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상처 달래기
1923년 늦가을, 흥사단 천진북경지부는 북경 서직문 밖 해전(海甸) 지역에 45,000평의 농토를 빌려 농업경영에 착수했다. 일찍이 목릉에서 벼농사에 성공 경험이 있는 안정근이 해전농원의 경영책임을 맡았다. 안창호는 북경에서 아신의원을 개원해 활동하고 있던 이자해(1894~1967)를 해전농원으로 보내 안정근을 돕게 했다. 이자해는 평북 중강 출신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중강진 공립병원 의사로 재직했다. 3.1운동에 참여하고 길림성 유하현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서 의료를 담당하면서 서간도 일대에 유명한 의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자해는 안창호를 만나 흥사단에 입단했다. 흥사단 천진북경지부 단소도 해전으로 이주했다. 박일병, 유기석, 이탁, 그리고 대한청년단연합회 총무였던 김승만(1988~1935)과 천진의 김위탁, 이영운도 해전으로 이주했다. 안창호도 이곳에 임시 거처를 정했다.
안창호는 국민대표회의 결렬 이후 다시 민족유일당 운동의 첫걸음으로 이탁을 앞세워 만주지역 군사 통일에 나서기로 했다. 안창호는 제일 먼저 북경군사통일회 박용만과 신채호를 방문하고 향후의 일을 의논했다. 안창호는 임시정부의 대안을 찾아보자고 공을 들여 호소했다. 확고한 신념이 되어 굳어져 버린 생각들이 대화로 쉽게 풀어질 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조선공화국 임시정부 수립을 천명했을까? 그것도 한성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한다면서 이승만은 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가?’ 북경군사통일회는 이미 노령 대한국민의회파와 결합하여 1921년 11월 북경에서 조선공화국 수립을 천명하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안창호는 그들의 행위를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래서 국민대표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합의를 구해나가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1923년 1월부터 열린 국민대표회의를 이탈하여 비밀회합을 따로 열고, 6월 3일 국호와 헌법을 공포한 뒤 조선공화국을 천명했다. ‘조선공화국은 이상룡 선생을 대통령으로 모셨다.’
안창호와 마주 앉은 신채호, 박용만 두 사람은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된 것은 당연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용만은 앞으로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힘을 쏟겠다고 했고, 신채호는 무력투쟁노선에서 대안을 찾겠다고 했다.
국민대표회 본회가 시작될 무렵,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김원봉과 유자명(1894~1985)에게는 ‘의열단 선언’이 되었고, 이회영(1867~1932)과 백정기(1896~1934), 유기석(1905~1980) 등에게는 1924년에 결성된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의 기초 이념이 되었다. 안창호는 이 선언문을 보고 ‘폭력주의를 혁명의 수단’으로 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박용만은 1924년 1월 15일 블라디보스토크 조선공화국 국민위원회에 참석하여 미국을 설득하자고 주장했다가, 그들과 의견이 충돌하여 북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국민위원회마저도 2월 15일 일본의 간교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추방당해 북간도로 이동했다. 국민위원회는 6월에 김규식과 박용만을 축출했다. 이념 조율에 실패했던 것이다.
안창호는 박용만, 문창범과 북경 북쪽 장가구 부근에서 교류하면서 저축회사 설립을 협의했다. 박용만은 20만엔을 투자하고, 문창범은 30만엔, 안창호는 10만엔을 투자하기로 분담했었다. 박용만은 그 일로 하와이에 머물렀다. 안창호도 자금 모금을 겸해서 미주를 방문했고, 1926년 3월 초 상해로 돌아오는 길에 하와이에서 잠시 체류하고자 하였으나 이민국으로부터 거절당한다.
박용만은 1928년 중국국민당과 교섭하여 대륙농간공사를 추진하다가 1천원의 자금을 요구하던 청년 이해명의 총에 맞아 절명했다. 이해명(1896~1950)은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의열단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박용만의 비운 소식에 안창호는 또다시 경악했다. ‘폭력에는 사랑이 없다. 타인에 대한 원망과 증오심을 정의 구현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1923년 11월 하순, 이강이 북경 해전숙소로 안창호를 찾아왔다. 이강은 묵묵히 한국노병회와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했다. 이강은 안창호가 국민대표회의 성립을 위해 쏟아부은 열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안창호는 이강을 보자 울컥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이강이 먼저 화제를 꺼냈다. “도산, 괜찮소?”
“허송세월했소.” 안창호는 그림자 같은 절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허허, 그 일이 왜 허송세월이란 말이오?” 이강은 헛웃음을 지었다.
“몽양에게 할 수 없는 말을 그대니까 하는 거요. 위로가 필요하오.” 안창호는 진심이었다.
“도산답지 않소. 허허.” 이강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었다.
“사실은 목놓아 울고 싶소. 공들여 추진한 일이었는데.... 내가 독립혁명의 명분으로 성심을 다하면 통하는 일인 줄 알았던 거요. 그게 잘못이지.”
