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哲學)인가? 철학(鐵學)인가? 14
구조 언어학자들은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회는 그 언어구조의 틀 안에서 주체나 대상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되므로, 그 각 사회의 인식이나 사유의 실체는 그 언어구조 아래에서 파악된다고 생각한다
근대 이후의 철학은 여러 형태로 사유와 진리에 대한 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 그중에서 중요한 흐름의 하나가 구조주의이고, 필자는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소위 말하는 구조주의는 언어 등을 통하여 발견된 사회적 무의식 등에 대하여 논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를 모두 구조주의라고 통칭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구조주의자라고 칭해지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구조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실제로도 그 연구 방식은 구조주의를 비판하고 해체하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논의가 구조주의를 수립하는 것이든 해체하는 것이든지 간에 그 논리를 펴내는 방법과 대상이 구조주의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통칭되어 구조주의자라고 명칭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적 구조주의는 과연 어떠한 것을 일컫는 것일까? 그것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주요한 특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즉, 철학적 구조주의는 구조 언어학의 연구방법을 차용한 것이다. 따라서 소위 말하는 구조 언어학의 언어가 주체 및 대상과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알아본다면 철학적 구조주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각 언어 사용자에 따라 존재에 대한 사유방식이 각각 달라진다
언어는 무엇인가를 지적하는 단어와 그러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의지나 설명 또는 사유를 형성하도록 하는 문법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단어와 그 단어가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은 원칙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그 단어를 그 대상과 동일시하리라는 사회적 약속에 따라 그 단어는 그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된다. 가량 과일로서의 ‘사과’는 그것을 ‘사과’라고도 할 수 있고, ‘오과’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회적 약속에 따라 ‘사과’라는 단어가 ‘사과’라는 대상을 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단어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조합되고, 이로써 그 대상에 대한, 또는 그 대상을 이용한 복합적인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 즉, 이러한 조합으로써 ‘사과는 천상의 맛이다’, ‘내 얼굴은 사과같이 탐스럽고 매력 있다’라는 사유의 형성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휘와 문법은 각 나라와 민족들 사이에 차이가 있고, 이러한 차이는 각 나라와 민족의 사유방식을 각각 독특하게 형성한다. 즉, 어떤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단어가 있느냐, 그 단어가 여성성을 가지느냐 남성성을 가지느냐, 주․술․목적어의 배열이 어떻게 되느냐, 동사만이 술어가 되느냐 형용도 술어가 되느냐 등의 문제가 사유방식을 전혀 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말은 ‘꽃이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데 반해, 영어는 ‘A flower is beautiful'이라고 표현한다. 즉, 우리말은 특별한 동사 없이 형용사가 술어로서 작용하는데 반해, 영어는 중간에 be동사가 술어로서 작용하게 된다.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차이가 사고방식과 사유의 한계 차이를 드러낸다고 한다. 설명하자면, 우리는 위 언어로써, 꽃이 아름답다고만 사유하는데 반해, 서구인은 꽃과 아름다움의 등가 관계, 즉 '꽃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그 꽃에 아름다움이 있다 '는 사유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의 대상이 나타내는 특성(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서구인은 그러한 특성 외에도 그러한 특성을 나타내는 존재를(꽃과 아름다움의 존재)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서구인들 중의 혹자는 동양인들에게는 'be’ 동사 없으므로 서구의 존재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까지 한다. 왜냐하면 꽃이 아름답다는 말에는 꽃이나 아름다움의 존재가 전혀 사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면, ‘나는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라고 말할 때, 그들의 언어에서는 그 말 자체에 이미 나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우리말에는 그저 내가 생각 중이라는 상태를 말할 뿐,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차이 때문에 언어 자체가 존재론에 대한 사유를 당연히 전제하는 경우도 있고, 굳이 존재론을 말하기 위해서 대상에 대한 별도의 언어를 구성해서 사유하여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각 언어 사용자에 따라 존재에 대한 사유방식이 각각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 언어학자들은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회는 그 언어구조의 틀 안에서 주체나 대상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되므로, 그 각 사회의 인식이나 사유의 실체는 그 언어구조 아래에서 파악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때문에 인류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인식이나 사유가 있다면, 그것은 각 사회의 언어구조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있고,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확실한 지식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은 오히려 전 세계의 언어를 모순 없이 통일시켜 버리면 모든 인류가 자명하다고 사유할만한 지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