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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1)

서울과 뉴욕, 낯섦과 익숙함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정인



“낯섦은 도시를 일상이 아닌 특별함으로 보게 만든다. 내가 도시를 관찰할 때, 의식적으로 가져오는 ‘낯섦’은 나의 눈을, 표현을, 경험을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가져온다. 도시를 나에게 투영함으로써 나를 성장시킨다.

익숙함은 도시를 나만의 장소로 보게 만든다. 내가 도시를 관찰할 때, 의식적으로 가져오는 ‘익숙함’은 그 장소에 쌓여온 나의 경험과 감정, 생각을 가져온다. 나를 도시에 투영함으로써 나를 성장시킨다.

그렇게 낯섦과 익숙함이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도시를 관찰하는 나를, 그리고 도시를 즐기는 나를 성장시킨다.”



도시(都市) :「명사」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
관찰(觀察) :「명사」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 도시 속에서 도시를 보고 있습니다.


가장 일상의 장소가 어디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집’ 혹은 ‘도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도시는 우리에게 집과 같이 일상적이고 익숙한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를 내가 살아가는 하나의 배경이라고 생각하지, 특별한 관찰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시를 볼 때, 특히 도시를 통해 우리의 삶을 보고 싶을 때, 우리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관찰’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명한 소설 셜록 홈즈에서 홈즈는 언제나 관찰에 기반한 추리를 합니다. 그리고 파트너인 왓슨이 어떤 단서를 놓쳤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는 보기만 하지, 관찰하지 않는군. (You see, but you do not observe.)”


홈즈가 말하는 ‘보다’와 ‘관찰하다’의 차이는, 그 안에서 어떤 경험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도시를 ‘관찰’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시의 모든 것은 특별해집니다. 어느 도시든 그 속에 많은 사람들, 건물과 도로, 역사와 미래를 품고 있기에, 모든 도시는 특별하고 새롭고 자극적입니다.


도시를 관찰하는 순간, 그 도시는 나에게 더 이상 일상의 익숙함이 아니라 새로움을 줄 수 있습니다. 도시는 보는 시점에 따라, 관점에 따라, 방법에 따라, 새로운 모습과 가치를 보여줍니다. 도시를 관찰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에서 ‘도시’와 ‘음식’을 많이 비유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아주 일상적입니다. 식사 때마다 음식을 의식하고 평가하면서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식의 즐거움을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보다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맛과 경험을 찾아다니게 되고,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나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려보곤 합니다. 더 심해지면,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낄 정도가 됩니다.


음식에 대해 평가하고 비교해 보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책과 미디어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음식을 관찰하고,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들을 보았고, 그것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즐거움과 경험을 발견하게 해 준 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음식에 대해 진지하게 다가갈수록,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주고 삶을 사랑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 먹는 음식을 먹을 때의 두근거림과, 그 음식이 맛있을 때의 행복감, 그리고 그 맛과 기분을 표현하고 평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익숙한 것을 관찰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 익숙함으로부터 나를 객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놓치게 되는 정보와 감상들, 그리고 익숙하기 때문에 왜곡되는 내 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나라는 관찰자와 관찰대상을 분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낯설게 하기 (Defamiliarization)’ 기법이라고 부릅니다.


‘낯설게 하기’는 20세기에 예술과 문학에서 시작된 창조와 비평 방식으로서, 어떤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만들어서, 그 낯설어진 대상을 다시 천천히 지각해 보고, 그 과정 자체를 예술로서 창조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던 소설도 여러 번 다시 읽다 보면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떨 때는 그것이 아쉬워서 그 소설을 보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이죠.


익숙해져 버린 대상일지라도, 하나하나 새롭게 바라보고, 그것이 주는 발견들을 신선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 우리는 의도적으로 ‘낯섦’을 설정하고, 그 대상을 처음부터 새롭게 경험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익숙한 도시에 대한 낯선 관찰입니다.


