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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람 Nov 01. 2024

"비트코인 가격은 올랐지만 마음은 식었다"

<욕망의 슈퍼싸이클>전, 작가 지코(GI.KO)의 비트코인 변심 이유

"인간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최근 전쟁 겪으면서 깨달아"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서 11월4일까지 전시



A dream of a big hit /116.8x91.0cm/Acrylic on canvas/2024


서울 종로구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서 열린 '욕망의 슈퍼싸이클'(Supercycle of Desire) 팝아트 전시회. 3층 전시장에 들어서자 미키마우스와 판다, 캡틴 아메리카 등 미국과 중국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 비트코인을 튕기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분명 작품 속 서사는 유쾌한데 풍기는 이미지가 어딘지 모르게 괴기스럽다. 4층으로 올라가 후반부 작품들을 보니 비로소 작가의 의도가 선명해진다. 작품 속 캐릭터들의 천진했던 웃음기는 이내 냉소로 확인된다.


지난 25일 '욕망의 슈퍼싸이클'전 오프닝 행사장에서 만난 작가 지코(GI.KO). 지난 5월 전시회 준비를 알리며 비트코인의 미래를 예찬했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다. 5개월 동안 22개의 비트코인 관련 작품을 그리면서, 코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도 달라져 있었다.


가상화폐도 비트코인도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했다.


작가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의 권위를 확인하는 시대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결국 가상화폐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주관적 평가를 작품에 녹여냈다.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은 비트코인을 주요 소재로,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을 시각화했다. 가상화폐와 투자 심리를 배경으로 인간들이 끝없이 추구하는 부와 권력, 그로 인해 형성되는 사회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탐구했다.


작품에서 이러한 양가감정이 묻어나는 이유는 작가 본인이 가상화폐의 '변심자'이기 때문이다. 한 때 비트코인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투자자였던 작가는 가상화폐가 발명 초기 내세웠던 비전들이 허상이었다고 자조한다.


비트코인의 비전에 따르면 '전쟁이 나면 가상화폐를 해외 지갑으로 보내서 찾으면 된다. 일반 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화폐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실제 전쟁에 벌어지니 다 거짓말로 드러났다.


작품에는 마블의 슈퍼영웅들,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나리자, 달러를 태우고 비트코인을 높이든 자유의여신상 등이 비트코인과의 새로운 맥락을 모색한다.


"너무 과도하게 몰입하지도, 너무 무리해서 작품을 해석하려 하지도 말아달라"고 한 작가의 당부와는 달리, 작품 곳곳에 선명하게 각인된 소비주의와 인간 욕망에 대한 노골적인 질문들이 도전적으로 다가온다.

China Jackpot/116.8x80.3cm/Mix media on canvas/2024


작가는 AI와 포토샵을 활용해 작품의 초반 밑그림을 설계하고, 이 위에 손으로 페인팅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AI와 포토샵은 창작 과정에서 독특한 패턴과 구조를 만들어 내는 데는 도움을 주었지만, 인간의 감성과 디테일을 충분히 구현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작가의 고유한 색감과 터치가 작품의 핵심일 수밖에 없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특히 이번 작품들에서는 작가가 쓰는 '색'의 접근이 이전 작품들과 크게 달라졌다. 아크릴 물감 단 8가지 색상만 사용해 화면을 구성하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것.


색상의 제한은 오히려 상상력의 폭을 넓혀주는 도전으로 작용했다. 이 작업 과정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은 극대화되었다.


이번 작품 활동 초기에는 박성완 작가와 모나리자 연작을 함께 그렸다. 지코 작가가 그리던 그림에 박 작가가 덧칠하고 여기에 다시 지코 작가가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서로 대화하듯 작품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박 작가의 '8가지 색' 접근법은 지코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박 작가가 현재 지코 작가의 그림들의 스승인 셈이다.

작품 'Super cycle' 연작을 그리고 있는 지코 작가./사진=황보람 기자


작가의 세계 인식은 그동안 구축해 온 커리어와 작품 활동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동안 작가는 베트남전, 위안부 문제 등 '전쟁'을 소재로한 작품들을 깊게 다뤄왔다. 이번 전시회 준비 과정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주관적 심상이 변한 것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상화폐가 기대했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데 대한 통렬한 성찰의 결과다.


전쟁터에서 아이들은 다 죽어가고 있는데 미국과 중국은 패권 경쟁에 혈안이 되어 뒤에서 이익을 취했다. 가상화폐가 시민 권력을 실현해 주는 대체제가 된다는 것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였던 거다. 비트코인이 전세계를 연결하는 기축통화가 될 것이라는 환상도 깨져 버렸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이나 팝아트적인 요소는 만화를 전공으로 하고 만평을 그려온 작가의 세계 접근법이다.

지코 작가는 고경일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현재 사단법인 우리만화연대 회장을 맡고 있다. 교토세이카대학 예술학부에서 만화학과와 카툰만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미술연구학과 풍자미술전공으로 졸업했다. '주가홍성'에서 만화작가로 데뷔한 이래 한겨레신문 등에서 시사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 서사를 보았을 때, 예찬에서 시작된 작품이 비판으로 끝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컷우두머리들의 전쟁/159.0x45.5cm/Mix media on canvas/2024


결국 작가의 마지막 작품에서 비트코인은 코카콜라, 맥도널드와 같은 자본주의의 표상으로 의미가 전락한다. '수컷우두머리의 전쟁'에선 비트코인이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코카콜라=미국 자본주의'라는 도식에 따라 비트코인은 코카콜라로 대체되어 전쟁과 폭력의 상징으로 함축됐다.


전시회 오프닝이 3일 정도 남았을 때, 헬기가 뜨고 코카콜라 폭격이 떨어지는 그림이 불현듯 떠올랐다. 분노에 휩싸여 그 힘으로 밤새 작품을 그렸다.

출렁이던 비트코인이 현재 1억원을 눈앞에 둔 상황 속 작가의 마음은 어떨까. 작가는 비트코인에 '비전'이 상실된 만큼 변동되는 가격과 가치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고 했다.


피카소의 말처럼 '예술가는 파괴하기 위해 창조한다'. 현재의 허상과 욕망을 넘어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인간과 예술에 대한 투자야말로 진정한 의미가 있다.


*위 글은 Viewers에 2024.10.30 게재된 기사입니다.

https://theviewers.co.kr/ViewM.aspx?No=342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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