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물음"

도란도란 프로젝트 - 쉰 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나는 잘 하고 있는건가?


가끔 술술 풀리는 듯한 하루하루에도
돌부리에 걸리듯 턱턱 막혀
감정이 사무치도록 깊은 곳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아마 누구에게나 그럴테지


슬픈 노래를 찾아 듣거나
여느때와 다름없는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괜시리 뒤적이며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외롭다거나 좌절스럽다거나
그런 거창한 단어로 표현되는 감정이 아니지만
물론 슬럼프나 우울하다는 것 또한 아니지만


오묘하고 애매한. 그리고 일렁이는 속내.
선을 긋지 못하는 자아 성찰의 기간이 오면
미묘한 감정의 틀 안에서 스스로를 내려다보게 된다.


나는 잘 하고 있는걸가?
지금 걷는 방향이 맞는 건가,
지나온 시간에 비해 쌓아둔 것이 너무 없진 않은가.


이런 물음을 던져보곤 한다
얼마나 바보같은 질문인지도 모른채로 그렇게 깊은
심연으로 스스로 들어가 잔뜩 웅크려보곤 한다.

스스로 물음을 던지며 답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성숙'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하기도 한다.


무엇이던간에 돌아본다는 것은 썩 나쁘지 않다.
내 것이 아니면 훌훌 털어내고
쥐었던 사실 조차 몰랐던 내 것을 고쳐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오늘도 잘 하고 있었나?


-Ram


며칠 남겨두지 않은 2014년 끄트머리에서 내게 묻는 질문.



Q1.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걸까?


Q2.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관계를 더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Q3.
궁극적으로 나는 어떤 행복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Q4.
작년보다 올해, 지난달보다 이번 달, 지난주보다 이번 주,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삶인가?


Q5.
무의식중에 괜히 지금 맞닥뜨려진 상황이나, 또는 타인을 탓하고 있는건 아닐까?


Q6.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Q7.
지금 나는 행복한가?


Q8.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
.


나의 대답은,



-Hee


내 인생의 물음은 ‘인간성(human nature)’에 있다. 넓게는 인간성이 포함하는 대부분의 것들에 걸쳐 있지만, 좁게는 어떠한 인간으로서 내 인생을 채워나갈 것인가에 한정되어 있다. 인간성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인물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기에 나 역시 인간성에 대한 나의 추상적인 느낌을 구체적으로 선명히 할 필요가 있다.


나의 영혼 안에 존재 하는 인간에 대한 상은 미완성된 하나의 거대한 조각물과 같아서, 정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물음과 물음으로 조금씩 그 형태의 완성이 진행되어 간다. 형태가 불분명한 나무조각을 조각해 나가듯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 마다 조금씩 내가 느끼는 인간에 대한 상을 만드는 것이다.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해석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에 따르면 19세기까지 서구에서 생각하는 절대 가치와 진리는 기독교 도덕이었는데, 니체는 당시의 종교가 기독교 도덕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치를 강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고 한다. 그 도덕은 살아있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진짜가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그렇다면 근대의 돈과 이윤은 현대의 새로운 절대 가치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 맥락에서 나는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돈과 이윤에 의한 삶의 기준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권력의 존재를 인식(지금 당장 당신의 페이스북을 들어가보라. 재력과 돈을 뽐내고 싶어하는 무수한 게시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었다. (이 문단의 내용은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엮고, 박재현이 옮긴 ‘니체의 말’에 의거한다)


바야흐로 시대는 변하였다. ‘니체가 살던 현재’는 ‘과거’가 되었고, ‘내가 살아가는 현재’가 새롭게 열리고 있다. 절대 가치로 인정될만한 헤게모니의 흐름은 ‘기독교 도덕’에서 ‘돈과 이윤’으로 그리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니체가 살던 현재’의 시점에 ‘기독교 도덕’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였기에 그 가치가 ‘돈과 이윤’으로 변하였고, 또한 현대시대에 ‘돈과 이윤’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기에(미디어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에서도 인간성의 기준에 대한 이러한 비판과 갈등은 붉어져 나온다, 적어도 나의 가정에서는 그렇다) 다시금 ‘무엇’인가를 향해 흘러가는 것이다.


나의 대지를 물들이는 ‘인간성’이라는 특징. 그것의 존재와 그 존재의 인식은 중요하다. 내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가서 드는 생각일지는 모르겠다만, 인간성에 대한 기준이 상이한 사람과 함께 살기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성의 기준은 우리 삶의 많은 행동과 판단에 두루두루 걸쳐 영향을 미치는데, 매 번의 행동과 판단마다 서로가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때때로 당혹스러운 이유는 아직 그 사람의 기저에 깔려있는 인간성을 확인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의 매력에 운명처럼 빠져들고 오로지 그이를 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재 스물 여덟 살이 끝나가는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나의 삶에 주어진 천방지축 같은 젋음에 그저 천둥처럼 기뻐할 뿐이다.


