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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 Lee May 18. 2020

인현왕후, 참으면 안 돼요.

도리's Pick 핫 플레이스 5: 고양시 서오릉 part 2

숙종은 업적에 비하여 여인들의 암투로 인해 본인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좀 억울한 왕이다. 

숙종 시기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많으나 대부분 숙종에게 집중되는 내용이 아닌 숙종의 여인들, 특히 장희빈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가 많다. 미안하지만, 나 또한 숙종의 억울함을 풀어줄 마음은 없고, 이번 편에서 인현왕후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숙종이 왕이 되었을 시기는 붕당 정치가 한창일 때였다. 

자자. 붕당이라고 하니 “아 그만 읽어야겠다”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나, 나 또한 붕당 하면 질색팔색 하는 작자라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다. 다만 숙종 전에 있던 왕들은 붕당 정치에 휘둘린 왕들이었다면, 숙종은 재위 기간 동안 3번의 환국을 통해 붕당을 가지고 노신 분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왕 이렇게 파가 갈린 것, 그래 어디 한번 나한테 유리하게 판도를 바꿔보자’ 하고 서로 다른 당파들끼리 싸움을 붙여 균형을 유지했다. 숙종의 결단으로 집권당이 하루아침에 획획 변하였다. 


숙종은 붕당을 이용해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왕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대동법의 전국적 확산이다. 

광해군 시기 부분적으로 시행했던 대동법을 숙종 대에 들어서서 비로소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대동법은 오늘날로 하면 세금 개혁, 구체적으로 부자증세와 비슷한 개념이기에 당시 부자들의 반발이 어마어마했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꼬박 100년이 걸렸다. 예상하겠지만, 반발하는 기득권 세력의 주머니를 강제로 열어서 세금을 확충하려면 왕권이 얼마나 강해야 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 어려운 것을 숙종이 해냈다. 

이렇게 대단한 업적이 있는 숙종이지만… 수신제가에 실패했음은 분명하다. 

      



서오릉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왕은 숙종이 아닐까 싶다. 

숙종 본인, 그리고 첫 번째 왕비, 두 번째 왕비, 세 번째 왕비, 게다가 장희빈까지 있으니 서오릉에 월세가 있다면 숙종이 가장 많이 내야 할 것이다.  


일단 숙종 본인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와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가 묻힌 명릉으로 가보자. 명릉은 조금 특이하게 같은 구역 안에 쌍릉으로 된 무덤이랑 단릉으로 된 무덤이 같이 있다. 이를 동원이강릉이라고 부른다.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모양의 무덤이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여기서 나란히 같이 있는 쌍릉에는 숙종과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이 가는) 인현왕후가 있고, 왼쪽 언덕 단릉에는 숙종의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가 있다.  

자 일단, 명릉에는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가 이렇게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익릉이 있는데 여기는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가 있다. 명실상부 세자빈을 거처 제일 먼저 숙종의 왕비가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천연두에 걸려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해서 사실상 숙종이랑 오랜 세월을 함께하지 못한 왕비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는 것일까 익릉에는 첫 번째 부인 혼자 쓸쓸하게 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숙종의 여인들을 공부하면서 왕비들의 이름이 다 비슷하여 헷갈렸다. 한번 정리를 하고 가겠다. 숙종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익릉에 계시는 인경왕후, 그다음이 지금 숙종 바로 옆에 묻혀 계시는 두 번째 인현왕후, 그리고 세 번째가 단릉에 계시는 인원왕후다. 이외에도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 씨 있고 장희빈도 있다. 


숙빈 최 씨는 무수리 출신이었지만 영조를 낳은 어머니이기에 아무래도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고 (숙빈 최 씨를 다룬 드라마가 한효주 주연 “동이”),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이야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셋의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상대적으로 인경왕후와 인원왕후는 살짝 묻히는 감이 있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첫 번째 왕비가 천연두로 세상을 떠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숙종 옆에 딱 붙어있지만, 생전에는 혼자 깨나 속앓이를 했을 것 같다. 인현왕후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면, 속이 좀 터지는 포인트들이 몇 군데 있다. 사람이 너무 어질다 못해 답답한 인현왕후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런 사람이었다. 성격이 너무 어질고 착했다.  


