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바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by 도로고노

그녀가 나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그녀와 나와 세상의 고동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그녀의 고양이가 됐다.


#. 첫 시작

우리는 언어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살아간다.


쵸비

그녀가 나의 이름을 지어줬을 때, 난 그녀와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세상과 이어졌다.


이름은 정말 중요하다.

나 자신을 이 끝도 없는 언어의 바다에서 특정 지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요소다.

이름을 통해 나 자신을 소개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를 통해 계속해서 다른 관계를 맺기도 하며, 세상과 연결된다.

언제나 그 첫걸음은 이름이다.


#. 끝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맺음이 있으면 끊어짐이 있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나 언어가 영향을 준다.


미유는 만나고 있는 노부라는 남자의 언어에 몸을 맡기고 지냈다.

본인의 언어는 없고, 타인의 언어에 표류하고 있다.

그 결과, 노부와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됐다.


미유가 본인만의 언어로 친한 친구인 다마키와 속마음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이때는 다마키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다마키의 언어를 알아채지 못해, 연이 끝나게 된다.


미유는 상대방이 만들어낸 언어의 파도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저 그 위를 표류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본인의 언어만 신경 썼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파도의 흐름을 보지 못했다.
본인의 언어가 만들어낼 파도의 영향력도 생각하지 못했다.


언어의 흐름을 본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표현하지 않으면, 본인조차도 자신만의 파도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유는 상대방에게 본인만의 파도를 보여줬다.

그 결과로 노부와 다마키는 휩쓸려 갔을 뿐이다.


#. 다시 시작

언어라는 건, 말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행동, 마음, 침묵으로도 통한다.


관계라는 것도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항상 쌍방으로 일어나고, 1:1의 연결도 아니다.

그 사람의 관계와 나 자신의 관계가 연결된다.


미유는 노부와 다마키와의 이별 후에, 료타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이 만남에는 미유와 쵸비의 만남이 시작점이었다.


쵸비가 미유의 동네를 돌아다니며 만난 인연이 있었다.

동네 고양이들인 미미, 구로가 있었고, 동네의 대장이었던 강이지, 존이 있었다.

이 관계가 없었다면, 료타와의 만남은 불가능했을 거다.


존은 자연으로 돌아가 영원이 되었다.

존의 역할은 구로가 대체하면서, 료타의 고양이가 됐다.

후에 눈이 오는 날, 구로와 쵸비는 존의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이 둘을 따라 나온 료타와 미유가 마치 운명처럼 만났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언어로 이어져 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의 형태로 다가온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이의 마음과 만나고, 그 만남이 또 다른 마음을 부른다.


쵸비는 이런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세상이 좋다.
나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건 그녀에게도 전해진다.
그녀도 아마 이 세상이 좋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