-Cheol


얼마 전에 힐링 캠프를 봤다.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나 이슈가 되는 프로그램은 종종 다운을 받아서 보는 편인데 김영하씨가 출연한 힐링 캠프가 그러했다. 강연의 화두는 ‘내 인생의 물음’이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품고 있었던 물음’에 대한 이야기. 문득 “20대라는 10년의 시간동안에 나의 머릿속을 맴돌던 물음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에 미쳤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9년간 대학진학이라는 커다란 목표의 아래에 살아왔던 내게,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다음 목표를 어떤 것으로 설정해야하나?”


“내가 잘하는 일과 내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일이 조화된 나만의 일은 무엇인가?”


“내가 행복을 느끼는 삶은 과연 어떤 삶인가?” 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큰 범주로 보자면 ‘비전’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서 젊을 때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책 안에서만 살았던 내게 그런 것들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다양한 곳을 여행가는 것, 두 번째로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보는 것, 세 번째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상황에 있을 때,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배우는지 알고 싶었다. 또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말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한 인생 경험의 수치를 20대에 올리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서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지도 알고 싶었다. 이것은 내가 나의 비전을 형성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0대에 다양한 활동을 했다. 대학교 생활 외에 싸이월드의 영화감상클럽에서 몇 년간 활동하면서 관심 있는 예술분야에 대한 스터디를 매주 진행했고, 정모나 번개모임에 나가면서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격주로 모여서 소규모 문학 동호회 활동도 했고, 학교에 영어신문사 동아리활동도 해봤다. 여행의 경우는 주로 혼자서 간 곳이 많은데 제주도와 강릉, 속초, 동해, 춘천, 고성, 부산, 진도 및 해남을 포함한 남도답사, 21일간 갔던 450km의 국토대장정 완주, 7개월간의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있었다. 그 외에 대기업 대외활동, 봉사활동, 그 외에 20가지 정도의 아르바이트, 8번의 연애 등등 생각해보니 참 많은 것을 한 것 같다. 그 중에서 내 인생에 있어 내가 가장 즐겁고 행복한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운 것은 ‘호주에서의 삶’ 이었다. 가장 자유로웠고 정신적으로 가장 덜 우울했다. 얼마 전 호주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고 난 후, 온몸에서 전율이 밀려들어왔는데 그것은 그런 행복감을 서울에서는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슬픔과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 느낌을 다시 느낄 수는 없는걸까? 무엇 때문에 그 시절 행복감을 느꼈던 걸까? 나는 생각 끝에 3가지 정도 이유를 생각했다.



1) 첫 자취생활에서 오는 해방감과 자유감?


2) 낯선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느끼는 새로움에 대한 설렘?


3) 새 출발 혹은 꿈과 희망에 대한 기대감?



이번에 한국에서의 독립을 시작하면서 나는 호주에서 맛보았던 그 행복감을 기대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행복감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본가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해서 나만의 삶을 새롭게 꾸려간다는 좋은 느낌도 있었지만, 집을 나오고 나서부터 경제적인 부담감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버는 돈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더욱이 준비만 해도 모자른 시간을 쪼개어 청소나 요리, 빨래 같은 곳에 사용해야한다. 돈도 아깝지만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 같다. 마음만 급해진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 대한 글들을 요즘 부쩍 많이 접한다. 읽지는 않았지만 후루이치 노리토시 저자가 지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가장 행복을 많이 느낀다’라는 조사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웃음으로 비유를 하자면 자조와 같다. 더 이상 희망하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으므로써 행복을 얻는 것.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의 불가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사회주의 철학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랄까. 거의 속세를 떠나서 욕심을 버리고 현재에만 사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겠으나 그 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패배주의’라고 본다. ‘난 안돼.“ ’우린 안 될 거야” “해서 뭐해” 가 세대에 걸쳐서 뿌리 깊게 박혀있는데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일종의 행복이라기보다는 위안에 가깝다. 그런 위안에 절어서 헤엄을 치는 것이 바로 사토리 세대가 아닐까. 난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 욕망으로 발전해왔다고 믿는다. 그리고 행복은 바로 미래를 꿈꾸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꿈을 꾸고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행복에 가장 가깝게 가는 법 이라고 믿는다. 이것을 체험하고 깨달았던 것이 바로 나의 호주 생활이었다. 나는 힘든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내 노동에 대한 충분한 보수를 받고 있었고 현재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는 소수의 친구들보다 더 많은 돈을 그 당시 매달 저축하고 있었다. 그 돈으로 나는 현재는 힘든 일을 하지만 교육을 통해서 더 편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유학을 통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삶을 배우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성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견디며 버틴다고 표현하는 현재의 삶에서 다른 꿈을 꾸기 갈수록 힘들어져서 그런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나만의 노력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인생에 대한 물음에 대한 결론은 아직까지는 “나의 노동이 충분하게 보상받는 일을 하거나 그에 준하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에서 일하면서 사는 것” 이다. 어떤 일을 하던지 일에 대한 만족감은 나의 경우는 비슷했다. 다만 사회에 대한 보상은 너무도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다. 이제까지 살면서 느꼈던 것은 나는 꿈이 많은 사람이며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의 버킷리스트 속에는 아직 지워야할 것들이 많다. 올해까지는 새 삶을 적응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좀 더 전진하며 성장하고 싶다.


-Bor


2014년 12월 2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매거진의 이전글"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