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덱-Cyberdeck이 뭔지 아시나요?

산업디자인에 대한 탐색 + 레딧의 현자 탈룰라벨

by 손성빈 Son Seongbin


사이버펑크, 사이버네틱스, 사이버 엔드 드래곤은 들어봤는데 사이버덱(Cyberdeck)은 처음 들어봤다. 이 단어는 라즈베리 파이에 대해 찾아보다가 들어간 Reddit의 서브레딧에서 보게 되었다. 레딧의 서브 레딧은 한국으로 치면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판쯤 되는 곳이다. 아래 사진처럼 직접 만든 것 같은 간이 컴퓨터처럼 보이는 디지털 기기의 사진이 많이 보였다.


사이버덱.png Cyberdeck 서브레딧에 올라온 다양한 사진들


게시물을 보면 회로에 대한 지식과 소프트웨어 스킬을 발휘해 DIY로 만든 것 같은 다양한 기기들을 볼 수 있었다. 어렴풋 어떤 문화적인 운동이거나 꽤나 어려운 취미(?)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이게 무엇인지. 무엇을 왜 어떤 범위까지 하는지 도통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커뮤니티가 스스로 소개하는, 서브레딧에 쓰여있는 사이버덱의 설명을 봤는데


Realworld cyberdecks.
The era of virtual reality is coming, so it is also time for cyberdecks to come.

번역 :
현실 세계의 사이버덱.
가상현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니, 이제 사이버덱이 등장할 때이기도 하다.


읽어도 뭔지 잘 모르겠다. 설명에는 그래서 사이버덱이 그래서 뭔지는 안 알려준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게시글을 하나 작성하게 되었다. 사이버덱이 정확히 무엇 인지, 그리고 더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정보를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등 물어봤다.


스크린샷 2026-03-02 오후 8.40.17.png 내가 쓴 글 (구글 번역)


그리고 놀랍게도 며칠간 여러 커뮤니티 사람들이 댓글로 다양한 의견을 들려줬다. 누군가는 내 오타를 지적하는 가벼운 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주요한 댓글에서는 토론에 가까운 장이 열렸다. 이걸 통해 사이버덱이 뭘까라는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이버덱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토론을 하는 태도가 내게 재미있는 자극을 주었다.


여기에서는 그중 가장 많은 추천 수를 받은 이 커뮤니티의 관리자이자 모더레이터인 탈루라벨, Talulabelle (이하 탈)과 이에 대항하는 토일렛슬레이어-thetoiletslayer(이하 변) 그리고 둘의 논의에 참여하는 리전디디, LegionDD(이하 리)의 대화 내용을 담고 싶다.


댓글 내용 전체가 의미 있기 때문에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최대한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번역해 올린다.




탈 :

저희는 그동안 '사이버덱(Cyberdeck)'에 대해 고정되고 딱딱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지양해 왔습니다.

저희가 보고 싶은 것은 사이버펑크 픽션을 반영하면서도, 실제로 작동하는 독창적인 컴퓨터나 장치들입니다.

예를 들어, 사이버덱이 되려면 "반드시 웨어러블 디스플레이가 있어야 한다"거나 "군용 장비처럼 튼튼해야 한다"는 식의 조건을 달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이버덱은 엄격하게 규격화된 제품이라기보다 일종의 '예술적 탐색'에 가깝기 때문이죠.


그동안 저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유행하는 디자인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습니다. 초기에는 '섀도우런(Shadowrun)'이나 '사이버펑크 2020'의 아트워크에 큰 영향을 받아, 거대한 키보드에 웨어러블 디스플레이를 조합한 형태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 후에는 산업용 또는 군용 장비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견고한 케이스 스타일이 유행했죠. 요즘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포켓형이나 핸드헬드 기기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웨어러블 기기나 기타 독특한 주변 장치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명확한 정의를 내려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아왔음에도, 제가 생각하는 정의마저 수년에 걸쳐 계속해서 변해왔습니다.


결국 사이버덱이란 '산업 디자인에 대한 탐색'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정의입니다.



변 :

저라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맞춤 제작된 휴대용 컴퓨터'라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고 싶네요.



