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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Jan 28. 2024

10년지기 친구와의 손절과정 2

작았던 균열들은 삶의 어느 장면에서 서서히 봉합되거나 오히려 벌어진다.



우리의 균열은 여행을 계기로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업무차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속해 있는 오랜 모임의 친구들이 나를 만난다는 당당한(!) 핑계를 대고 여행을 계획했다. 우리의 여행은 평소에도 주로 내가 계획하고 추진했으므로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친구들이 묶을 적당한 레지던스와 한국인의 입맛에 딱 카페와 식당들로 루트를 짜고 그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여행 준비단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집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비싼 여행티켓으로 가고 싶지 않다. 더 저렴한 곳을 알아보겠다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고, 결국 비행기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모두가 비싼 표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본인은 아이를 떼어놓고 여행 가는 게 영 탐탁지 않다며 우리에게 죄책감을 함께 갖기를 종용했다.

그녀의 모성본능과 절약정신에 학을 떼며 비행기값이 더 오르는 것을 못 기다린 몇몇 친구들은 일정을 따로 잡아 개별 티켓을 구매했고,

결국 그녀는 혼자 같은 비행기에 떨어진 좌석에 앉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역시 내가 계획한 루트를 따르며 모두가 만족했고, 그들은 이왕 타국에 왔으니 다른 도시도 둘러보겠다며 제2의 일정을 소화하러 떠났다. 물론 모성이 짙은 그녀는 일정을 늘리면서까지 여정을 즐길 수 없었다.

혼자 귀국하게 된 그녀를 혼자 공항에 가게 하는 것은 너무 하다 싶어, 그녀의 귀국 비행기가 뜰 때까지 같이 공항에서 무려 3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10년 만에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비밀처럼 감춰뒀던 그녀의 어릴 적 상처들이 지금의 모성과 불안에 기저에 있었구나 싶어 나는 연민을 담아 그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었다. 말 그대로 그녀는 방언 터지듯 자신의 이이갸를 끝없이 털어놓았다. 그렇게 찹찹한 심정으로 그녀를  혼자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여행에서 혼자 돌아간 그녀는 못내 아쉬웠는지 아니면 서러웠는지 자신의 복잡한 감정과 서운함을 한꺼번에 드러내더니,

단톡방에서 갑자기 나가버렸다.


그때 깨달았다. 상호 간의 불편한 감정은 절대 일방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그녀와의 만남이나 그녀가 가진 가치관이 부담스럽듯, 그녀 또한 우리와의 약속과 모임들이 힘들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얼마뒤에 왜 자신을 붙잡지 않냐며 다시 서운하다는 말과 함께 모임에 들어오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너무


자유로웠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가 없는 모임은 지극히 ‘자유로웠다’

이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약속장소를 정했고, 불쑥 그녀의 남편이나  아이가 들이닥칠 걱정이 필요 없었다.

주차장 따위가 있건 말건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마음껏 보냈다.


-아. 진작 이랬어야 하는 거였구나.


이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맛본 뒤, 나는 더 이상 불편한 관계를 끌고 가면서 나를 갊아먹는 행위들을 일절 줄였다.

그 인연의  수명은 그때가 다였구나 하고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었다.

떠나는 인연은 물처럼 흘려보냈어야 했다.

중력을 이기거나 물살을 거슬러가면서까지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은 언젠가 나까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할 뿐이었다.


간혹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더라도 나는 그녀를 떠올리지 않는다.

서러운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이 나와 그녀는 그저 아무런 관계가 아닌 ‘무’의 관계가 되었다면 이해가 될까?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한 시간이나 공간을 함께 하던 사람과 간극이 너무 벌어져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그럴 때는 누군가를 원망할 것도, 상대와의 추억을 아쉬워할 것도 없이 추억은 추억대로 남겨두면 된다.


일정 시간이 지난후,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 다면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속해 있는 공간이 비슷했기 때문이지,

영혼을 나눌 만큼 깊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일 게다.

지속되는 관계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은

소화되지 않은 채 얽혀있던 많은 관계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어느 날, 정말 우연히 우리가 만났을 때

그녀가 인사를 해온다면, 나는 아마 잠시나마 다정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곁을 떠날 것이다.

더 이상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은 관계는 새롭게 피어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녀는 그녀의 삶의 방식대로 말이다.

부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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