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도시의 현실을 버티는 법
Written by 김세훈
인구가 줄어들면서 성장에 필요한 임계질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바로 여기서 축소 성장이 중요해집니다. 축소 성장은 인구나 상주 근로자, 고정자본을 줄이면서도 재능의 유동화를 통해 부를 창출하는 전략입니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 2024년 138만 명이던 초등학생 4~6학년의 수는 2033년에는 76만 명으로 45% 줄어들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는 단순히 아이들이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의 소비자와 근로 인력이 동시에 감소한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초등학생 수가 절반 가까이 사라진 시대에 누가 승자로 남을 수 있을까요? 인구도, 소비층도, 근로자 풀도 함께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길을 개척하는 이들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1. 줄어드는 인구에 연동된 사업 부문의 비중을 줄이고, 비(非)인구 분야에서 현금 흐름을 개척하는 사업가
2. 10년 후에도 남아 있을 76만 명의 초등학생 중 적어도 5% 이상이 즐겨 찾는 온라인 컨텐츠를 만들고, 그 플랫폼을 운영하는 디지털 장인
3. 방치된 학교·기숙사·빈 주택·공간 등에 투자해 새로운 일자리나 문화 경험을 창출하는 지분 투자형 크리에이터
물론, 어느 쪽이든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당장 이겨낼 수 없다면 목표에 이르는 길을 조정하며 버텨낼 줄 알아야 합니다. 과거보다 현저하게 작아질 인구와 도시 규모에 맞춰 부의 창출 방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합니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보다 잘못된 판단을 피하며 잘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접근을 "축소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는 흩어져야 생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이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다만, 인구가 줄어들면서 성장에 필요한 임계질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바로 여기서 축소 성장이 중요해집니다. 축소 성장은 인구나 상주 근로자, 고정자본을 줄이면서도 재능의 유동화를 통해 부를 창출하는 전략입니다. 규모는 작아지더라도 ‘연결’을 통해 최소한의 무게 중심을 유지하고, 동일 자원 대비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죠.
이를 위해선 각 개인의 핵심 역량과 기여도가 명확히 드러나야 합니다. 보여주고 싶은 가치가 분명해야만 흩어져 있던 재능이 조직이나 지역 안팎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결국 점점 작아지는 도시에서 우리의 미래는 누구와 어디에서 이런 감각과 역량을 나눌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 지역이나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단순히 인구나 구성원 수가 줄어서만은 아닙니다. 새로운 시도를 이끌어낼 재능과 관심, 의지, 그리고 자원이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 변화의 동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구 자체를 늘리기는 어려워도, 재능을 움직이게 만들어 시너지를 낼 방법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학과 기업들의 변화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대학에서는 교수가 창업하거나 다른 직책을 겸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했습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죠. 서울대학교만 보더라도 최근 5년 동안 교수들이 설립한 기업이 65개에 이릅니다. 캠퍼스에는 교수들이 만든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고, 강단과 경영을 오가는 교수 CEO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교수가 창업하면 회사 지분의 5%를 학교에 제공합니다. 대학은 이를 바탕으로 기술지주회사 SNU 홀딩스를 설립해 유망 기업들에 직접 투자를 하거나 학생들의 창업 활동을 지원하는 데 활용합니다.
또한 200명이 넘는 서울대 교수들은 외부 기업의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업의 경영 전략을 검토하고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업은 전문가의 조언을 얻고, 교수는 현장 경험을 쌓으며, 이들이 받는 보수의 일부는 다시 학교 발전기금으로 환원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재능의 유동화는 대학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구감소 지역에는 은퇴한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육아를 마친 중장년층, 수입 다변화를 꿈꾸는 직장인, 농부나 임·어업 종사자 등 다양한 재능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들이 지역 안팎에서 만나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임팩트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최근 만난 유럽의 한 건축설계 사무소 대표는 직원들이 여러 회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근로 정책을 혁신적으로 변경했습니다. 한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라도 업무에 여유가 생기면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두 회사는 해당 직원과 계약한 시간만큼 급여와 보험을 분담하고, 직원들은 공식적인 N잡러로서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멀티 커리어' 움직임입니다.
이런 방식은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이점이 있습니다. 회사는 더 넓은 인재 풀을 활용할 수 있고, 직원은 업무 포트폴리오와 수입원을 다각화할 수 있습니다. 근무 태만이나 기술 유출, 혹은 저성과자에 대한 관리만 잘 이루어진다면, 유동하는 재능과 잘 연결되는 조직이 성장할 것입니다.
테크 기업의 일하는 방식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업들은 프로그램 개발 시 코드를 최소화하는 '로우코드(low-code)'나 코드 없이 개발하는 '노코드(no-code)'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앱스나 스웨이 AI 같은 도구를 통해 코딩 지식이 없는 비개발자도 개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에 익숙해지면 개발자 영입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으며,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수준 높은 개발 업무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인구가 줄어도 새로운 것을 찾는 사회적 요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전체 소비 규모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이미 풍요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쉽게 포기하거나 편리함의 수준을 낮추지 않으려 합니다. 재정적 여건이 여의치 않다면, 정말 좋아하는 제품을 적게 구매하더라도 ‘오래, 제대로’ 사용하는 것을 택합니다. 의료 서비스도 교육도 최고를 받고 싶어 하죠.
세계 여러 지역에서 연계와 유동화를 통한 크리티컬 매스 키우기가 진행 중입니다. 한 예로 영국 런던의 옥스포드 캠브리지 아크(Oxford-Cambridge Arc) 지역을 들 수 있습니다. 유럽 최고의 대학 도시인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그리고 영국판 신도시이자 2050년까지 인구 41만 대도시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밀턴 케인즈를 결하겠다는 것이죠. 몇 가지 예로,
- 대학의 R&D 생태계와 첨단기업, 스타트업 연계를 통한 혁신 클러스터 강화
- 신도시의 IT, 물류, 핀테크 산업과 전통적 대학 도시 연계
- 옥스퍼드~캠브리지를 잇는 동서 철도 완성
- 아크 지역에 혼재한 농촌과 소도시를 활용해 15분 도시와 복합 커뮤니티 건설
- 영국의 혁신 자금(Innovate UK), 지역성장기금(Local Growth Fund) 투자
- 특수 기술비자(Global Talent Visa) 등 제도를 통해 우수 인력 유치
등이 있습니다.
유럽의 병자, 혹은 브렉시트와 함께 가난해진 나라로 불리는 영국이 도시구조 재편을 통해 기업과 자본을 유동화하고 있습니다. 축소하는 국가 경제를 되살릴 마지막 성장 카드입니다. 외부로부터의 막대한 투자나 외국 기업의 유치 없이 자생적인 힘으로 유럽판 실리콘 밸리를 조성하려는 정책 실험이 영국에서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