탈 :

꼭 '커스텀(맞춤 제작)'이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어느 정도나 커스텀해야 할까요? 리눅스가 깔린 최신 스팀 VR 헤드셋에 멋진 스티커 몇 개 붙이는 것도 커스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었다고요? 그럼 반드시 용도가 있어야 하나요? 만약 제가 별다른 계획 없이 그저 예술 프로젝트로 만든 거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또 누가 꼭 '휴대용'이어야 한다고 했나요? 윌리엄 깁슨의 소설 <카운트 제로>에서 바비가 클럽에서 사용하는 사이버덱은 휴대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책상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니까요.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사람들이 만든 기괴한 데스크톱 컴퓨터를 보고 싶을 뿐입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손 가는 대로 만든 결과물도 보고 싶고요. 때로는 제품에 스티커를 잔뜩 붙이는(Sticker bomb) 행위조차 어떤 변화의 시발점이 되고, 다른 디자인에 영감을 주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정의를 내리는 게 무슨 소용일까요?


제가 아주 오랫동안 인터넷 세상을 겪어보며 장담하건대, 정의를 내리는 순간 "이게 과연 사이버덱인가?"라는 끝도 없는 논쟁만 불러올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논쟁을 겪고 있고, 그건 우리가 하는 활동 중 가장 흥미 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따분하고 진부한 식의 논의를 부추기는 일은 하고 싶지 않네요.


* Sticker bomb: 단순히 스티커를 붙이는 수준을 넘어 빈틈없이 도배하듯 붙이는 문화를 말합니다.



변 :

정의가 없으면 오히려 "이게 사이버덱 맞나요?"라는 게시물만 더 늘어날 뿐입니다. 기준이 있어야 무엇과 비교라도 해볼 수 있죠.


'커스텀(맞춤 제작)'인 건 당연한 요소라고 봅니다. 제가 월마트에 가서 노트북을 한 대 샀다고 해서 그걸 사이버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니죠. 사이버덱은 직접 빌드하는 것이니까요.


다만 '휴대성'이나 '특정 목적'에 대해서는 관리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런 제약들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는 하지만요. 저는 그저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을 뿐입니다. 정의가 아예 없다고만 하는 것은 새로 유입된 분들에게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탈 :

"정의가 없으면 '이게 사이버덱인가요?'라는 게시물만 더 늘어난다"라...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이해합니다. 정말로요. 무언가를 열린 결말로 두는 것이 오히려 이런 상황을 피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점,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30년 동안 사이버펑크 포럼을 관리해 왔습니다. 제 경험상 확신하건대, 잘 짜인 정의를 내놓는 순간 사람들은 그 정의의 세부 항목들을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할 겁니다.


심지어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조차 "사이버펑크가 마치 '팬톤 컬러(표준 색상표)'처럼 되어버려서, 모든 새로운 것들을 그 색상표에 일일이 대조해 보게 된다"라고 한탄한 적이 있죠. 사물을 분류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어쩔 수 없죠. 우리는 모든 것을 정교하게 만들어진 상자 안에 집어넣고 "이것은 ~이다", "이것은 ~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정의가 꼼꼼해질수록, 각 작업물에 가해지는 검열의 잣대는 더 엄격해질 뿐입니다.


"뉴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펑크 음악도 그랬고, 제가 지켜본 거의 모든 예술 운동이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은 정작 무언가를 실제로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이버덱들은 항상 누군가 불쑥 나타나 "이런 걸 만들었는데... 혹시 이것도 사이버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할 때 등장했습니다.

이 서브레딧(커뮤니티)의 최초 개설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초창기 빌드들은 그가 원했던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이버펑크 게시판에서 RPG 설정집에나 나올 법한 기기를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올린 게시물들이 주를 이뤘죠.


원래 개설자의 의도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나 VR 글래스 같은 것을 구현하는 일종의 공동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관리자가 "이건 내가 원한 게 아니다, 기껏해야 징검다리 수준이다"라고 계속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올라온 그 '덱'들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그저 무언가를 만드는 걸 보고 싶었기에, 무엇을 물어보든 제작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계속해주었습니다. 그러다 '팰리컨 케이스(튼튼한 장비 가방) 덱'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 역시 시작은 어느 시스템 관리자가 네트워크 장애 시 사용할 자신만의 '맞춤형 비상용 도구 세트'가 필요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업무용 비상 키트였던 셈인데, 그걸 여기에 올리자마자 수년 동안 디자인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핸드헬드(휴대용) 기기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만든 이들 역시 애초에 '사이버덱'을 만들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 그냥 무언가를 만들었고 그걸 공유할 곳을 찾았을 뿐입니다.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뉴비'들은 이 문화를 진전시키지 못합니다. 문화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지 가르쳐주길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일종의 '하위문화(Sub culture)'다운 면모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잠시 머물다 보면, 사이드바(게시판 설명)에 적힌 정의는 우리 중 누구도 쓰지 않았으며 그냥 통째로 무시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건 이곳에 진정으로 기여할 만큼 오래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내부인들끼리의 농담(Inside joke)' 같은 것입니다.



