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哲學)인가? 철학(鐵學)인가? 17
레비 스트로스는 무의식의 근원을 근친상간의 금지에서 찾은 반면에, 라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무의식의 근원을 찾았다.
라캉의 사유는 레비 스트로스의 사유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라캉의 경우에는 좀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충실하고 있다.
레비 스트로스는 무의식의 근원을 근친상간의 금지에서 찾은 반면에, 라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무의식의 근원을 찾았다.
즉, 라캉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남근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무의식이 전체 무의식의 기저가 되고, 이와 같이 금지된 욕망을 다른 방법으로 해소해가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하나의 주체가 형성된다고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라캉에 따르면, 무의식의 욕망은 욕구와 요구로 이루어지는데, 어머니에게 자신의 남근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구는 그것이 금지되기 때문에 이성에게 사랑을 구하는 요구 등으로 순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순화된 요구는 원래의 무의식이 욕망한 바가 아니다. 그래서 순화된 요구(기표)는 무의식이 원래 욕망하였던 것(기의)에 다다르지 못하고, 이 때문에 기의에 도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욕구와 요구가 창출되는데, 그것이 바로 구조화된 무의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형성된 무의식은 마치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한다. 즉, 무의식은 응축, 치환, 대리표상으로 표현되는데, 응축은 욕망이 여러 유사한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몇 가지의 유사한 이미지가 하나의 욕망을 표상함)이므로 이는 언어상의 계열관계(은유)와 같고, 치환은 욕망이 인접한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가령 성교를 피흘리는 것으로 표상함)이므로 이는 언어상의 결합관계(환유)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마치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고, 결합관계와 계열관계로서 과학적으로 분석 및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캉은 기존에 존재하는 주체와 대상에 대한 불확실한 관념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그 위에서 이를 통찰하는 새로운 방안을 고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반대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기존의 관념들에 대하여 그것이 불확실하다고 한 것처럼, 라캉의 생각 또한 불확실한 것이다.
이러한 라캉의 이론은 레비 스트로스의 이론과 매우 닮아 있다. 왜냐하면 라캉의 이론 또한 주체의 근원을 타자(무의식)의 담론과 욕망에 두고 있고, 이를 통해서 주체의 사유방식, 행위방식, 지식과 진리 등의 문제에 대하여 설명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럴 듯한 논리다. 그래서 필자가 보기에 라캉은 천재다. 그러나, 필자의 이러한 감탄은 그저 인간적인 것에 불과하다.
라캉은 기존에 존재하는 주체와 대상에 대한 불확실한 관념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그 위에서 이를 통찰하는 새로운 방안을 고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반대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기존의 관념들에 대하여 그것이 불확실하다고 한 것처럼, 라캉의 생각 또한 불확실한 것이다. 도대체 라캉이 이야기하는 무의식이라는 것이, 그러한 무의식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기인하였다는 것이, 그렇게 형성된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 그러한 무의식에 의하여 사람이 사회가 인정하는 이성적 존재로서 형성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에 근거한 생각이라는 것인가? 또한 그러한 생각이 옳다는 것에 대한 보증이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아는 것에 대하여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참된 앎이라고 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안다고 하는 모순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그 모순은 설명할 수 없는 결과에 도달하고 만다.
무의식의 존재를 확신하는 순간, 그 무의식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하는 순간, 그래서 그 무의식이 지금의 이성적인 사람을 형성한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 확신들(그것이 확실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이 인간을 무미건조한 유형물로 해체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