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블라디보스토크 군항
1910년 무렵,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는 최재형, 유인석, 이범윤, 홍범도 등 의병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경술국치 이후로 8도 각처에서 망명객들이 모여들면서 국권 회복 운동의 거점지역이 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안창호 일행이 블라디보스토크 군항에 도착한 것은 8월 24일이었다. 그리고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인들은 비분강개하고 있었다.
안중근 의거에 분노한 일본은 병탄 절차에 박차를 가했다.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에 이어,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새로 부임했다. 3대 통감 데라우치는 1910년 8월 22일, 민중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치욕의 한일강제병합조약을 체결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촌에서는 바로 어제인 8월 23일 오후 4시, 한인학교에 집결하여 대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긴급히 성명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합병을 반대함’이라는 제목으로 결사 항쟁의 선언서를 작성하고, 이 격문 1000장을 인쇄, 배포하면서 동포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본 정부에 ‘국제 공약의 배신’이라고 공한을 보내고 합병 무효 선언 전문과 선언서를 보냈다. 유인석, 이상설 등이 이 선언서를 작성했고 총 8,624명이 서명했다.
데라우치는 8월 29일에 한일강제병합조약을 공포하고 ‘대한제국’을 ‘조선’으로 개칭했다. 곧바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제1대 총독으로 군림하였다. 그는 총독 취임사를 통해 이렇게 한국을 협박했다. “조선인은 일본 통치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에 거처하고 있는 온 국민이 분노했다. 예상대로 데라우치는 국내의 언론인을 비롯하여 지도자급 인사들을 마구 잡아들이며 국민에게 가혹한 탄압을 예고했다.
안창호는 이래저래 계획들이 틀어지고 있는 데다 나라까지 완전히 빼앗겼다는 소식에 눈물을 삼켰다. ‘신민회도 청년학우회도 모두 강제로 해산될 것이다. 수많은 동지가 고국을 떠나고 그 가족들은 나라 잃은 난민으로 살아가게 되겠지.’ 안창호가 거국가를 부르며 국내를 빠져나올 때만 해도 만주로 가서 황무지를 개척하고 힘을 길러 독립전쟁의 기초를 닦을 생각이었다. 마침 미주 동지들이 밀산에 땅을 매입하여 힘들여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그곳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비록 큰 기대를 걸었던 이종호의 자금투자가 무산된 상황이었지만, 다시 처음부터 기초를 다져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안창호와 일행은 마중 나와 있던 정재관을 블라디보스토크 군항 해변에서 만났다. 정재관은 이강에게 미리 연통을 받고 안창호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재관(1880~1922)은 황해도 황주 출신이다. 정재관은 1902년 안창호보다 조금 더 먼저 유학을 목적으로 도미하여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정재관과 김성무는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 한인 노동자들을 솔선하여 지도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안창호를 지도자로 내세우고 자신들이 안창호의 생활비를 대겠다고 했던 친구들이다. 모두 공립협회를 발기한 동지들이다. 정재관은 1908년 3월 23일 스티븐슨 기자 처단 사건에서 지도력을 발휘했고, 송석준 후임으로 공립협회 3대 총회장이 되었다. 공립협회가 국민회로 발전되었을 때, 정재관은 국민회 초대 총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밀산 기지 개척 자금을 가지고 이상설과 함께 밀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왔다. 그 이후 이강과 함께 국민회 지방회를 결성하고 이끌었다.
정재관은 안창호가 몹시 보고 싶었다.
“도산, 오셨소! 이게 얼마만입니까?”
안창호도 정재관을 끌어안으면서 반겼다. “총회장님은 어찌하여 미주에 있지 않고 여기에... 하하!”
정재관이 너스레를 떨었다. “꿈에 도산이 나타나 나를 연해주로 이끌었소. 함께 있는 동지들을 소개해 주시지요.”
안창호가 이갑의 손을 이끌어 정재관과 악수시키며 말했다.
“아, 여기 이분이 추정 이갑 형님이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님이라오. 뭐든 해결해 주시는 형님!”
이갑이 껄껄 웃으며 정재관의 손을 잡았다.
“나야 도산이 옆에 계셔야 겨우 빛이 나는 사람이랄까? 재관 동지 반갑소. 그래, 얼마나 외로웠소.”
정영도와 이강도 이들을 지켜보며 유쾌하게 따라 웃었다. 이강은 ‘뜻이 통하는 동지들의 만남은 이렇게 힘이 나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군항 수평선 너머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모두 잠시 말없이 고국 땅을 향해 있는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노을빛이 모두에게 슬프게 다가왔다. 안창호는 이내 이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내내 참았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이강과 정재관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갑도 울고 싶었다. “도산, 도산이 이렇게 약하게 나오면 우린 어쩌란 말이오.”
안창호가 흐느끼며 말했다. “친구들을 보니 엉엉 목 놓아 울고 싶소. 나라가 망했다는데...! 우리 조금만 더 같이 웁시다.”
네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서서 노을을 바라보며 얼마간 있었다.
이윽고 안창호가 말을 꺼냈다. “재관 동지는 이상설 영감 설득이 쉽지 않았겠소.”
