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가 도시를 바꾼다 : 10년의 실험노트 01
큰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아이의 방과후 일과는 엄마들에게 너무 큰 숙제이다. 나도 육아로 조금 뒤로 두었던 일을 다시 제대로 하고 싶어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고, 초등학교는 어린이집에 비해 너무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아들만 둘이라서 그랬는지, 내가 밖을 좋아했던 것인지, 아직 젊어서 체력이 좋았던 것인지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어린이대공원과 중랑천, 동네 놀이터를 쏘다니며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집 밖의 세상을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과 동네를 만나면서 배우고 자라길 바라면서, 방과후 일정으로 학원이 아닌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2010년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마법방과후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하였다.
공동육아는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이 정식명칭이고 당시 내가 살던 광진구에는 영유아를 위한 어린이집 2곳(즐거운어린이집, 산들어린이집)과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후(마법방과후)가 있었다. 명칭에서 보이듯 동네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자는 철학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나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나에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의미를 물으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미혼일 때는 거침없이 직진으로 삶을 살며 내가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의 결과물도 세상도 바꿀 수 있는거란 믿음이 있었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그것이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개인의 삶이 사회의 사회제도와 구조 안에서 얼마나 제한적이고 영향을 크게 받는지 깨닫는다.
건축을 공부하고 도시 공간을 관심 있게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아이가 걸어가는 동네를 들여다보니 너무 위험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나는 어떤 해결을 제안할 수조차 없었다. 매일 어른들이 등하원을 시키고 어린이집, 놀이터와 같이 작고 안전한 공간 범위에서 활동하던 아이가 새롭게 만날 학교와 통학로라는 도시적 스케일의 도시공간들은 규모나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며, 공간이라고 말하기에는 계획이나 고민이 반영된 설계도가 아니라 그저 건물을 짓고 빈 땅일 뿐이었다.
게다가 아이는 학교에 가면서부터 부모보다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고, 배움과 사회적 관계의 중심이 가족보다 학교로 이동한다. 내 아이가 건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면 나와 가족들이 잘 살피는 것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다. 세상 일에 참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교육은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지 묻고 싶은 것부터 나는 어떤 어른인지를 확인하는 어려운 질문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일상적으로는 아이가 학교 가는 등하교길은 안전한지? 매일 먹는 급식은 건강한지?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과 동네의 어른들은 누구인지? 길에서 사먹는 간식은 괜찮은건지? 친구를 만나고 놀 수 있는 장소는 있는지? 등등 온 세상에 대한 걱정과 예민한 감각으로 가득해진다.
공동육아 공동체 안에는 개인적으로는 남자아이 둘만 키우는 아들 엄마에게 아들의 학교생활을 알려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하원하러 가면 엄마가 벌써 온 것이 맘에 안 드는 내 아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친구들과 하던 놀이에 열중하고 있고, 나와 이야기하고 싶거나 나한테 해 줄 이야기(주로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사고 친 이야기)가 있는 친구들이 옆에 와서 앉았다. 이 아이들과의 방과후 한쪽에 앉아 나눈 이야기 시간은 꼭 내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아마 어쩌면 평생 몰랐을지도 모를 학교에서 아이들의 사회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수다쟁이 아이들과 나는 너무 알기 어려운 학교생활에 대해 알려주는 주변의 엄마들이 없었다면 나처럼 내성적인 엄마는 학교를 잘 모른 채 아이를 키웠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더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아마 혼자 아이를 키웠다면 넋두리로 끝났을 꼭 학교 공부는 왜 필요할까? 국어 영어 산수 과목보다 지금 나이 아이에게는 다른 공부가 중요하지 않을까?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학교에서 왜 가르치지 않는가? 와 같은 학교 중심의 교육제도에 대한 이야기부터 왜 아들들은 주머니에 흙을 가득 넣어오는 것인가? 서로 싸우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혹은 몰래 받아 온 연애 쪽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같은 사소한 고민까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드는 오만가지 걱정들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그리고 이런 수다들은 함께 이야기하면서 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한 논의로, 동네의 도시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아이세대의 경험과 특징에 대한 이해로, 여성의 커리어 여정과 가족의 생애주기에 대한 고찰로 확장되었다. 개인의 문제가 공공의 의제가 되는 과정을 온전히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학교에 참여하고 의견을 전하는 여러 방법을 알게 했고, 공동육아의 세시절기 행사를 이웃과 만나는 마을 축제로 확장하게 했다. 함께 살 공동주택을 고민하고,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갈 도서관을 함께 만들고, 안전한 통학로 문제에 꽤나 오랫동안 여러 조직들과 논의 과정을 이어가는 기반이 되었다
혼란스러운 초보 엄마였던 나에게 공동육아 공동체는 개인들의 예민한 걱정들과 사회를 향한 질문들을 어떻게 공공의 담론으로 가져올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방법론을 배우게 했다. 아마 이 공동육아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마을공동체'라는 정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2013년부터 서울시에서 시작된 '마을공동체'라는 정책은 각자의 일상을 공공의 언어로 번역하며 개인이 아니라 마을이라는 연결망 안에 위치하도록 하는 '시민화' 과정이다. 공동체를 통해 "개인(individual)이 시민(citizen)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시민’이라는 단어의 복합적인 의미가 온전히 경험으로 나에게 온 공동육아 공동체 생활은 내가 나와 내 가족에서 사회와 세상, 그리고 동네와 도시를 고민하게 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아 속담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마을이 키우는 건 아이만은 아니다. 그 고민을 하는 마을도, 마을에서 살고자하는 어른들도 키운다.
그렇게 공동육아라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간 마을에서, 나는 비로소 도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