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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일자리 : 도시의 심장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만드는 요소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만드는 요소는 일자리입니다. 일자리는 다른 어떤 기능보다 훨씬 더 강한 공간적 밀집을 보여 줍니다.



도시가 품고 있는 기능은 주거, 업무, 교육, 상권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의외일 수도 있지만, 다름 아닌 ‘일자리’입니다. “집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라고 물어보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주거도 중요하죠. 다만 도시는 그저 ‘사람들이 사는 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일’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거대한 경제 활동의 무대가 곧 도시입니다.


일자리는 도시의 심장과도 같습니다.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어야 온몸에 피가 원활히 돌 듯, 도시가 활력을 유지하려면 ‘일자리’라는 심장이 힘차게 뛰어야죠. 도시가 숨 쉬는지, 아니면 기운이 다했는지를 알려면 일자리 맥박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주거나 상가도 서로 몰려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는 그보다 훨씬 더 강한 공간적 밀집을 보여 줍니다. 첨단 기업들이 즐비한 거리, 금융·보험사가 빼곡하게 들어선 도심, 그리고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밤낮없이 붐비는 장소는 도시의 진정한 활력을 실감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도시 축소를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지역 소멸의 시계를 늦추려면 공간의 유동화, 특히 움직이는 일자리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가까운 나라 중국의 사례를 살펴보죠. 기업과 일자리의 클러스터 효과가 엄청난 규모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중국 남부의 선전시입니다.


선전은 화웨이, 텐센트, 비야디, ZTE, 마인드레이, SF 익스프에스 등 테크 기업과 첨단 제조업체가 몰려 있는 일자리 천국입니다. 그중에서도 기업이 가장 밀집한 난산구(Nanshan)에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만 200여 개가 있고, 이들의 시가총액은 1조 달러를 넘습니다. 이는 10년 전보다 2.5배 높은 기업 가치를 기록한 셈이죠. 난산구의 1인당 GDP와 가구 소득은 이미 홍콩을 넘어섰습니다. 최근 선전에서 이루어진 R&D 투자는 GDP 대비 약 5%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화웨이가 2022년에 투자한 R&D 비용은 약 1,615억 위안(미화 230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는 애플의 연간 투자 규모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선전에 본사를 둔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2024년 말 기준 총 일자리가 90만 개에 육박합니다. 물론 이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지만, 각각의 역할을 총괄 조율하는 본부는 선전입니다. 2024년 3분기 매출이 테슬라를 제쳤다는 뉴스도 발표되었죠. 전기와 내연기관을 함께 쓰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과 세계 2위의 자체 배터리 생산 능력은 비야디가 독자적인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한 강력한 무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비야디가 선전과 광저우의 다른 기업들과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야디 차량의 자율주행 솔루션에는 또 다른 선전의 기업인 화웨이의 시스템과 통신 모듈이 적용되고, 텐센트의 클라우드 AI와 위챗(WeChat) 서비스가 비야디 차량의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책임집니다. 광저우 자동차그룹과 비야디는 전기버스를 함께 생산하고 있죠. 서로 다른 산업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오늘날의 선전은 ‘실리콘 델타’이자 중국 일자리의 ’새 심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5년 전, 선전으로 이주하는 건 모험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만족합니다. 여기서 제 커리어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니까요.” 《차이나데일리》가 인용한 텐센트 UI/UX 디자이너 인터뷰입니다. 도시의 심장이 힘차게 뛸 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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