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from Argentina는 이도리가 아르헨티나에서 Independent Research를 하면서 방문한 많은 곳에서 직접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며 수집한 기록들을 소중한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April 23, 2015
위 사진은 공원에서 제일 상징적인 기념비네요.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이 벽을 보고 이 길고 긴 벽에 쓰인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숨이 탁 막혔어요. 이렇게 끝없는 이름들이 나열된 벽면만 총 4개나 되었어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짧은 기간 (1976~1983년)에 희생을 당했구나… 인간의 탈을 쓰고 이 많은 사람들을… 그것도 아주 어린아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학대한 걸 보며 아르헨티나의 홀로코스트가 불과 30년 4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너무 믿기지가 않았어요 (물론 북한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지만…).
이 벽을 보면 사람의 이름이랑 나이가 새겨져 있는데, 연령대가 대부분 20대인 다 제 또래였어요.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시기에 너무도 허무하게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물론 국가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기념비도 만들고 이름도 새기고 했겠지만, 한 뼘 조차 되지 않는 높이의 벽돌에 그들의 이름과 나이만 적기엔 그 벽돌이 너무 초라하고 작아 보였어요. 만약 아직까지 이들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쯤은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훨씬 더 빛나고 훌륭한 사람들로 기억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냥 이들의 짧고 비극적인 삶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 공원을 방문하기 전에 꽃을 잔뜩 샀어요 (무슨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할지 몰라 삐질삐질거리면서 꽃도 사고할 건 다 했답니다…^^;;). 이 30,000명의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위해서 다 꽃을 주진 못하지만, 아이를 임신한 채 운명한 ‘어머니’들을 위해 꽃 한 송이라도 주고 싶었어요.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아직 세상 밖을 나오지조차 못한 아이에게 몹쓸 엄마라는 죄책감에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 같은 임산부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꽃을 사 갔는데, 세상에…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너무 놀랐어요. 사진 찍은 것 중에 ‘embrazada’라는 게 ‘임신 중’이라는 뜻인데, embrazada가 적힌 벽돌이 너무도 많았어요. 정말 너무 속상했어요.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 위에 떠 있어요. 첫 번째 사진에 나온 것과 같이 조그마한 소년 동상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 작품의 제목은 ‘Reconstruccion del retratode Pablo Miguez (Reconstruction of the portrait of Pablo Miguez)’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Pablo Miguez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14살 어린 소년이에요.
이 장소는 ‘Plan Condor’의 일환으로 death plane에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마약을 투입한 후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곳이래요. Pablo Miguez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14살의 아주 어린 나이에 이렇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게 너무 안타까워서 만든 작품이래요.
다음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실종자의 가족이라 더 마음이 아팠어요. 이 작품의 제목은 '30,000’인데, 군사정권 기간에 사라진 실종자들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숫자라고 배웠어요. 이 작품은 25개의 수직으로 된 하얀색 배경에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pole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보는 사람 시각에 따라 그림이 달리 보여요. 오직 한 optimum 한 각도에서만 검은 페인트들이 제대로 합쳐져서 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요. 그 각도를 찾았을 때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예술가의 아버지래요. 이 예술가의 아버지는 1977년에 실종된 이후로 찾을 수 없었대요. 일단 나타나는 형상의 모습이 흔히 제가 본 다큐멘터리나 박물관을 갔을 때 보았던 수많은 실종자들의 이미지를 담은 흑백사진과 흡사했어요.
한 각도에서만 찾을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히 느낀 건, 실종자의 가족들에게까지 대를 이어서 이런 공포정치로 인한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겁니다. 어제 다녀온 Madres de plaza de Mayo에서는 실종자들의 어머니와 할머니, 이 작품에서는 그의 자녀까지… 거의 4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것 같아요. 1976~1983년 동안의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잘못된 정권이 수천 수백만명의 가족들을 아직도 그 공포정치의 트라우마에서 못 벗어나게 한다는 게 정말 끔찍하고 안타까웠어요. 동시에, 우리나라가 언젠간 통일이 되면, 북한이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을 박해하고 두려움을 떨게 했으니, 정권이 무너지고 난 이후에도 그 피해가 엄청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속에 돌덩이가 떨어지는 느낌이었죠.
다음 작품은 제가 따로 분리해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의 역사적 흐름을 교통표지판 형식으로 공원의 길을 따라 쭈욱 설치해놨어요. 당시의 전반적인 경제, 문화, 정치를 다 표현한 거라 내용도 굉장히 많고, 무엇보다 교통표지판의 형식을 이용해서 매우 간단하지만 강렬한 색과 단순화된 이미지로 내용이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역광이라서 앞에서 찍은 게 너무 어두워 보이죠..?
