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哲學)인가? 철학(鐵學)인가? 15
언어구조아래에서의 주체는 소외된 존재다
살펴본 바와 같다면, 주체와 대상의 개념은 구조화된 언어아래에서 형성된다. 이것은 곧 모든 근대철학의 주제들이 사실은 선험적 언어구조의 외화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는 야콥슨의 실어증에 대한 분석에서 찾을 수 있다(이것은 필자가 야콥슨에서 그 단적인 예를 찾았다는 것일 뿐, 다른 사람들이 필자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필자만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문장은 결합관계와 계열관계로 설명된다. 즉, ‘과부는 남편이 죽은 여자이다’라는 문장을 살펴보면, ‘과부’라는 단어, ‘남편’이라는 단어, ‘죽다’라는 단어, ‘여자’라는 단어가 결합하여 '과부는 남편이 죽은 여자이다'라는 하나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러한 것을 결합관계라고 하는데, 야콥슨은 이것이 인접한 단어들을 배열하여 형성한 것이라며 이를 인접관계라고 칭한다.
한편, ‘과부’는 ‘미망인’ 등으로, ‘남편’은 ‘아이들의 아버지’ 등으로, ‘죽다’는 ‘소천하다’ 등등으로 대체될 수 있는데, 이렇게 단어를 대체하여 다른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공식을 계열관계라고 하고(이러한 계열관계는 전혀 다른 양상, 즉 문장구조의 각 위치에 각각 다른 단어를 대체하여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라는 전혀 다른 문장을 형성할 수도 있다), 이를 일러 야콥슨은 유사관계라고 칭한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구조 중에서 인접성관계가 깨어진 사람의 경우에는 ‘과부’를 다른 단어와의 관계성 속에서 설명하지 못하고(즉, 과부는 남편이 죽은 여자라고 설명하지 못하고), 단지 미망인 등등의 단어만을 나열하게 된다고 한다. 반면에, 유사성관계가 깨어진 사람의 경우에는 위 문장을 다른 단어들로 대체하여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 버리고, 결국에는 문장을 형성하는 유사성관계의 단어를 모두 소실함으로서, 단지 단어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만을 말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실어증에 대한 분석은 ‘언어구조가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깨어진 사람의 경우, 그 사유방식은 보통사람과 전혀 달라지게 되고, 이것은 주체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사유가 전방위적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결국 통상의 사유로서 인식한 ‘나’ 또는 ‘대상’이 ‘나’ 또는 ‘대상’이라는 본질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라는 외부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에 다름없다(참고로, 이러한 논리에 대한 필자의 감정은 그저 ‘사람을 위한다는 학문이 도리어 사람을 소외시켜 버렸구나’하는 씁쓸함이다).
철학적 구조주의는 심화된 사유가 이끌어 낸 심화된 어불성설일 뿐이다
필자가 보는 철학적 구조주의라는 것은 철학자들이 구조언어학자들의 언어연구방식을 그대로 차용하여 한 철학적 사유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체와 대상에 대한 사유를 설명하기 위하여 기표(단어)와 기의(대상)가 일치하는지 혹은 불일치하는지를 언급하는 것이고, 언어가 선험적으로 구조화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언어적 실천에 따라 정해진 용법일 뿐인지를 언급하는 것이며, 언어적 또는 언어 외적인 생활방식 중에서 문화와 비문화를 구별하는 공통된 구별자가 무엇인지를 언급하는 것이고, 그러한 구별자가 사람의 사유를 규정짓는 선험적 구조인지를 언급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러한 구조가 있다면 그것을 무엇으로 명칭할 것인지를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심화된 사유가 이끌어 낸 심화된 어불성설이다. 선험적으로 구조화된 언어이든, 실천적으로 구조화된 언어이든, 언어를 통하여 구조화된 어떤 명칭의 무의식이든 간에, 그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긴 구조일 뿐인데, 어찌 그것이 사람에 앞서, 신에 앞서, 사람을 재단하고, 신을 재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