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哲學)인가? 철학(鐵學)인가? 13
철학은 자명한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흐름에서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이해하려는 흐름으로 바뀌었다
근대철학의 흐름을 관찰할 때, 철학은 자명한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흐름에서 점차적으로 딱히 진리라기보다는 현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이해하려는 흐름으로 바뀌어져 왔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마르크스와 니체 등의 철학으로 인하여 충분히 나타났고, 이들의 사유는 이후 시대의 중요한 사상적 지반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철학적 지반의 붕괴는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정신분석학이나 언어학적 연구 실적에 힘입은 철학적 양상이었다.
하이데거의 해석학이나 레비-스트로스, 라캉 등의 현대철학이나, 비트겐슈타인, 러셀 등의 분석철학 등의 주요 테마는 사람 이전에 이미 사람의 사유와 사고를 형성하게끔 하는 틀이 있다는 것이었다.
가령, 언어와 같은 것은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자 선험적 구조로서 각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인 사람들의 생각 범위와 사유방식을 정해주는 것이어서, 이것을 분석하고 연구함으로써 사람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아울러 언어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게 되면 그것 자체가 그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확실한 지식, 믿음, 신념 등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견해는 사람의 사유나 행동을 구조화된 언어나 무의식 등에 따라 해석하겠다는 것이어서, 결국 그 논의의 요체는 외부의 선험적 구조가 주체와 대상을 규정짓고 형성한다는 것에 다름없는 것이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사유에 묻어 있는 신령한 신의 흔적을 애써 지우다
이들 각 논의에 대해서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이와 관련된 필자의 일천한 의견을 제시해 볼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견해는 모두 생명의 신비로움과 사유에 묻어 있는 신령한 신의 흔적을 애써 지운 채 사람이 고작 구조화된(그것이 사람 이전에 이미 구조화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언어나 무의식이 외화(구조가 소외하여 형성한 어떤 것)하여 형성한 것이라고 본 까닭인 터다.
논리의 비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러한 논리야말로 사유하는 ‘나’ 자신까지도 대상화시키는 논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대상화되면 이미 사람 세계에서의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어쩌면 신을 떠난 사람의 사유나 지혜의 궁극이 사람의 대상화였기 때문에, 그러한 폐단과 패악을 미리 안 절대자가 그 옛날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흩어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