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뉴욕, 낯섦과 익숙함
Written by 김정인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서울과 뉴욕 두 도시에 대해 모두 ‘낯섦’과 ‘익숙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20여 년을 살았고, 서울에서 10여 년 동안 20대와 30대 초반을 보냈으며, 뉴욕에서 30대와 40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세 도시를 옮겨가며 일상을 만들어 본 경험이 저에게 도시를 ‘낯설게’ 보는 것과 ‘익숙하게’ 보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열아홉 살의 저에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모든 것이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해도, 거대한 유기체 같은 도시, 무한히 많아 보이는 사람과 장소,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벤트는 저에게 도시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게 만들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압도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관찰하며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서울을 알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카메라를 들고 유명한 장소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고,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서울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하고, 사람들과 모여서 토론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서울의 많은 것들은 하나씩 익숙함으로 변해갔습니다. 더 이상 거리를 걸으면서 주위 풍경에 집중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자동차는 그냥 불편한 혼잡으로만 느껴지고, 랜드마크들은 나와 관계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대학과 회사를 다니며 긴 시간 동안 서울과 함께하며, 서울의 거리와 사람들은 의미를 잃어갔고, 일상을 보내는 데 있어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고 한 달, 한 해가 쉽게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서울이라는 장소가 익숙함을 넘어 지루함을 가져다주기 시작했을 때, 저는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거대한 도시가 주는 그 활력과 희망의 경험을 알고 있던 저는, 신중하게 다음의 도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을 넘어서 보다 더 크고 위대한 도시에서 나를 찾고 싶었습니다. 분명히 새롭고 빛나는 도시, 잠에 들지 않고 언제나 활기찬 도시, 절대로 지루함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도시,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는 도시, 그곳은 바로 뉴욕이었습니다.
확실히 성공한 듯했습니다. 뉴욕은 분명 달랐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거대했고, 대단했습니다. 쌓여온 역사, 깊고 독창적인 문화, 조직화된 구조, 경외로운 랜드마크 등, 도시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경외하는 모든 것들을 뉴욕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인 이 도시는 절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뉴욕에서의 생활이 10년이 지날 때 즈음, 저는 보통의 뉴요커가 되었습니다. 관광지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판타지 뉴요커가 아니라, 뉴욕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며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뉴요커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평범한 날 뉴욕의 평범한 길을 걸으며, 서울에서 10년이 지났을 때 혼자 중얼거렸던 말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은 더 이상 새롭지 않아. 모든 것이 익숙하고 평범한 것 같아.”
서울과 뉴욕 두 도시를 충분한 시간 동안 관찰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처음의 낯섦이 즐거움이 되고, 그것이 익숙함으로 변해서 지루함이 될 만큼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모든 도시는 낯설게 시작하고, 모든 도시는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시의 낯섦과 익숙함을 둘 다 알아야 그 도시를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저는 이 도시가 언제나 신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자극하고 성장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었습니다. 그렇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서울이 내 뒤의 단순한 배경 중의 하나로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저는 그것이 내가 그만큼 긴 시간 동안 성장했고, 서울을 공부하는 것에서 더 이상 새로운 가르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오해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오랜 기간을 보내며, 그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나서, 나는 내가 ‘낯섦’과 ‘익숙함’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낯선 뉴욕도 나에게 익숙함으로 다가올 때가 되어서야, 내가 도시에서 찾아야 하고 도시에서 즐겨야 하는 것은 ‘익숙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익숙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낯섦’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끝없이 새롭기만 한 도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입니다. 그런 도시가 존재할 것만 같고, 책이나 영상에서 보는 몇몇 도시들은 분명히 그럴 것만 같지만, 도시는 혹은 인간은 그런 판타지를 현실에서 용납하지 않습니다.
21세기 현대 도시는 모두 비슷함을 가집니다. 지난 세기를 통한 건축, 토목, 통신과 인프라의 발달은 현대 도시에 필요한 최적의 외형과 시스템을 찾아내었고, 그것은 전 세계 모든 도시에 공유되었습니다. 도시도 건물도 대부분 비슷한 재료와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도 유사한 옷을 입고 같은 전자기기를 들고 다닙니다.
분명 근대 이전의 도시들은 서로 완전히 달랐습니다. 근대 까지는 각 도시들이 도시에 대한 철학이나 목적에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한눈에 볼 수 있는 외형적인 차이로 이어졌었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조선의 수도 한양에 살던 보빙사들이 미국 뉴욕에 방문하였을 때, 그들은 한눈에 다른 세상을 보았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잠시의 뉴욕 방문이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우리는 세계의 도시들이 경제적이나 지리적, 문화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도시 자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한눈에 알 수는 없습니다. 수 세기를 걸쳐 세계의 모든 도시들은 서로 좋은 것들을 공유해 왔고 나쁜 것들은 없애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도시를 관찰할 이유를 빼앗지는 않습니다. 다른 도시를 여행하며 느끼는 경험과 감동을 없애지도 않습니다. 도시는 여전히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이고, 동시에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도시들이 비슷해져 갈수록, 도시 관찰을 통한 개인적 발견은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익숙함은 새로움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새로움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낯섦이 새로움과 동의어도 아닙니다. 새로운 것은 낯설지만, 낯섦은 익숙함과의 비교를 통해서 새로움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도시를 관찰하며 얻을 수 있는 것은 낯설고 새로운 발견뿐만 아니라, 익숙함 속에서의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고, 또한 익숙함 그 자체에 대한 발견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서울과 뉴욕이라는 아주 다른 도시가 가져다준 아주 비슷한 익숙함은 그 자체로서 제 삶의 최고의 자극 중의 하나였습니다.
서울이라는 ‘낯섦’, 서울이라는 ‘익숙함’
뉴욕이라는 ‘낯섦’, 뉴욕이라는 ‘익숙함’
그 두 가지의 강렬한 ‘낯섦’, 그리고 그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저로 하여금 도시를 즐기게 해 주었습니다. 일상에 있어 도시를 관찰하며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충만하고 행복한 경험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낯섦’과 ‘익숙함’ 모두가 도시의 가치라는 것도 알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비유했던 것처럼, 도시관찰은 음식관찰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익숙한 음식도 낯선 음식도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해 줍니다. 익숙한 음식만 먹다 보면 낯설고 새로운 음식을 원하게 되고, 낯선 음식만 먹다 보면 익숙한 음식이 그립습니다. 낯선 음식에 대한 새로운 경험은 익숙한 음식의 가치를 깊이 있게 알도록 해 줍니다. 그리고 익숙한 음식에 대한 오래된 경험은 낯선 음식을 받아들일 때 더욱 빛이 납니다.
‘낯섦’과 ‘익숙함’이라는 두 가지 안경을 모두 가지고 도시를 관찰해 보기를 추천합니다. 각각 다른 두 시선으로 도시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도시를 나에게 투영하는 ‘낯섦’이라는 경험과, 나를 도시에 투영하는 ‘익숙함’이라는 경험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그리고 그 우리와 함께하는 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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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김정인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가로서 서울의 설계사무소에서 건축 실무를 하였으며, 2013년부터 뉴욕으로 장소를 옮겨 컬럼비아 대학교 졸업 후 뉴욕에서 건축 실무 및 대학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