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s from Argentina는 이도리가 아르헨티나에서 Independent Research를 하면서 방문한 많은 곳에서 직접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며 수집한 기록들을 소중한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May 12, 2015
Ex Olimpo에서 만난 담당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인터뷰가 스페인어로 진행이 되었고, 이것을 제가 영어로, 그리고 이 편지에 담기 위해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려요)
“실종자들에 대한 정의 구현과 군사 정권에 대한 처벌을 불과 10년 전에서야 언급할 수 있었다. Ex Olimpo도 겨우 10년 전에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장소가 다 이런 의미 있는 장소로 변한 것을 아니다. (아직까지도 숨겨진 곳도 있다) 그래도 정부 차원에서 직접 나서서 과거 수용소와 인권 유린으로 악명 높았던 곳들을 이런 역사적 기념관으로 만들고, 실종자 개개인에 대한 사연과 이유, 그 이후의 이야기들에 대한 진상 조사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나섰다. (사실 군사정권이 물러나자마자 나서 민주주의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정의 구현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군사의 세력이 너무 세고, 당시 아르헨 경제 위기를 포함해 Alfonsin 대통령의 힘이 너무 없어서 이런 정의 구현을 강행하기 어려워서 오랫동안 덮어두고 있었어요)
아르헨티나에만 400개가 넘는 수용소가 있다. Ex Olimpo는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 도시 중심가에 위치해 있던 악명 높은 수용소 중 하나다.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수용되어 있었고 그중에 생존자는 오직 90명. 이 중 몇몇 사람은 생존해서 나오기도 하는데, 이렇게 살려두는 이유는 이 사람들이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했을 때 이웃 사람들이 이 사람들의 상태를 공포심이 들게 하기 위해였다. 심한 고문을 받고 일상생활로 돌아온 사람들의 비록 가정으로 다시 돌아오긴 했어도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가고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게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공포심을 조장해 현 정부에 반하면 이런 처참한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Ex Olimpo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중심지에 있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장소에 대한 루머와 이야기들을 다 듣고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에 함부로 이야기는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이 동네에서 70년대 80년대에 살던 이웃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묻혀왔던 사실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Ex Olimpo에서 만난 담당자와의 인터뷰 계속….)
Ex Olimpo는 과거 수용소로 쓰였던 흔적이 많이 있었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서 공포정치가 끝날 때 즈음에 그런 흔적들을 다 파괴하고 숨겼지만,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이게 다 드러나게 되었다. 증거물들을 감추기 위해 없앤 흔적들까지도 낱낱이 드러났다. 이 장소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키기 위해 창문이나 문들이 다 벽돌로 쌓여 막혀있었다.
이곳에 있었던 300명 정도의 수용자의 신원조회가 안되기 때문에 이 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몇몇의 사람들에 대해선 알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굳이 정부와 관련된 단체가 아니더라도 그냥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에 안 들고, 조금만이라도 바른말을 하고 바른 생각을 하면 다 잡아다가 죽였다. 이 곳에 희생된 수감자 중에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단체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끌려간 사람도 있고, 독재 정부의 연락망을 막고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려고 한 단체도 있다. 군사 정권은 이들을 다 테러 단체로 간주하고, 사회에 악을 끼쳐서가 아니라 정부가 강행하려는 공포정치에 반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어떠한 이유에서든 다 끌고 갔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을 미디어를 이용해 그들을 마치 괴물처럼, 위험한 사람처럼 취급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민간인들 사이에서 이들을 매우 위험하고 사회의 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그들은 폭력에 저항했지, 폭력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진압은 미국과 프랑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냉전 이후 공산주의의 세력이 밀고 들어오는 것이 두려워서 일단 공포정치로 공산주의의 싹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시민들의 인식 사이에 공산주의의에 대한 공포스러움을 심어 놓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군사정부는 미국과 프랑스로부터 고문 등등의 기술을 배워서 칠레나 우루과이 브라질에 직접 실행을 옮기기 시작했다.”
-Ex Olimpo 가이드 Maru와의 인터뷰 중에서…-
Ex Olimpo는 사실 두 번이나 가게 된 곳이라 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 주에 한번 더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여러 번 방문하게 된 이유는 일단 이곳을 방문하려면 예약을 해야 해요. 모두에게 다 공개적으로 개개인이 가서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은 미리 예약을 하고, 가이드와 함께 이곳을 둘러보게 되어있어요. 처음엔 그걸 몰라서 그냥 갔다가 결국 들을 수 있긴 했는데, 너무 늦어서 이미 많은 부분의 설명을 놓쳤고, 모든 설명이 스페인어로 되어있어서 듣기도 어려웠고, 이해하기도 어려워서 목요일에는 예약을 하고 다시 갔는데, 제가 그날은 또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투어 가이드 설명을 다 못 듣고 그냥 나와야 해서 다음 주에 다시 갈 것 같아요. 일단 무튼 그래도 전반적인 장소에 대한 느낌은 받았고, 운 좋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어요.