일련의 예로, 장희빈과의 일화가 있다. 

장희빈은 숙종의 대왕대비였던 왕후를 모시는 궁녀로 입궁하였는데, 미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일절 없는 실록에도, 유일하게 장희빈의 외모에 대해서는 자못 아름다웠다”라고 묘사할 정도로 실록이 인정한 아름다움이었다. 


이렇게 예쁜 장희빈이 궁녀로 왔다 갔다 하다가 숙종의 눈에 들었지만, 숙종의 엄마 명성왕후가 장희빈을 너무 싫어했다. (여기서의 명성왕후는 우리가 흔히 아는 "나 가거든"의 고종의 부인 명성황후와는 다른 인물!!)

인현왕후는 착하고 참한 데다 무엇보다 명성왕후와 같은 서인 출신인데 비해서 장희빈은 인현왕후에 비하면 배경이 좋지 않았고, 게다가 남인 출신의 집안이었다. 

(당시 붕당은 서인과 남인으로 나뉘었고, 둘은 서로 으르렁으르렁 거리는 관계였다) 

또한 아들 숙종이 장희빈에 정신이 팔려있는 꼬락서니를 보니 불여우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명성왕후는 장희빈을 궁 밖으로 내쫓는다. 그 후 숙종은 장희빈 앓이를 한다. 너무 그리워했다. 

이 모습을 그 마음 착한 인현왕후가 지켜본다.  


나 같으면 눈엣가시 같은 여우 같은 계집애가 나가면, “오예~ 내 세상이다! 아주 꼬시다, 고 얄미운 것!”하며 좋아했을 텐데 인현왕후는 그렇지가 않았다. 본인에게는 미운 존재지만, 당장 숙종이 장희빈을 너무 그리워하면서 기력 없어하는 모습을 보니 인현왕후의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어후!! 이 착한 사람!!) 

그러다가 숙종의 엄마 명성왕후가 죽자, 인현왕후가 먼저 숙종에게 건의한다. 

“장희빈을 궁으로 다시 들이시지요.” 


인현왕후는 예수님이다 예수님. 원수를 사랑하라. 왼 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주어라를 아주 생활 속에서 실천하셨다. 더 멀리 내쫓아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본인이 먼저 장희빈을 들이자는 것이었다. (아 왜!!) 

장희빈 그 여우 같은 것이 다시 들어오면 분명 자신의 중전의 자리가 위험 해질 텐데도 오직 숙종의 행복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숙종은 인현왕후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 냅다 받아들여 장희빈을 다시 궁으로 들인다.  


그리고 일어나지 말아야 했던 일이 일어난다. 인현왕후는 7년이 지나도 출산을 하지 못했는데, 장희빈은 궁으로 다시 들어오자마자 왕자(경종) 낳는다. 오래도록 자식이 없었던 숙종은 장희빈이 떡 하니 아들을 낳아주자 너무너무 기뻐서 2개월밖에 안된 경종을 원자로 책봉한다. 아직 그 당시 인현왕후도 20대 초반이었고 충분히 회임이 가능했지만, 장희빈에 홀딱 빠진 숙종은 후궁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삼는다.  


인현왕후도 참 기가 막혔을 거다. 설마설마했던 일들이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원자 책봉 문제를 두고 인현왕후의 세력 서인들은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고 숙종을 뜯어말렸지만, 본인 마음에 안 들면 귀를 딱 닫아 버리는 숙종의 성격에 서인들의 참언이 들어갈 리 만무했다. 숙종은 싫은 소리를 해대는 서인들을 이 참에 싹 다 없앤다. 이것이 기사환국이다. 더 이상 인현왕후를 서포트해줄 세력이 없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이 기회에 내보내고 아들을 낳아준 장희빈에게 중전의 자리를 주고 싶은데 인현왕후를 흠잡아 내보낼 명분이 없었던 모양이다. 급기야 숙종은 예전에 인현왕후가 장희빈에 대해서 꾼 불길한 꿈자리를 운운하면서 장희빈을 저주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폐출을 하기로 결정한다. 

