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쉰 두 번째 주제
소세지 가족
첫째 분홍소세지 언니
말캉말캉.
연분홍빛 살결이 보드랍기도 하지.
샛노란 계란옷을 벗은 듯 입은 듯
기묘하게 걸쳐서
수줍고 꽤나 정갈하게 자리에 착착.
둘째 캔 소세지 오빠
딸칵, 딱딱한 겉옷을 벗으면
단단하고 뭉툭한 폼새.
그래도 생각보다 짠돌이
투박하지만 별다른 악세사리 없이도
자체만으로도 완벽
셋째 후랑크 소세지 동생
매끈매끈.
구릿빛 피부 그리고 날렵한 몸.
그중 가장 제일은
포실포실한 밀가루 옷을
양껏 뒤집어 입고는
새빠알간 케찹으로 마무리.
-Ram
새해 첫 날, 가족끼리 회에 술 한 잔씩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말했다.
‘나는 엄마랑 뒤에 너랑 진희랑 온가족 다 태우고 어디 놀러가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아빠 차 뒤에 타고 어디 갔던 일이 은근히 많았는데,
점점 커가고, 하는 일이 생기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리저리 바빠지면서 아빠 차 뒤에 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매일 같이 늦게 집에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가고, 어떨땐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빠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하루를 지나칠때도 많았다.
그래도 가족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며, 밤에 드라마를 볼 시간에 나도 거실에 나가 같이 앉아 있긴 하지만,
드라마가 정말 내겐 재미없고, 또 그 옆에서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일이 많아 같이 있어도 있는 게 아닌 적도 많았다.
마음속으로는 가족이랑 함께 대화를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래야 된다는걸 알면서도 실제로는 그게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가족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주말에 시간을 더 많이 내어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러가고, 여행도 가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렇게 회를 다 먹고나서 동생이랑 아이스크림을 사러 옷을 한 네 겹씩 두둑하게 입고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면서 종종 레스토랑이든 어디든 맛있는 식당을 예약해서 엄마아빠 모시고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역시 동생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포장해서 집에 오는 중에,
나는 가족들이랑 있을 때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 생각을 해보았다.
멋진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가족끼리 여행갈때? 생일때?
모두 아니였다.
나는 저녁에 아빠가 나보다 늦게 퇴근하셔서 맥주 안주거리를 찾으실 때,
냉장실 맨 윗칸 신선실에 있는 비엔나소세지를 꺼내어,
가위로 톡톡톡 칼집을 낸 다음에,
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넣고 달달 달달 볶아 소세지의 칼집이 벌어질 때 쯔음,
예쁜 접시에다가 옮겨 담고,
옆에 귀여운 종지에 케챱을 쭉 짜서,
아빠를 부를때가 가장 행복한 때 였다.
물론 아빠와 엄마, 어쩔때는 진희까지 다 같이 먹을때가 가장 행복하다.
귀여운 소세지들은 종종 나를 행복하게 한다.
-Hee
1.
나에게는 아직은 비워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후배들과의 이야기 중에 누군가 물었다.
“그럼 오빠는 그 비워낼 수 없다는 사람과 지금 만난다는 그 사람 둘 모두를 마음에 품고 있는거에요?”
나는 대답한다
“아니야 내 의지로 마음에 두는 사람은 지금 만나는 그 사람뿐이야. 다만 아직 비워낼 수 없는 그 사람은 내 무의식에 존재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의식적으로 어찌하지 못할 뿐이야. 그저 애써 외면할 뿐이지. 대신 이러한 내 속마음에 대해서 언제나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솔직하려 노력하고 있어”
나누었던 수 많은 대화들 중에 하필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내 머리속에서 쉬이 떠나주질 않는다.
소세지 한봉지를 뜯어 칼집을 내고, 후라이팬에 담백히 굽는다.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면서 생각해본다.
친구보다 더 가까운 나의 연인
연인보다 더 가까운 친구 같은 사람.
유일하게 나의 삶을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해주었던 사람.
누군가와 주고받은 깊은 믿음이란건 이렇듯 부정할 수가 없고 그저 외면할 뿐인 걸.
그래도 이제는 건강한 마음으로 그사람과 그 사람의 연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여유는 되니까.
나는 나를 담담히 아낄 뿐이다.
-Cheol
나의 외할머니네 집은 용산에 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 살아오고 계시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용산에 살면서 아는 한 분은 미군장교와 결혼하여 지금도 용산에 살고 있다고 들었다. 여러모로 그 세대는 미군이나 미국제품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세대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는 그 친구의 집에서 미국산 용품들을 구매해왔다. 아마 30년도 더 전이니까… 남대문 수입상가가 아니고서야 미국산 제품을 살 길은 사실상 없었을 때였다. 미군 남편이 군부대 PX에서 싸게 산 미제 물건들을 집에 가지고 오곤 했는데, 당시 물건이 너무 좋은 나머지 입소문을 타고 옆집과 그 옆집 그리고 동네 전체로 퍼져나간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그 집을 일명 ‘미제집’이라고 불렀는데, 미제집 할머니도 그 당시 이게 사업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는지 남편에게 물건을 많이 사다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물건을 집에 쌓아두면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식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어릴 적에 외할머니댁에 자주 갔었는데 미제 물건을 사랑하는 할머니의 냉장고는 내겐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캔디, 과자, 잼, 쥬스, 햄 등등이 미국 제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제품은 지금도 생산되는 Goober잼이었는데 땅콩과 포도가 유리병에 예쁘게 담겨있었고 잼 맛이 너무 좋아서 숟가락으로 계속 퍼먹다가 혼났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던 음식이 바로 미제 소세지였다. 국산 비엔나 소세지와는 차원이 다른 아주 맛있는 고기맛이 났는데 씹을 때 식감이 부드러워서 좋아했다. 다만, 짠맛이 강해서 오랜 시간 물에 끊여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마요네즈와 케찹을 적당히 섞어서 소세지와 함께 나에게 주곤 했는데 나는 그것을 엄청 좋아했다. 그리고 그 소세지맛에 길들여진 것 같다. 지금도 소세지를 살 때는 미제 소세지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편이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입맛을 물려줬고 어머니는 그 입맛을 내게 물려줬다. 세대를 이어서 주는 것이 있다지만 대부분 그것은 ‘성(Last Name)’을 제외하고는 나는 입맛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모두 바뀐다. 가치관, 입는 옷, 생활습관 등등 모든 것이 바뀐다.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바로 입맛이다. 나는 그 점에 참 대단하면서 무서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 자식이 그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가훈도 아니고 성격도 아니고 어떤 기술도 아니고 입맛이라니 놀랍다. 아주 오래전 한국의 조상들이 김치를 만들었고 후대 사람들이 이제는 그것이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만들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이것이 음식의 권력 혹은 입맛의 힘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은 약간은 특이한 입맛을 개발한 경우이고, 나 또한 이것을 좀 이상하지만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이 가진 힘과 더불어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속에 담긴 사랑 같다. 더 좋은 것을 자식들에게 해먹이려는 의지, 혹은 그 사랑. 이제 외할머니는 나이가 드셨고 우리에게 더 이상 요리를 해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가 종종 외할머니의 반찬을 해드리는 편이다. 종종 어머니가 코스트코나 남대문을 들러서 미제 소세지를 들고 집에 오는 날이면 종종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때 즐겁게 식사를 했던 때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나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Bor
2015년 1월 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