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면서 나이드는 도시
Written by 김세훈
인구의 도전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 증가율은 급격히 둔화하고 있고, 인구와 경제규모 성장을 기반으로 짜여 있던 가치사슬은 점차 헐거워지고 있습니다.
한 국가가 현재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출산율을 '대체출산율'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여성 한 명당 2.1명입니다. 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 합계출산율은 1950년 4.84명에서 2021년 2.23명으로 반토막 났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대체출산율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하고 있죠. 2050년에는 1.83명, 2100년에는 1.59명까지 떨어질 전망입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미 경제규모 상위 15개국의 출산율이 모두 2.1명 이하라는 사실입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등 전통적으로 인구와 경제 규모가 모두 큰 나라들뿐 아니라, 인도나 브라질, 멕시코처럼 1인당 GDP가 상대적으로 낮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도 예전보다 아이를 덜 낳고 있죠.
지금의 출산율 하락은 동서양과 경제 규모를 가리지 않습니다. 전 세계는 다 같이 축소의 길로 접어들고 있죠. 이제 작아지는 도시가 뉴노멀입니다.
2022년 세계 인구는 80억 명을 돌파하며 성장을 이어갔지만, 인구 감소의 시점에 대한 초읽기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세계 인구가 감소로 전환되는 시점은 2060년대로 예상됩니다. 불과 40년 뒤에 벌어질 일입니다.
한국의 상황은 특히 심각합니다. 지난 20년간(2000~21)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54곳에서 총인구가 감소했습니다. 이 기간 청년 인구의 감소는 더욱 심각해서 188곳에서 나타났죠. 강원도, 전라북도, 경상북도의 경우 모든 시·군·구에서 청년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광역시인 부산은 39만 명, 대구시는 26만 명, 창원시는 13만 명, 광주시는 8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습니다.
인구가 작은 과소도시(군)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1990년대 진안, 구례, 청송, 무주, 화천, 양구 등에 사는 청년 인구는 1만 명 내외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 지역에서 2~3천 명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 이하의 시·군은 전 국토 면적의 60%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8% 이하입니다. 이 비율은 더 줄어들 전망이죠.
우리나라 보통 사람의 나이가 반백 살에 도달하는 시점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미 2025년 기준 한국의 중위연령은 46.7세인데, 2000년 전후가 30.7세였음을 감안하면 불과 25년 만에 청년 사회에서 중장년 사회로 급변한 셈입니다.
인구 감소와 인구구조 변화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문은 바로 노동 시장입니다. 이제 인재의 안정적 확보는 비즈니스 생존에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구직난'을 넘어서는 '구인난'의 시대입니다.
현실은 냉혹합니다. 기업이든 학교든 자영업자든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적고, 적합한 경력을 갖춘 인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렇다고 지원자 입장에서 구직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은 채용에 더욱 인색해집니다.
대기업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팀원의 연령 구조가 역삼각형으로 바뀌면서 젊은 직원의 수는 줄어드는 반면, 중장년 관리자와 임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직원 입장에서 경력이 쌓이면 더 높은 차원의 의사결정을 주도할 기회가 열려야 하는데, 여전히 신입 때 하던 직무에 여전히 매여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직무 만족도와 경력개발에 대한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죠.
일할 인재의 부족은 특정 기업의 골칫거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도시나 국가 차원에서 다뤄야 할 중대한 문제죠.
얼마 전 파이낸셜 타임즈에 보도된 기사인데, 유럽의 포르투갈에서는 지난 15년간 36만 명의 청년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고국을 떠났습니다. 이에 따라 심각한 두뇌 유출과 노동력 부족이 나타났습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포르투갈 정부는 파격적인 세금 감면을 제안했습니다. 청년 근로자에게 첫해 소득세 전액을 면제하고, 이후 10년에 걸쳐 감액 폭을 조정하며 혜택을 주는 방식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청년들의 소득 일부를 보전함으로써 인재의 이탈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이런 정책의 실효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더 이상 성장만을 목표로 도시가 부를 창출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10년 후 초등학생 수가 절반 가까이 사라지는 시대, 극소수 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시가 작아지고 나이드는 시대에 누가 승자로 남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