(숙종…. 아… 무리수… 꿈을 명분으로 하는 폐출이 웬 말이야) 


그것도 인현왕후 생일에…. 인현왕후의 생일 상을 차리던 나인들이 만든 음식들을 다 뜰에 내 던져 버리면서 인현왕후를 궁 밖으로 내쫓는다. 

(저번 폐비 윤 씨 때도 그랬지만, 왜 다들 생일에 이 난리들이야…) 


그리고 숙종은 급기야 궁녀 출신이었던 장희빈을 중전 자리까지 초고속 파격 승진을 시킨다. 

(여자에 정신이 팔리면 이렇게 무섭구나 싶다 새삼. ) 


그러나 장희빈과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장희빈의 투기와 고집으로 숙종은 점점 지쳐간다. 

자연스럽게 숙종은 조강지처였고 자신만을 위하고 섬겼던 어진 인현왕후가 자꾸 생각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 씨 눈에 들어온다. 


이를 질투한 장희빈숙빈 최 씨 끌고 가서 심하게 매질을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숙종은 분개하였고, 되려 숙빈 최 씨에게 더 애정을 쏟고 후궁으로 맞이한다. 약이 제대로 오른 장희빈은 숙빈 최 씨를 독살하려고 까지 한다. (이 여자 진짜 무섭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결국 장희빈이 숙빈 최 씨를 독살하려던 계획이 들키고 숙종은 마음을 굳힌다. 

더는 장희빈을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생각이 되어 숙종은 장희빈의 힘을 빼기 위해서 장희빈의 세력이었던 남인을 다 갈아엎고 서인에게 힘을 실어준다.  


숙종은 또한 여러 차례 인현왕후에게 편지를 보내어 다시 궁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 인현왕후는 거절하지만, 급기야 숙종은 인현왕후의 어진 성품을 이용해서 “네 하인들이 만약 너를 데리고 오지 않고 빈 가마로 돌아오게 되면 걔네들 싹 다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고 협박을 하여 결국 마음이 약해진 인현왕후는 가마를 타고 궁으로 5년 만에 돌아온다. 이렇게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되면서 장희빈은 중전 자리를 토해내고 별궁으로 쫓겨난다. 중전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강등이 되고 별궁으로 쫓겨난 장희빈이 제정신 일리 만무했다. 장희빈은 자신의 거처에 무당을 들이는 곳을 따로 마련해놓고 그곳에서 온갖 저주와 주술을 퍼부으며 중전 인현왕후가 죽기를 빌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현왕후는 왕비 자리를 되찾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며 생사를 오갔다. 자신의 주술이 먹힌다고 믿었던 장희빈은 더 열심히 궁에 불길한 물건들을 묻어 놓고 무당을 들이며 인현왕후를 저주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인현왕후는 세상을 떠났다.  


다시 자신의 세상이 될 줄 알았던 장희빈은 숙빈 최 씨 복병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나 보다. 평소 인현왕후와 자매처럼 지내던 숙빈 최 씨가 장희빈의 이상 행동을 감지하고 모든 것을 숙종에게 고해바친 것.  


숙종은 설마설마하면서 장희빈의 생일에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핑계로 장희빈의 처소에 들어간다.

그리고 숙빈 최 씨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난다. 그곳에서 증거들을 입수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숙종은 장희빈에게 스스로 죽을 것, 즉 자진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독한 녀자 장희빈이 끝까지 자진하지 않자 숙종이 사약을 몇 사발 강제로 먹인 것이 야사로 전해진다. 


그때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나이가 14살이었다. 어머니에게 자진을 명한 아버지 숙종에게로 달려가서 식음을 전폐하며 제발 어머니의 자진 명령을 거두어 달라고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로 경종은 성숙한 나이였다. 

그런 경종 앞에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내린 사약을 먹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제 궁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한 숙빈 최 씨가 있고 이복동생 영조가 있다. 한때는 자신만 바라보던 아버지배다른 동생 영조에게 애정을 쏟고 있고, 자신의 어머니는 희대의 악녀라는 이미지만 남기고 경종 곁을 떠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 그리고 자신을 죄인의 자식이라고 여기며 이전처럼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기에 겪은 경종의 마음은 병 들대로 병들었을 것 같다.  




