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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도시화의 이유 - 인프라

먹고사니즘이 키운 도시, 세 번째 이야기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끝으로 인프라입니다.


도시의 성장은 인프라 구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인프라란 도로, 철도, 공원, 학교, 도서관, 병원, 산업단지 등의 기반시설을 말합니다. 18세기를 전후로 세계 주요 도시들에서 이런 시설이 대규모로 건설되기 시작했죠.


영국령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던 보스턴에는 미국 최초의 공립학교, 최초의 종합대학, 최초의 지하철, 최초의 공공도서관과 대형 공원이 들어섰습니다. 이들 인프라는 지금까지도 남아서 보스턴과 캠브리지를 미국 최고의 대학 도시이자 역사문화 도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암스텔’ 강에 ‘담(dam)'을 지은 데서 유래합니다. 도시의 높이 자체가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였죠. 도시 건설을 위해 네덜란드 사람들은 17~18세기에 걸쳐 바다를 따라 제방을 만들고 도시 중심부를 에워싸는 네 개의 방사형 운하를 두었습니다. 덕분에 암스테르담은 지금도 운하 경관의 도시로 유명하죠.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처음 만들어졌거나 처음 운영된 근대적 인프라를 몇 가지 소개해보죠.


- 1801년 필라델피아 : 미국 최초의 시(市)급 공공 상수도

- 1824년 에딘버러 : 세계 최초의 상설 소방서

- 1830년 리버풀-맨체스터 및 볼티모어-메릴랜드 주 : 영국, 미국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철도

- 1840년 런던 : 세계 최초의 현대적 우편제도와 우체국

- 1844년 홍콩 : 아시아 최초의 현대적 경찰조직

- 1853년 뭄바이 : 아시아 최초의 상업용 철도

- 1872년 도쿄~요코하마 : 일본 최초의 근대적 철도 (도쿄 신바시~요코하마 사쿠라기초)

- 1879년 상파울루 : 남미 최초의 전기 가로등

- 1882년 런던 : 세계 최초의 석탄 기반 전력 발전소

- 1894년 파리 : 세계 최초/최대 규모의 근대적 하수도

- 1897년 보스턴 : 미국 최초의 지하철

- 1899년 서울(한성) : 동아시아 초기의 전기 노면전차


우리나라는 조금 늦은 19세기 후반부터 근대적 인프라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철도가 놓이고, 항만이 들어서고, 공장과 은행이 세워졌죠.


전라북도 군산을 예로 들면, 이 시기에 호남평야의 쌀을 실어 나르는 항구가 만들어지고 군산에서 익산, 전주를 잇는 최초의 포장도로인 전군가도(지금의 번영로)가 놓였습니다. 정미업, 양조업, 수산업, 목재업 관련 공장도 이 시기에 건설되었죠. 일제 강점과 약탈의 아픈 역사와 맞물려 있지만, 이들 인프라는 오늘날까지 남아서 군산의 도시조직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 자본, 인프라의 공간적 집중은 인류의 삶을 도시 중심으로 전환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 요소의 증가가 다른 요소를 밀어내는 제로썸이 아니라 모든 요소의 증가가 선순환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한 예로, 노동력과 임금의 관계가 그랬습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유입되어 노동력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면, 임금은 내려가는 게 상식입니다. 기업주 입장에서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면 근로자의 월급을 많이 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18~19세기 말 유럽의 산업도시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며 노동력 공급은 풍부해졌는데, 근로자의 실질 임금도 계속 올랐습니다. 정부나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데 요구되는 비용인 이자율은 더 내려갔죠.


이것은 노동과 자본 시장이 평형 상태가 아닌, 급속하게 팽창하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일할 사람이 늘어나지만 동시에 생산성, 일자리, 기업의 영업이익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기업은 더 많은 사람을 뽑아서 공장을 쉴 새 없이 가동하는 게 더 이익입니다.


동시에 낮은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본도 풍부해졌죠. 이렇게 노동력의 향상, 실질 임금과 생산성의 상승, 산업투자 활성화, 낮은 이자율의 유지가 지속되는 현상은 영국에서 무려 150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세부 사정은 지역마다 달랐지만, 대체로 당시 급성장한 산업도시들은 역대급 호경기를 맞이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도시가 부유해지는 세부 원리는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사람, 돈, 인프라가 서로 가까워지며 혁신을 통해 경제 활동의 부가가치가 늘어나는 원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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