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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 Mar 14. 2022

01. 2022년 3월 13일

겁이 많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왜 겁이 났을까.

매주 일요일 12시. 문 앞에서 벨을 누르면 찰칵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법 문이 무거워서, 그러나 쾅하고 닫히는 건 싫기에 발로 문을 살짝 잡고 손으론 문고리를 꽉 잡아서 조용히 닫힐 수 있도록 한다. 들어가면 호그와트의 마법 선생님이 있을 것만 같은 자그마한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물론 그 문도 무겁고 두껍다.


선생님은 군데군데 흰머리가 보이고 머리숱도 많은 사람이다. 조용하고, 로봇 같은 리액션이 특징이다. 이 로봇은 가끔 같이 짜증도 내주고, 내가 이따금씩 상상을 넘어 망상에 가까운 말을 할 때 다시금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있게끔 도와준다. 들어가서 소파에 앉으면 한 1분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멋쩍은 웃음을 짓다가 이내 선생님한테 말한다. “이번 주는요, 그냥 그랬어요. 별건 없었어요.”


이 분을 만나 이렇게 말한 지 3년이 넘었다. 별거 없는 사람치고는 50분 동안 꽉꽉 채워서 얘기를 나눈다. 여기 오기 전에도 늘 그렇게 생각했었다. 별거 아닌 것에 너무 유난이다라고 하면서 유난을 떠는 내가 싫었고, 내가 싫은 마음은 점점 자라서 내가 사는 세상을 무의미하게 만들곤 했다. 사실 여기 와서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한다.


로봇 선생님을 만나며 나의 유난은 불안임을 알게 되었다. 횡단보도 반대편에 서 있는 저 사람이 이내 초록불이 켜져 걸어오면서 날 해치려 할 것 같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선 쉽게 지치다 못해 가슴이 답답했고, 내 옆에 있는 강아지가 갑자기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시킨다거나,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범죄 교양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렇게 세상엔 위험한 것이 많다고 스스로를 학습시키는 것 모두 불안의 한 종류였다.

저 공룡을 쳐다보는 리사의 눈빛, 리사처럼 저런 방어막이 있더라면 어땠을까


내 불안은 초등학교 시절과 스무 살 무렵 겪은 두 가지 일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는 타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과 두 번째로는 사람은 언제나 죽을 수 있으며, 특히 내 주변의 사람은 날 이렇게나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 이 둘의 공통점은 그날, 그 시간, 그 장면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 불안은 꽤 오랜 시간 내 세계를 지배했으며, 때로는 우울로 연결했다.


마음은 늘 어려웠다. 내가 발견하는 세상의 모습과는 달리 내가 경험했던 일로 떠오르는 생각의 회로는 내가 만나는 세계의 밝은 면을 부정했다. 박정민 배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큰 기적이 일어나면 큰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큰 기적은 바라지 않는다고. 난 심지어 내게 생기는 좋은 일을 다 나쁜 일의 전조라고 생각하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도 이 불안의 이슈는 날 괴롭혔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쉽게 떠날 수 있기에 늘 먼저 내가 도망가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상처는 또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오늘은 그와 그 두 가지 일에 대해서 얘기해보자고 한 날이다. 이미 다시 얘기하기로 한 순간부터 난 깊게 가라앉았으며 또다시 그 사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났다. 그는 로봇 같이 말했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겁이 나서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겪은 두 가지 일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은 맞는 말이다. 나는 가끔씩 그 행동을 겪은 두 가지 일과 연결시키곤 한다.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음에도 말이다. 오히려 내겐 도망치는 출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연결고리는 나를 늘 하찮은 인간으로 만든다. 내가 겪은 일은 평생 나를 쫓아다닐 것이고, 죽을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라는 사실을 마치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느낌도 있다.


집에선 오히려 가장 대범하다고 평가받는 내가 사실은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말한다면 아빠는 로봇 선생님이 돌팔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은 내가 가장  속일  있는 그런 존재다. 겁쟁이는 그들에게서 탄생했고, 그들 사이에서 겁쟁이는 열심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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