자는 내게 자신이 사랑을 주는 것에 대한 수많은 조건들을 요구했다. 자신의 여유 있는 삶과 여행, 심지어는 나의 직업도 그녀가 원하는 직업으로 바꿔주길 원했다. 그녀는 내가 가진 꿈과 이상을 완전히 짓밟아놓았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시에는 헤어지자고 했다. 결혼은 원래 계약이라지만, 사랑도 누군가에게는 조건이자 계약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완전히 정이 떨어져서 단칼에 헤어지자고 했고, 헤어져서 속이 후련한 첫 여자였다. 반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준 여자도 있었다. 그녀는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어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녀는 내가 해주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조건 없이 해주었다. 심적으로 힘들 때 그녀는 내가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또한 그녀의 선물은 3만원을 넘는 것이 없었지만 그녀의 선물에서 300만원이 넘는 선물이 해줄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종교 및 여러 이유로 헤어지긴 했지만 좋게 헤어졌고, 그녀나 나나 헤어진 이후에 좋은 친구가 되어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일반화하기는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사귄 대부분의 한국 여자들은 “내가 남자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혹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둘이 함께 힘을 모아 앞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라는 것보다 “내 남자라면 당연히 날 사랑하니까 나를 위해 뭘 해줘야지” 라거나 내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밖에서 응당 헌신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혹여 나이가 먹어서까지 여자가 밖에서 일을 하면, 남편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시선을 받을까봐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의 희생은 사랑의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나이가 차고 사회 경험을 한 여자들의 대부분은 일을 그만두고 가정에서 가사 일만 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러한 오래된 분업방식이 남녀차별을 지속시키고 사회발전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를 나온 여자도 일을 해서 경제활동에 참여해야하고, 남자도 아이를 돌보거나 빨래를 하거나 요리를 능숙하게 잘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다시 돌아오자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바로 좋은 이성친구이자 배우자라는 것이다. 사랑은 “~이 있어야 혹은 ~이 되어야” 가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이다. 흔히 이야기를 하기를 “콩깍지가 씌였다.”고 표현되는 것들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러한 출발선조차 없다면 과연 연인관계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누군가 ‘연애’라는 것을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이다. 사랑이 비정상적인 감정의 폭풍이라면 연애는 그 사랑의 감정이 식어가는 과정이다. 사랑의 감정은 연애를 통해서 벗겨지고 옅어지며 다른 것으로 변형된다. 만약 그것이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확신’으로 이어질 때,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성과 사랑 그리고 연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TV에서도 무수히 쏟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정리된 것은 이러하다.
-Bor
2015년 1월 1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