숙종은 여러 번의 환국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므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았다고 할 수 있지만, 여인들의 마음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  


그중 한없이 착해서 늘 남에게 져주고 내어주는 인현왕후는 나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궁 내의 경쟁자일 수도 있는 후궁들에게 친언니처럼 살갑게 대하며 보살폈다.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다른 후궁이 아이를 낳으면 조바심도 나고 좋은 마음으로 대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인현왕후는 늘 그들에게 따뜻했다. 그렇게 선심을 쓰다 결국 들이지 말아야 할 장희빈을 들여 급기야 자신이 폐출을 당했다. 이후 힘겹게 다시 들어왔는데 장희빈의 저주에 결국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었다. 권선징악의 순리대로 그녀의 말년이 행복했으면 좋았으련만, 너무 허망하게 죽은 게 못내 아쉽다. 그 많은 왕비들 후궁들 제치고 결국 숙종 곁에 쌍릉으로 묻힌 게 인현왕후이지만, 그래도 영 아쉽고 안타깝다.  


장희빈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심성이 인현왕후와 천성적으로 달랐던 것 같긴 하지만 장희빈을 희대의 악녀로 만든 건 숙종의 책임이 크다. 궁녀 출신에서 왕의 승은을 입어 하루아침에 중전이 된 만큼 권력의 단맛을 봐버려서 욕심이 생기는 건 당연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렇게 숙종이 오래도록 바라 온 아들을 낳아줬는데 한순간 마음이 돌아서 갑자기 인현왕후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일 땐 정말 너무 무서웠을 것 같다. 힘겹게 얻은 왕비의 자리를 다시 내어줘야 했을 때의 장희빈의 분노도 이해가 간다. 궁내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모함하며 장희빈을 끌어내리려고 할 땐 장희빈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아들과 자신을 지켜야 했으리라. 엄마의 입장에서 장희빈은 더욱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줬다가 한순간 다 앗아가 버리는 숙종이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을 것이다. 확확 뜨거워졌다 식었다 하는 숙종의 애정과 그로 인한 결정이 장희빈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그녀의 악함을 불쏘시개로 쑤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조금 안쓰럽기까지 한다. 오죽하면 저랬을까 싶어서… 


숙종이 조금만 더 지혜롭게 사람을 품었다면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말년이 이렇게 비극적이지 않았으리라. 

마음 변하기가 환국과 같아서 한순간 자신의 애정 변화와 함께 이루어지는 왕비 교체가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마음의 병을 키우게 한 것 같다. 


장희빈은 마음의 병이 주술과 저주로 표출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새삼 장희빈을 통해서 궁내의 여성의 삶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성들이야 자신의 능력이나 세력을 규합해서 재기를 꿈꿔볼 수도 있는 노릇이겠지만, 여성은 그럴 수가 없다. 왕이 선택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고, 왕이 버리면 버려져야 했다. 장희빈은 그렇게 순종적인 성격이 못되었을 수도 있다. 어떻게라도 재기를 하고 싶은데,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주술의 힘이라도 빌려야 했을지 모른다. 안타깝다.  


나는 또 개인적으로 인현왕후가 궁으로 돌아와서 앓았던 병은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마음의 병이었으리라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간 성격에도 맞지 않는 권력 암투와 원래 미움받는 성격이 못되는데 미움을 받다가 결국 폐출을 당하면서 얻은 마음의 병이 다시 궁으로 들어오고 나서 몸의 병으로 확산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재미 삼아 만약 인현왕후가 인수대비가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인수대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전편을 참고하세요) 인현왕후가 인수대비 자리에 있었다면 며느리 윤 씨의 마음을 보듬고 헤아리며 궁 내부의 여인들의 기강을 부드럽게 다스렸을 것 같다. 그리고 인수대비가 만약 인현왕후의 자리였다면 장희빈과 기 센 여자 둘이서 참 볼만 했을 것 같다… 혹 둘이 세력을 규합해서 여자 마음을 우습게 아는 숙종을 된통 혼내줬을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만약”이라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지만, 가끔 이렇게 의미 없는 상상을 하다 보면 시간이 참 잘 간다.  

아마 서오릉 내에서 벌써 인수대비와 장희빈 사이의 찌릿찌릿 신경전이 있을지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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