‘Se Vende’라는 표현은 영어로 ‘For Sale’이라는 뜻과 같아요. 즉 당시 군사정권이 들어오고 나서 이전 Juan Peron(아르헨티나에서 포퓰리즘 정치를 한 대통령) 때의 경제 정책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거죠. 이전 Peron은 국가 경제의 자립을 위해서 외국 기업을 모두 국영화시키는 등 다소 보호주의적인 경제를 추구해왔다면, 군사정권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완전 다시 신자유주의로 바뀌어 이전에 국영화했던 전화, 우체국, 철도, 전기, 물 등등을 다시 외국 기업에게 팔아 민영화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았죠. 갑작스럽게 공공서비스들이 민영화가 되면서 값이 엄청나게 오르면서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갔죠. 그러자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궁핍해지고 살기가 어려워졌죠. 이 표지판은 군사정부의 그런 생각 없는 경제정책을 비꼬듯 단순하게 표현한 것 같아요.
여기 표시된 이 많은 장소가 민중 학살이 systematical 하게 진행된 곳들이래요.
이 표지판은 저를 정말 분노하게 만들었어요. 이 표지판은 보시다시피 아르헨이 열광하는 축구를 나타내요. 대신 그 밑에 조그마한 텔레비전으로 ‘espacio cedido alterrorismo de estado’라고 쓰여있죠. 우리말로 의역하면 ‘공포정치를 위한 방송’ 뭐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시기가 너무 피비린내가 나니까 아르헨이 국제 사회가 자신들의 인권 탄압을 알아버릴까 두려워, 대외적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고취시키기 위해 축구 강국으로 만들고, 그러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이런 쪽으로 돌린 거죠. 일단 축구가 재미있고 자극적이니까,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이런 군사 정부의 악행에 둔감해진 거죠. 국제 사회도 아르헨의 공포정치 보단 축구를 잘하는 국가로 아르헨을 인정하게 된 거죠.
이 표지판을 보는데, 또 우리나라랑 겹쳤어요. 우리나라 전두환 대통령 때 우민화 정책이 떠올라서 더더욱 소름 끼치게 싫었어요. 제가 더 분노했던 건, 이런 축구 강대국의 이미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엄청난 대규모의 축구 경기장을 새롭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이 장소에 모여들여 축구를 관람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 장소가 제가 저번에 다녀온 남미에서 가장 끔찍한 detention center인 ESMA랑 불과 500m 정도 떨어진 곳이라는 거죠. ESMA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축구 광팬들의 응원가에 묻혔다는 게 너무 화가 나요.
’ 10,000 정치범’…..
아르헨의 경제가 결정적으로 망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이 군사 정권 때 해외로부터 막대한 돈을 빌려오면서 빚이 쌓이고 쌓인 거래요. 여기서 ‘Deuda’가 뜻하는 건 ‘빚’이라는 뜻입니다. 명목상으로 돈을 해외로부터 빌려올 때는 ‘Deuda publica’의 이유에서 즉, 나라의 공익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해놓고, 표지판에서 보이는 것처럼 결국 가지고 들어와서는 ‘privada’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네들 배불리 먹고 노는데 쓰이는 사적인 이유로 돈을 썼다는 거죠.
‘Deuda Externa’ 외국에 지는 빚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죠.
‘사상이 불순한’ 자들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집을 저렇게 했답니다. 제가 5월 세 번째 주에 가게 될 ‘Casa Marini’라는 집이 그중에 대표적인 집입니다. 다녀와서 더 말씀드릴게요.
이 표지판은 1976년 9월 16일에 발생한 “La noche de los lapices”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요. 당시 La Plata(Casa Marini가 있는 지역)라는 지역의 고등학생들을 납치, 고문, 강간을 했던 사건이었죠. 더 자세한 내용은(http://en.wikipedia.org/wiki/Night_of_the_Pencils) 여기서 찾아보세요. 저도 이 표지판 보고 집에 와서 다시 찾아봤는데…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이 표지판이 보여주는 건, 제일 처음 실종자들의 가족이 내었던 슬로건이래요. ‘Aparicion con vida’라는 말은 ‘Alive’ 즉 ‘(실종된 가족이) 살아있다’라는 뜻이래요. 이 하얀 손수건을 들며, ‘con vida! Con vida!’ 외치던 행진이 지금의 Madres de la Plaza de Mayo의 모태인 거죠.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Madres de la Plaza de Mayo의 상징 마크가 하얀 손수건이거든요. 어제도 봤는데, 하얀 손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행진하는 게 대표적인데, 아마 이 표지판에서 보이는 하얀 손수건에서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 ‘con vida’와 관련되어서 제가 어제 본 것 중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Madres de la Plaza de Mayo 느낀 점 이야기할 때 할게요.
다음 표지판들은 "Letters from Argentina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