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하루, 강릉

by 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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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이 밝은 지 이틀.
돌아보면 2025년은 누가 보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등 떠밀리듯 그렇게 보내졌다.

도착한 지금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다.


그러기 전, 마음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말에 나는 강릉에 다녀왔다.
겉으로는 부지런한 여행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잠시 멈추러 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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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계소에서 눈이 많이 왔길래

아, 강릉에도 눈에 왕국이겠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왠걸, 멀쩡했던 그때의 그곳.



생각보다 순조롭게 도착했지만, 분신 같은 핸드폰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자판은 멋대로 눌리고, 카메라는 들고오지 않아 핸드폰 하나에 의존해야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더 곤욕이었다.(내가 안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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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배는 고픈지라, 터미널 근처의 '노포 식당'을 찾았다.
우리 동네에 있는 얼레꼴레한 밥집처럼, 학생들 배 채워주는 그런 집.
들어가는 입구는 예전 구옥을 개조한 모습이었고, 처음부터 이상하게 친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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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라면, 김밥…
방과 후 아이들이 먹을 것 같은 메뉴 앞에 앉아 있으니, 나도 괜히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라볶이에 치즈가 들어간 ‘특치즈라볶이’라는 메뉴가 있어 시켜보고, 스팸김밥도 함께 주문했다.

그런데 첫 입을 먹자마자 살짝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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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극적인 맛이었다.
내가 자극에 예민해진 걸까, 이걸 예전엔 잘 먹었었나? 싶을 정도로 강했다.
그 순간, 훅 하고 '현타'가 왔다.
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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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이 탕후루나 마라탕 같은 걸 즐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왜 저런 걸 먹어?' 했었는데,
어쩌면 나도 비슷했겠구나 싶은 거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음식을 먹다, 블로그 모드가 자동 재생되듯 작동했다.


‘사진 찍어야지’ 하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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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화딱지 날만한 상황이었다.



파트너는 화면을 잘 닦고

액정 필름을 바꿔보라고 했지만, 다이소엔 내 기종만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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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강릉 시내까지 가서 서비스센터에 들렀다.

엔지니어님은 문제 없다고 했지만, 이상 증상은 계속됐다.


몇 걸음 못 가서 다시 돌아갔고,
고스트 터치일 수 있다는 말만 들었다.
내가 그날 아침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눌렀던 게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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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결국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말에 허탈하게 돌아섰다.

물론 그날 강릉 여행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일이 엇갈리고, 또 돌아가게 되는 하루였다.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것도 하나의 에피소드.
강릉의 눈, 노포식당의 라볶이, 그리고 고장 난 핸드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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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게 나의 2025년을 마무리하는 장면 같았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날도 결국은 살아냈다.


#강릉여행 #뚜벅이여행자 #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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