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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로컬 크리에이터와 도시재생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권혜인


제조된 음료를 팔아 돈 버는 데 집중하기보다, 커피에 대한 우리의 진심을 보여주자. 세계의 커피 산지에서 들여온 최고의 원두가 한 잔의 커피로 바뀌는 과정을 고객들에게 보여주자

- 모모스커피 이현기 대표



영도는 최근 봉래동을 중심으로 실험적인 로컬 상업 공간이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모모스커피, 무명일기, 삼진어묵, 원지, RTBP 등이 있으며, 이들 공간은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지역성과 브랜드 경험을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모모스커피는 커피 판매를 넘어 커피 문화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물양장을 리모델링해 영도의 바다와 선박을 배경으로 인테리어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삼진어묵은 전통적인 어묵 판매에서 브랜드 체험형 매장으로 변화하면서, 영도의 해양산업과 어묵 공장의 역사를 브랜드 스토리에 녹여냈다. 무명일기는 예술과 로컬 콘텐츠를 결합한 실험적 공간을 운영하며, 문화 콘텐츠를 통해 공간을 재구성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단순한 개인 창업자가 아니라, 지역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소상공인 활동을 실천하는 주체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업 운영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지역 애착은 새로운 경제적·사회적 에너지로 전환되어, 지역이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지속적으로 재생되고 발전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영도의 경우 기존 도시재생 거버넌스에서 주민과 행정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상행위를 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거버넌스의 핵심 주체로 포함시키는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모모스커피, RTBP 얼라이언스, 삼진이음 등의 핵심 주체들은 지역 내에서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 활동하면서도 공공과 협력하여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실 영도의 거점 상업 공간 조성은 도시재생 정책과 맞물려 있으며, 초기 단계부터 행정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블루포트 2021(봉래동 물양장)은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사업(2016~2022)으로 추진되었고, 봉산마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하버하우스’와 ‘와인드’ 카페는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사업 ‘우리동네 살리기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특히 행정에서는 도시재생 공모사업을 통해 많은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지역 활성화의 동력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몇몇 핵심 주체들이 협력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물리적 공간 개선과 더불어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활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양한 상행위의 활력과 함께, 공동체와 민간·행정 부문의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영리와 비영리의 순환 구조가 형성되면서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지역 사회 내 자원과 네트워크를 재분배하는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 민간 주도의 창의적 비즈니스가 지역의 공공 인프라와 연결되면, 지속 가능한 지역 모델이 구축된다. 이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지역 전반으로 경제적 활력을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상권이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았지만, 현대 소비 패턴의 변화 속에서 로컬 상권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과거의 상권은 일정 반경 내에서 형성되는 공간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상권은 온라인에서 입소문이 난 가게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이 아니더라도 소비자들에게 하나의 상권처럼 인식되는 ‘네트워크형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을 활용해 원하는 장소를 검색하고 방문하는 ‘목적지 소비(Destination Consumption)’를 하게 되며, 이로써 기존의 ‘반경 중심 상권’ 개념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대신, 온라인으로 연결된 가게들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주도하면서 ‘디지털 상권’이 형성되고, 새로운 소비 중심지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로컬 상권이 공간적으로 집적되고 보행 연결성이 유지될 때, 점포 간 시너지 효과를 통해 상권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영도에서는 ‘15분 도시’ 개념을 적용해 생활 보행권을 구축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봉래나루로, 대평북로, 절영로, 참샘길, 오동꽃길 등 5개 생활 보행권을 설정하고, 주요 거점 지역과 연계하여 보행 중심 소생활권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분산된 소비 공간을 선형적으로 연결해 보행 중심의 소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로컬 상권이 개별 점포를 넘어 하나의 공간적 생태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현재 영도는 항만 및 도심 공업 지역으로서의 기능이 쇠퇴하고,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 경제적·사회적 활력을 유지하는 과제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인구 감소는 기존의 소비 기반을 약화시켜 전통적 상권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상권이 지역 잠재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기존 도시계획이 빠른 변화를 따라가기 힘든 상황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주도하는 지속적 공간 실험과 보행 네트워크 강화가 공간의 질적 변화를 유도하고, 로컬 상권을 활성화하는 핵심 전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가진 로컬 크리에이터와 상인,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공공과 협력해 형성하는 로컬 상권은 단순한 경제적 기능을 넘어선다. 이는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지역에 대한 애착을 쌓아 가는 사회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더 나은 도시 환경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결국 로컬 상권은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장소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지역적 힘과 에너지를 창출하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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