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문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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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이자, 면적의 66%가 산지로 이뤄져 있는 지역이다. 즉, 섬이면서 절반을 넘는 면적이 산이다. 남해대교에서 금산자락까지 이어진 남해대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이러한 지리적 특징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해안가에는 민가가 자리하고 있고, 도로는 민가와 산 사이를 따라 흐른다. 산과 산 사이에 마을이, 마을 너머로 바다가, 바다 너머로 해가 비춘다.
다랭이마을이 있는 남면과 금산이 있는 상주면 사이에는 앵강만이 있다. 남해대로에서 앵강만을 만날 때가 바로 ‘아! 내가 남해에 왔구나!’하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산과 산 사이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가 햇볕을 받아 보석을 뿌린 듯 반짝인다. 가장 남해다운 풍경을 꼽아보자면, 바로 산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이다.
남해군 둘레를 따라 드라이빙하는 것도 물론 이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한 방법이지만, 직접 발로 걸으며 느린 속도로 보는 것은 정말이지 특별한 경험이다. 경관자원을 활용한 좋은 사례인데, 남해군에서는 ‘남해바래길’이라는 이름의 걷기길을 잘 조성해두었다. ‘바래’는 어머니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물때에 맞춰 바다에 해산물을 채취하러 간다는 의미이고, 바래길은 바래를 하러 가는 길을 의미한다. 남해군을 둘러싼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로 적절한 표현이다.
남해바래길은 총 길이 240km로, 본선 16개와 지선 4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바래길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각 코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고, 어플의 GPS 기능을 활용하여 걷기 기록을 저장할 수 있다. 코스 별로 완주 메달이 주어지며, 모든 코스를 걸으면 바래길센터에서 완보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바래길만 걸으러 남해군에 방문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보통 완주하는 데 보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작년 12월 말에 남해군으로 이주한 후, 남해에 있는 친구들과 바래길을 걷기 시작했다. 혼자서도 걸을 수 있으나, 대중교통 배차간격이 넓어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 도착 지점에 차 한 대를 놓고, 다 함께 출발 지점으로 가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 걸으면 운전자끼리 다시 차를 타고 출발지점에 가서 놓고 온 차를 회수한다. 보통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하여 점심 즈음 한 코스를 다 걷고, 종료 지점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짧은 코스는 한 시간, 긴 코스는 네다섯 시간 이상 걸린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천천히 걷는 경험은 남해에서 즐길 수 있는 것 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차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풍경들을 찾으며, 남해다움을 발견해보려고 한다. 지역성을 반영한 건축은 운영 중인 ‘건축사사무소 산토건축’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남해의 지역성을 발견하려면 바래길을 걷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도시관측 챌린지를 통해 바래길에서 발견한 남해다움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서울에 있다가 남해에 오면 묘하게 에너지가 넘치고 늦게 자는데, 도시의 리듬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해 지는 시간은 중요치 않고, 지하철 막차 시간에 중요하다. 거리는 밤낮없이 환하고, 실내는 어느 계절이든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따뜻하다. 서울에서의 삶의 리듬은 계절의 변화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남해는 계절이 사람들에게도 진하게 오간다. 관광 산업이 주 산업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전체적으로 활기가 넘치고 묘하게 섬 전체가 들뜬 느낌이 있다. 아무도 양말을 신고 다니지 않는다. 언제든 바다에 발을 담그며 산책하기 위해서다. 일도 많다. 식당에도 손님이 많고, 숙박업소에도 사람이 많으니 단기 일자리도 넘친다. 아침에는 해변요가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오후에는 빵집가서 빵을 구워서 팔고, 낮에는 피자집에서 서빙을 하던 동네 사람이 저녁에는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일도 노는 것도 열심히 하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겨울이 되면 섬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잔잔한 우울감에 침식되어 있다. 운동을 아무리 좋아하던 사람이라도 겨울에는 잘 움직이지 않게 된다. 손님이 줄어드니 다들 외식을 줄이고 긴축 모드로 들어간다. 모든 일이 봄으로 미뤄진다. 그리고 남해를 떠나거나, 떠날 생각을 한다. 여름에는 아무도 남해를 떠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 겨울에 간다.
작년 1월에 와서 사전 인터뷰를 할 때, 사람들은 대체로 이곳에서의 생활에 비관적이고 언제든 떠날 사람들처럼 얘기했었다. 그러나 7월에 와서 본 인터뷰를 할 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올 겨울에 남해로 이주했을 때에는 뭐든 열정적으로 달려들고 싶었지만 사람들과의 온도차가 느껴졌다. 뜨뜻미지근도 아닌, 냉수에 가까운 온도감이었다. 그리고 귀촌한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 또한 남해의 겨울에 적응해버렸다. 얼마나 적응이 잘 되었는지, 차가운 서울 바람 한번 맞고 몸살에 체기까지 올라왔었다. 다시 남해로 내려오니 서울에 간 동안 밀린 일이 많아 또 정신없는 며칠을 보냈다. 몸은 다시 남해에 금새 적응해버려 간절하게 휴식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