변 :

정말 일리가 있는 말씀이고, 글도 아주 잘 쓰셨네요. 이 커뮤니티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마인드셋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질문에 답을 달거나 부품 추천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특히 키보드 쪽을 주로 봐요. 여기 분들은 대부분 기계식 키보드나 Rii 블루투스 키보드를 쓰시더라고요. 그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선택지가 별로 없죠. 그래서 저는 좀 색다른 아이디어들을 제안해 보곤 합니다. 특히 소형 덱을 위한 입력 장치는 선택지가 너무 한정적이거나, 적어도 흔한 것 외에는 대안을 찾기가 참 힘들거든요.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뉴비들은 이 문화를 진전시키지 못합니다. 문화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지 가르쳐주길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이 제게 정말 큰 울림을 주네요. 전에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사이버덱이 무엇인지 혹은 자기에게 맞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이군요.


image.png The Blueprint of Our Digital Dreams (우리의 디지털 꿈의 청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


리 :

"글쎄요, 저는 인터넷을 아주 오랫동안 해왔는데, 확실히 말씀드리건대 정의를 내리는 순간 '이게 사이버덱인가?'라는 끝없는 논쟁만 불러올 뿐입니다."에 대한 의견입니다.


그건 어쩌면 가장 사소한 걱정일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에 만약 사이버덱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이 생긴다면, 오히려 "그건 진짜 사이버덱이 아니니 나가라"는 식의 차별과 배타적인 분위기가 판을 칠 것 같거든요.



탈 :

결국 그런 논쟁들의 끝은 항상 그렇게 되기 마련이죠, 안 그래요?

사이버펑크라는 장르 자체가 지난 수십 년간 표현의 영역에서 믿기 힘들 정도로 정체되어 버린 이유도 비슷합니다. 누군가 정해진 선을 아주 조금이라도 넘으려 하면, 곧바로 체크리스트와 항목들을 들이밀며 논쟁이 시작되니까요. 원작자들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정의들을 미친 듯이 복사해서 붙여 넣으면서 말이죠.


그러고는 결국, 기존에 봐왔던 것과 100% 일치하지 않는 것들은 전부 내팽개쳐 버립니다.

사람들은 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 틀렸으며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Permission)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권한을 쥐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주 화가 나 있는 상태죠.



리 :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지점이 사이버펑크에서 '펑크(Punk)'를 거세해 버리는 대목입니다.

사람들에게 행동 지침이 될 엄격한 틀을 쥐여주는 것 자체가 '펑크'와는 정반대 되는 일이니까요.

표현의 자유를 받아들이고 탐구하세요. 규칙을 비틀고, 남들이 다져놓은 길에서 벗어나 보세요. 그렇게 해서 '펑크'를 만들고, 그것을 컴퓨터와 기술로 구현하면 '사이버펑크'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컴퓨터'라는 형태로 구체화하면, 그게 바로 '사이버덱'인 거죠.


물론 인정합니다. 이러한 규칙, 제약, 그리고 교리에 대한 부재(혹은 거부)가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환경은 아닐 겁니다.



변 :

정말 예리한 지적이십니다. '펑크'라는 개념 자체가 타인의 기대나 고정관념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명확한 정의나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은 확실히 본질에서 벗어난, 모순적인 일이겠네요.



탈 :

'펑크'에 대한 말씀은 100% 옳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아이들에게 패션으로 되팔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화되고 복제된 '기업형 쓰레기(corporate slop)'로서의 펑크만을 경험해 왔을 뿐이죠.


진정한 펑크는 우리에게 참여할 것을 권장합니다. 감히 "나도 저거 할 수 있어... 아니, 훨씬 더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하게끔 도전 의식을 북돋우죠.


사이버덱의 정의가 유동적이며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안락한 영역(comfort zone)을 한참 벗어나는 일이라는 당신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스크린샷 2026-01-20 오후 11.48.29.png 스팀펑크스타일에 진짜 DIY로 만든 것 같은 기기들도 많았다.




여기까지가 그들의 토론이다.


탈루라벨, Talulabelle의 통찰이 아주 흥미로웠다. (1) 서브컬처에서 무언가의 정의는 상상력을 가두는 틀이 될 수 있고. (2) 사이버덱은 고정된 제품이 아니라 '산업 디자인의 탐색'이며 (3) 진짜 새로운 것은 정의를 따지고 물어보는 사람이 아닌 만들어오는 사람이고 (4) 인터넷 공간에서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엄밀함을 친구 삼아 조건에 맞지 않는 것은 내팽기치는 권한이며 (5) 펑크는 위대하다는 그의 의견이 멋지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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