안창호는 국민대표회의 진행 과정에서 아슬아슬했던 때마다 자신의 교만을 탓했다.
“결국, 권력의 이해관계 때문일 거요. 진영논리를 확인한 결과가 되었지.” 이강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해관계를 버리고 민주적 공론을 만들어 복종하자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안창호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했다.
“도산한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승만한테 화를 낸 것이니 너무 자책은 마오.” 이강은 그렇게 생각했다.
“세계가 돌아가고 있는 현실이 두려운데 민족끼리 힘을 합하지 못한다면 독립은 요원할 터. 독립운동에 대한 각파의 신념이 정말로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입디다. 토론과 합의 없는 조선공화국 건설은 아주, 나쁜 사례요. 국민의회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안창호가 침울하게 말했다.
“지켜봅시다!” 이강도 국민의회파들이 북경파들과 연합하여 조선공화국을 따로 수립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명백한 반국가 행위이다.’
안창호가 더 깊은 한풀이를 하려다가 말고 문득 화제를 바꿨다. “대독립당 조직을 추진해야겠소. 민족유일당, 민족혁명대당!”
“연해주 원로들이 최고기관에 대한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연해주 청년 다수는 공산당 모험주의로 완전히 기울어졌소. 대화 자체가 어려울 것이오.” 이강이 말했다.
“그래서 김규식이나 여운형이 그들과 대화하기를 바라고 있소. 두 사람 지도자는 공산주의를 잘 이해하고 있으니 대독립당이나 통일전선 구축을 통해 민족혁명과 민족해방 우선을 강조할 것이오.” 안창호는 문득 김규식이 보고 싶었다.
“독립을 이루기도 전에 이념으로 분단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오.” 이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당치국(以黨治國)!” 안창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민족유일당 창당!” 이강이 안창호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큰 소리로 말을 받았다.
“속이 후련하오. 일단 노력은 해 봐야지.” 안창호는 웃었다.
“무슨 예정된 일들이 있소? 나도 나서리다.” 이강이 의기투합했다.
“실은 말이오. 내가 거처를 잠시 이곳으로 옮긴 것은 만주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주 흥사단 동지들과 약속한 것이 있어서라오. 이재수, 박영순 형님들과 임준기가 나한테 중국으로 건너간 김에 농장 땅을 매입하고 근거지를 마련해보라는 특명을 주었소. 그들도 여건이 맞으면 고향 가까이 근거지를 마련해 독립운동에 매진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소.”
안창호는 그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구국모험단 작탄거사를 모의하면서 폭탄 사고 거액의 배상금을 그들의 돈에서 치렀었기 때문이다.
“미주 파차파 캠프를 중국에서도 해 보자는 뜻이오? 파차파 캠프는 이상촌이었소.” 이강은 공립협회 시절이 떠올랐다.
“‘이상촌’이라고 했소?” 안창호가 되물었다.
“그렇소. 파차파 캠프는 한인들에게 이상적인 촌락이었소. 오죽하면 강명화 선생이 ‘도산 공화국’이라고 칭했겠소.” 이강이 그 시절이 그립다는 듯 말했다.
“오, 그렇다면 앞으로 흥사단이 예정한 근거지는 공식적으로 ‘이상촌’이라고 칭해야겠소. 만주 난민 동포 정착지로 개척하려고 했는데.... 이상촌은 사랑이 흘러넘치는 모범촌이 되어야 겠지.”
안창호는 기뻤다. ‘이상촌이 형성되면 혜련도 오라고 해서 같이 살고 싶다!’
이강이 물었다. “여기 해전에 땅을 임대했다는 소식을 들었소. 천진북경지부 단우들이 십시일반한 거요?”
안창호가 말했다. “나도 보탰소. 이곳 흥사단 운동은 안정근이 이끌어 가고 있소. 4만 5천평의 토지는 벼농사를 지을 계획이랍니다. 일본 의전 출신, 이자해를 데려와 병원까지 설립했소. 그나저나 안정근이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하오. 별일은 아니겠지...!”
“오, 정근이 말이오? 목릉 농지를 경작했던 경험이 있으니 잘 해낼 것이오. 내 돌아갈 때 만나보고 가겠소.” 이강은 안정근이 보고 싶었다.
안창호가 말했다. “내가 내무총장 시절에 정근을 너무 괴롭혔나 보오. 북만주와 연해주의 독립군을 추스르는 일은 모두 정근이 소리 없이 해주었소. 이제는 여기서 벼 농장을 경영하면서 심신을 훈련하겠답니다. 상해는 대신 공근이 나타나 김구 형님 가까이 있다고 그러오.”
이강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안창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어디로 보낼 것이오?”
안창호가 크게 웃었다. “보내긴 어딜 보낸단 말이오. 내 옆에 있어 주시오. 하하.”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