평소에도 별로 말이 없는 정재관이 입을 열었다. “여기 낯선 이국땅에서 형님과 만나 이런 시간을 갖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헌데, 형님의 몸이 많이 상한 것 아닙니까?”
안창호가 대답 대신 딴소리를 했다.
“작년에 국민회 자금을 가지고 떠나올 때 밀산 사정은 어떠했소? 김성무는 잘 있소? 이상설 영감이 한흥동 마을을 따로 개척한다고 했을 때 재관 동지가 잘 참은 거요. 결과적으로는 기지 개척 계획에 차질을 빚었지만, 여기서도 이종호가 기부하기로 한 큰 자금이 좌절됐으니....”
정재관은 안창호의 세심한 상황판단에 감탄했다. 자신이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도산은 이미 이상설과의 갈등 상황을 다 꿰고 있었다. 정재관은 마음이 편해짐을 느끼며 말했다.
“이상설 영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황제의 신하요. 황제에 대한 충심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분이지요. 미주 동지들과는 뜻이 달라서 적응이 어려웠을 겁니다.”
이강도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여기 한인사회는 주로 함경도 청년들이 토착 세력 행세를 하고 있소. 그들은 평안도 출신들과 선을 긋고 나선 거요. 그러니 이종호가 아무리 도산과 뜻을 같이하려고 해도 끝내 여기서는 함북파에 넘어갈 수밖에 없을 거요.”
이번에는 이갑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이종호를 좀 더 챙기지 못한 것이 화근이오. 나한테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만. 심성은 나라 사랑에 올곧은 사람인데.”
안창호가 섭섭한 마음을 누르며 이갑의 말에 동의했다.
“내 종호 형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오. 그나저나 뜻이 아무리 좋아도 단결할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애석하오. 나라를 잃은 마당에 우리가 지역 분파로 갈라서다니 결국 일본만 좋게 만드는 꼴이오.”
정재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근에는 기호 사람들도 결속을 따로 하고 있답니다. 참, 지난 6월에 유인석 선생이 이상설, 이범윤과 홍범도, 이진룡을 불러 ‘13도 의군’을 결성하고, 고종 황제께 연해주에 망명정부를 수립할 것을 상소했답니다. 13도 의군에 형님과 이갑 형님 이름도 올라갔지요. 두 분은 국내 신민회를 대표하여 도총소의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안창호가 뜻밖의 소식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13도 의군 통합과 망명정부라... 애국 계몽운동을 중요시해서 신민회와 통합할 뜻으로 나와 이갑 형님을....”
이갑도 뜻밖이었다. “유인석 선생과 이상설 영감은 어디에 머물고 계시오? 찾아가 뵙게요.”
안창호도 궁금했다. “노구에도 의군과 신민회 운동의 통합을 추진하고 독립전쟁 준비라니요. 참으로 위대하신 분입니다.”
정재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강제 병탄되고 만 것이지요. 국가를 상실하지 않았소. 덕분에 일본 밀정들이 활개를 치고 있어요. 소문에 의하면, 밀정들이 안창호가 연해주로 오면 관서인 정당을 만들어 기호를 누른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면서 이간질하고 있다고 합디다.”
안창호는 친구들이 전해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라가 망했는데 동포 간의 단결은커녕 파쟁과 중상모략이 성행하고 있다니.’
안창호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다 내 탓이오. 겸양지덕을 무시하고 내가 너무 앞서 있었던 탓이오. 그러니 어쩌면 좋소?”
이강이 말을 받았다. “이 일이 어째서 도산 탓이란 말이오? 그렇게 자책하지 마오.”
안창호는 듣고만 있었다. 해가 이미 해안 저 너머로 기울어 주변이 어둑해졌다. 저쪽 고국 땅은 수많은 동포의 아우성을 품은 채 기나긴 절망의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강이 정적을 깼다. “도산은 미주로 가오. 여기는 정재관 총회장과 내가 최선을 다해 볼 것입니다. 밀산 기지는 김성무가 잘 지키고 있으니 일단 맘 놓고.”
안창호도 침묵을 깨고 명랑한 소리로 말했다.
“내 조만간 밀산 가는 길에 중근의 동생들과 가족이 머물 곳을 찾아보려 하오. 여긴 위험하다고 하니, 추정 형님이 돕기로 했소. 그리고 내가 러시아에 체류하는 동안 누가 뭐라 하든, 감시하든 말든, 나는 내 행보를 할 작정이오.”
이강이 맞장구를 쳤다. “역시 우리 도산이오. 우리는 우리지 누구겠소. 동포들이 나라 빼앗기고 아우성치고 있는 이때, 장마가 무서워 호박 못 심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요.”
이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이갑이 입을 열었다.
“아우님들 대화에 감동이오. 서로를 격려하고 위해주는 마음. 미주 동지들 분위기가 이런가요? 도산이 늘 강조하던 신성단결. 하하. 중근 가족의 거처는 염려 마오. 어떻게든 내가 마련하겠소.”
정재관도 명랑하게 나섰다. “제가 국민회 동지들에게 미리 전보를 보내겠습니다. 도산 여비를 보내 달라고.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말입니다.”
“총회장, 고맙소.” 안창호는 감동했다. 자신보다도 더 먼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고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