이 장소는 버스 종착역이라서 버스들이 주차되는 주차장 같은 용도로 쓰였는데, 표면적인 용도는 그러하고, 지금은 공개되었지만 78년에는 철저히 숨겨진 주차장 옆으로 가려진 또 다른 장소가 있는데, 거기는 수용소의 용도로 쓰였어요. 철저히 벽돌로 가려져 있고, 장소가 굉장히 암울하기 그지없어요. 수용소의 모든 장소를 다 돌아보긴 했는데, 설명을 제대로 못 들어서 장소 장소마다의 설명은 다음 주에 다시 다녀온 후 해드릴게요. 지금인 일단 제 느낌과 들었던 생각들 위주로 정리할게요.
이 장소가 공포정치에 악용되었던 기간은 비교적 굉장히 짧아요. 78년 10월부터 79년 1월까지 고작 3개월 정도 쓰였다고 해요.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도 그렇고 고정된 곳에 사람들을 가두어 두다 보면, 루머가 퍼지고 퍼져서 이 장소에 대한 사실이 밝혀질까 봐 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장소를 5번 옮겨 다녔대요. 그리고 이 Ex Olimpo는 그중에 3번째 장소래요.
빛이 들어오는 통로는 전혀 없어요. 모든 입구를 다 벽돌로 막아서 전혀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매우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는 그대로 있어요. 또 새로웠던 게, ESMA에서는 개개인이 각각 다른 사유에서 끌려왔다면, 이 곳에는 같은 단체의 회원들이 한꺼번에 끌려온 경우가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장애인 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던 회원들, 기독교 관련 단체 회원들 등등 같은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예 union 자체를 없애고 사람들이 모여서 정부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인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출구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심보를 읽을 수 있었어요.
곳곳에 당시 이곳에서 숨진 실종자들에 대한 사진들이 있었는데, 사진들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많은 사진들이 증명사진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찍거나 친구들과 즐거운 소풍을 가거나, 클럽 활동, 여가 활동 등을 하다가 찍은 매우 candid한 사진들이라 사진 속의 미소가 꾸밈없어서 더 슬펐어요.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던 사람이 최후의 순간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저렇게 행복했을 때는 과연 78년의 공포의 시기가 올지 예감했을까? 하는 온통 별 생각이 나면서, 그 사진 속의 인물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냥 그게 더 마음을 힘들게 했어요.
또 이곳에서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가, 이곳에 수용되었던 수감자들 밑에 “(별명)”이 있었어요. 그래서 왜 이런 별명이 붙었냐고 물어보니, 다른 이유는 아니고 이 사람들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실명을 쓰지 않고, 이렇게 가명으로 불리고 썼대요. 그래서 요즘 이들의 진상조사를 하고 같이 수용되었던 수감자들을 통해서 증언을 받을 때도, 가명과 실명이 match 되지 않아서 고생하고 있대요.
(http://exccdolimpo.org.ar/index.php/companeros)
진짜 너무하다 싶었어요. 인권을 모조리 빼앗아가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름조차 못 쓰게 했다니 정말 어쩜 이러지… 생각도 했어요. 그러면서 생각났던 사람이 Robert cox예요. 이 사람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헤럴드에 실종자의 실명의 쓰는 게 얼마나 군사 정부 입장에선 무섭고 싫었을까. 그리고 Cox 입장에선 이게 단순히 이름을 쓰는 것 그 이상의 역할과 의미를 가지고 있었구나. 진짜 용감한 일을 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또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가, 투어를 갔을 때 저랑 같이 투어를 다닌 사람들이 모두 다 고등학생들이었어요. 요즘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기저기 관련된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제가 놀라고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것 중에 하나가 어딜 가나 아주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이곳도 그랬고, ESMA도 그랬고, 오월 광장도 그랬고, 어딜 가나 나이 많고 이 시대를 직접 경험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어른들이 아니라 대부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었어요.
역사 유적지로 수학여행을 산만해하고 지루해하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과 달리 이곳 학생들은 너무나도 열심히 듣고, 받아쓰고, 질문하고, 게다가 너무 감정이입을 한 나머지 많은 여자 아이들이 설명을 듣다 엉엉 울기도 했어요. 문화충격이었어요.... 얼마나 역사와 가깝게 느껴서 공감하면 저렇게 울까...? 저 정도면 학교에서 얼마나 이 사건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알고 공감을 하기에 저러는 걸까 생각이 들면서, 새삼 아르헨의 역사 교육이 너무 부러웠어요. 그리고 나중에 다 끝나고 물어보니, 이렇게 이런 곳 방문하고 참여하고 하는 것들이 다 의무교육 중 일부래요. 정말 부러웠죠. 최소한 아르헨은 이후에 같은 실수를 범하진 않겠구나…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열심히 역사를 보고, 배우고, 느끼면 나중에 역사를 잊은 나라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해 진흙탕에서 질퍽일 때 아르헨은 조심조심 피해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부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