다시 음식을 예로 들어보자면, 평생 한식을 먹어온 한국인은 한식에 대해 잘 알지만, 한식을 관찰하는 데는 오히려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맛, 재료, 조리법 등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TV 요리프로그램에서 한식을 평가할 때, 우리가 듣기에 외국인 패널들이 한식에 대해 더 신선하고 인상 깊은 말과 표현을 하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이 ‘낯설게 하기’ 기법이 주는 효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뉴욕의 저명한 요리평론가 피트 웰스 (Pete Wells)는 2023년에 뉴욕타임스 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돼지국밥을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연한 황금색 국물은 마치 밀맥주나 얼음 보리차를 연상시킨다 (its pale gold color suggests wheat beer or the iced barley tea)’
‘돼지 국물에는 소나 닭, 버섯이나 토마토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모든 맛이 들어있다. (The broth tastes of beef, chicken, mushrooms or tomatoes — none of which go into making it.)’
‘이 돼지 국물은 술을 제외하면 내가 맛본 액체 중에서 가장 맛있는 액체일지도 모른다 (The pork broth. I can’t remember the last time I tasted a more delicious liquid that didn’t contain at least some alcohol.)’
‘돼지고기는 이탈리아 파르마에 있는 살라미 가게에서 만든 프로슈토 햄만큼이나 얇게 썰린 어깨살이었다. (The pork, a fat-veined hunk ofshoulder from a Berkshire hybrid, is sliced almost as thin as prosciutto from asalumeria in Parma.)’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음식이 완전히 소화되어 버린 것 같은 경험을 했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세심하게 균형 잡힌 가벼운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즐겁고 건강한 감각을 ‘시원한 맛’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가 음식을 먹었을 당시에는, 그냥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Out on the sidewalk, I found that I was experiencing something like the exact opposite of indigestion. The Korean word for this sensation is siwonhan-mat, a sense of pleasurable well-being from having eaten a light, carefully balanced meal. I learned this later. At the time, all I knew was that I felt great.)’


한국인이 돼지국밥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내리고 신선한 표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돼지국밥은 한국인에게 워낙 익숙한 음식이고, 자연스럽게 ‘걸쭉한 국물’과 ‘시원한 맛’ 등으로 표현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 특별한 의식 없이 돼지국밥에 대한 묘사를 하게 되면 서로 비슷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맥락을 가지고 다시 도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옵시다.


도시 관찰은 나를 도시에 투영하는 행위이고, 동시에 도시를 나에게 투영하는 행위입니다. 도시 관찰에서 대상인 ‘도시’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입니다.


‘낯설게’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은 내가 사는 도시를 관찰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서울에 대해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은 누구보다 서울을 잘 관찰할 수 있을까요? 서울에 사는 사람과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서울은 각각 어떤 도시로 보일까요? 서울에 관광 온 외국인에게는 어떨까요?


한 도시는 하나의 도시가 아닙니다.


백 명이 모여서 한 도시를 관찰하면, 백 가지 다른 모습의 도시가 보일 것입니다. 천만명이 살고 있는 서울은 적어도 천만 가지의 다른 모습의 도시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도시에 대한 나의 관찰은, 도시를 의식적으로 낯설게 바라본다면, 그것은 나만의 관찰이고 동시에 나만의 도시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관찰의 새로움은 ‘낯섦’에서 옵니다. ‘낯섦’의 근원을 이해한다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관찰할 때 마치 여행자의 시선처럼 ‘낯섦’을 가지고 관찰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도시를 경험합니다. 새로운 도시에 대한 경험은 나에게 새롭게 만들어 줄 것이고, 내 삶과 일상의 경험을 바꿀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도시의 ‘낯섦’과 '익숙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두 도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

저자 소개

김정인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가로서 서울의 설계사무소에서 건축 실무를 하였으며, 2013년부터 뉴욕으로 장소를 옮겨 컬럼비아 대학교 졸업 후 뉴욕에서 건축 실무 및 대학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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