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가 되라고도, 가이사의 것을 만들라고도 아니하였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지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계몽하라고 하였을까?

by 시인 손락천

누가 그들에게 개혁하라고 하였던가? 누가 그들에게 대통령이 되라거나 킹메이커가 되라고 하였던가?




각설하고, 이야기를 끝맺는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것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존재 목적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사람은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전도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게 여겨질 특수한 형식의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형성하는 가치 또한 세상에서 대접받을 만한 것이 될 수가 없다. 즉, 전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복음화는 기본적으로 세상과의 소통에 소홀할뿐더러 어쩌면 소통이 불가능한 것일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전도나 복음이 가진 위와 같은 소외성 때문에 처음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나 마음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위로를 받았던 자들조차도 세상적 상황이나 사정이 바뀌게 되면 전도나 복음에 등을 돌리게 된다. 즉,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믿게 된 자들 외의 자들)에게, 전도나 복음은 오히려 악담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만다.


즉, 전도나 복음화는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장밋빛 유익을 제시받거나 담보받지 아니한 채 자발적으로 좁은 길을 택하여 그 길로 걸어가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하나님의 제의는 결코 사람에게 소통될 성질의 제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한 복음의 가치가 사람이 생각하는 발전이나 이상과는 전혀 무관하고, 더욱이 그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넓은 길과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정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계몽주의의 미몽이 장악해버린 전도, 그 전도로 인하여 이룩된 복음화는 그 양상이 어떠한가? 위정자나 기득권자가 설정해 놓은 가치관, 그들이 그토록이나 바라 마지않던 장밋빛 유익과 너무나 닮아 있지 아니한가? 좀 더 나은 삶, 좀 더 많은 혜택, 좀 더 많은 여유, 좀 더 좋은 여건이 과연 교회가 바라 마지않던 추구 대상이던가? 사회구조를 개혁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모든 이들이 두루 행복하게 살 여건을 마련하고, 아울러 그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도 유익을 얻겠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발상이던가? 사실 이것은 복음과 관련 없는 계몽주의적 발전 모델이 아니던가?


시작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열매는 씨앗으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계몽주의적 세속화는 교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교회의 문제라고 함은 교회가 초심을 잃어버리고 부가적인 일에 매달리며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망령되이 행하여 예수님을 다시 못 박으려고 한다는 것이고, 사회의 문제라고 함은 교회가 미련한 전도의 방법은 버렸으나 미련한 자기 고집은 버리지 아니하였기에 세상을 향하여 불필요하고 편협한 싸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패단이다. 교회에게나 사회에게나 국가에게나 폐해다.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 누구를 위한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란 말인가? 이것은 턱도 없는 소리다. 그리스도인이란 전도의 미련한 것에 의지한 채, 그리스도 예수를 쫒아 좁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무슨 가당치도 않을 균형이란 말인가?



예수님이 그들에게 대통령이 되어서 무지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계몽하라고 하였을까?

예수님이 그들에게 유력한 목사가 되어 특정 정당이나 대권주자를 지지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을까?

예수님이 그들에게 명망 있는 목사가 되어 수천억 원의 예배당을 짓는 자가 되라고 하였을까?

예수님이 그들에게 정치인이 되고 판사가 되고 기업인이 되어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자가 되라고 하였을까?


예수님이 그들에게 힘이 있는 자가 되어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을까?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단 말인가?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계몽주의의 미몽 아래 밑도 끝도 없는 자기 암시와 확인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 뿐이고, 그것은 지독한 미몽이다.


단언하건대 그들은 예수님이 생애에서 전혀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열심당을 향해 강력하게 경고하였던 일에, 자신의 힘을 쏟아부은 것이다.



인명진, 서경석, 김진홍, 그들에게 묻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그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것들을 그리스도인이나 교회가 힘써 이루어야 할 가치라고도 할 수가 없을 터다.


오히려 만약에 그것을 추구하여야 할 가치로 인식하고, 설령 입으로는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행동으로는 세상에 내세울만한 건물과 경제력과 명예와 권력과 영향력을 추구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들은 이미 오염된 것일 터다.


묻는다.
과연 그대들의 진정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들은 세상에게는 미련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기민한 존재인가?
아니면 세상에게는 기민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미련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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