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파괴의 시작이다 - 시작
복음 시대는 그리스도 예수의 세계와 세상 세계가 충돌하는 시대이다. 이 충돌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는 끊임없이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두 세계가 충돌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타협이 이루어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의 원칙과 세상의 원칙이 무질서하게 혼재해 버림으로써, 무엇이 기독교적인 생각이며 삶인지에 대한 일대의 혼란이 초래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 된 자들로 인하여 선포되고 확장되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바치라고 한 지혜가 숨 쉬고 있다.
즉, 어떤 집단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걸고 그의 이름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얼핏 보기에 아주 바람직한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소위 기독교 국가라는 나라들의 역사, 즉 그들의 피의 역사와 그 흥망성쇠를 훑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방법을 상고하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질서가 다스리는 나라의 모델은 아브라함 시대에서 비롯된 족장 중심의 집단에서부터 옛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소위 이러한 형식의 구속사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에 불과하였을 뿐, 그것이 결코 충분하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방식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새로운 방식의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러 오셨던 것이고, 그래서 그의 사역 방식은 이 땅에 눈에 보이는 하나의 나라를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세계의 체계와 가치관을 뛰어넘은, 새로운 세계로서의 하나님 나라, 즉 거듭남으로 인하여 형성될 하나님 나라를 만드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비록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렇다 할 단정적인 의견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어찌 되었든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땅위에 눈에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신 하나님 나라의 형성 방식과 상당히 다른 것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우려는 정교일치를 꿈꿔왔던 지난 시대의 위정자와 종교지도자들의 꿈이 이 땅에 미친 영향, 즉 사랑으로 품어야 할 사람들을 칼로 대하며 도구화하였던 지난날의 아픈 역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삶의 방식으로서 사랑하며 복음을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 하나만으로 족한 것이며, 두고두고 이루어가야 할 개인과 교회의 내면적 성숙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를 실행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써 오로지 복음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현실세계를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자는 발상이 나올 수는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나약함, 즉 완성되지 아니한 인성으로 인하여 오염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고,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도 현실세계에 이러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지 않으셨던 것이라고 본다.
현실 세계는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또한 여러 가지의 자기 정당성이 정의의 이름으로 선언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현실 세계가 하나님 나라를 표방하는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로 묶여 버리게 되면, 그것이 나약한 인간의 세계인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와 정당성에 오염되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우려가 높고, 실제로도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된 예는 여러 가지의 경로를 통하여 직, 간접적으로 목도된 바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우려를 전제로 하여, 그와 같은 혼동과 오염이 우리에게 미쳤다고 할 수 있는 폐단과, 그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 복음과 철학사상 사이의 개념 혼란과, 그로 인하여 구별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이해된 삶의 방식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신학자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나 성직자도 아니고, 많은 학식과 경륜을 가진 자도 아니다. 그래서 만약 이 작업이 유익을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폐악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면, 누구든지 이 작업에 제동을 걸고, 이 미련한 자의 좁은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넓은 세계로 이끌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