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 - 하시다 스가코 지음
젊은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리 크지 않다."는 취지로 말하면 놀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볼 때가 많다. 50대 중반에 무슨 달관한 듯한 말씀이냐는 의심도 섞여 있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어느 새 아이들은 스무 살이 넘어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도 제 인생은 어떻게든 살 나이가 됐다. 아내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온갖 풍파 다 헤치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내가 좀 더 산다면, 나의 가족들의 인생은 좀 더 편안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것이고 그 순간이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다. 혹시 그런 순간이 갑자기 다가오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는 차원에서 나름대로 죽음을 준비하다 보니 두려움이 조금 줄어든 것 아닌가 싶다. 그간 하고 싶은 일들 하며 열심히 살았고,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으니 여기서 갑자기 삶이 멈춰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못 다 한 일과 그리움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나만 그럴까? 그렇지 않다. 내 주위의 어른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을 리는 없겠지만, 그리 크지 않다. 오래전 외할머니도,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러셨고, 아직 건강하게 살고 계신 주변의 어르신들도 '언제 가도 아쉬울 건 없다'는 취지로 말씀하신다. 나는 그게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운 건 죽기 전에 오래, 너무 많이 아픈 것이다. 그로 인해 가족과 친지들에게 피해를 주고, 재산상의 손해까지 입히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내 정신을 갉아먹거나, 치매에 걸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일이 오히려 두렵다. 병에 가난까지 겹치면 인생이 무너진다. 늙은 배우자가 회복 불능의 배우자를 장기간 보살피다 육신이 다 피폐해지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제 겨우 법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한 존엄사와 아직 불법인 안락사 문제는 이런 차원에서 좀 더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는 게 내 평소의 지론이다.
하시다 스가코의 책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는 일본에서 지난해 발간돼 안락사 문제 등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아흔을 넘긴 작가가 그저 품위 있게 죽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편안하게 적은 글이다. 몹시 무겁고 어두운 내용일지도 모르겠다며 읽기 시작한 책은 그러나, 아흔이 넘은 할머니의 유쾌한 수다처럼 술술 읽혔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의 유쾌한 수다? 아마 상상이 잘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일본 드라마 <오싱>의 작가이고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드라마 집필을 했다는 점, 지금도 해외 유람선 여행을 다닐 만큼 비교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10대, 20대였던 2차 세계대전 때 이미 수차례 왔다 갔다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가부장적 남편'이 약 30년 전 먼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자신의 노년이 더 편했다고 생각하고, 아이가 없어서 지금이 더 홀가분하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다. 그렇다고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거나 미워한 건 아니다. 책 군데군데 남편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배어 나온다.
"다만 아타미의 집에 있으면 남편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이 식탁에서...쓰면 뭐라도 쓰여질 듯한 묘한 자신감이 생기는 이유는 이 집에 남편이 있어서 나를 응원해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편은 때로는 귀찮은 가부장이었지만, 든든한 샐러리맨이어서 할머니가 언제든지 때려치울 수 있다는 기개를 갖고 작가 생활을 하도록 해 줬고, 늘 자신을 응원하던 '내 집의 내 남자'였던 모양이다.
1925년 일본의 식민지였던 경성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은, 일본 최초의 여성 영화 각본가였고 마침내 최고의 방송작가가 되었던, 생각이 깊지만 적어도 글은 제법 수다스러운 일본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나이 90을 넘겨도 시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뭐 젊은 새댁과 비슷해진다. ^^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인지, 남들이 볼 땐 최고의 인생을 살았는데도 자기 삶에 대해서는 '이류'라고 한 대목이 특히 와 닿았다.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일까?
"일류 드라마가 고상한 예술 작품이라면 내가 쓰는 드라마는 전부 이류다. 드라마가 이류라면 당연히 쓰는 사람도 이류다. 나는 이류 인생이며, 일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도 한 적이 없다. 일류가 되면 괴로울 테니까. 아무튼 이류는 마음이 편하다."
하긴 내 인생인들 일류는 분명 아니었고 그렇다고 삼류도 아니었으니, 나도 할머니와 같은 이류인 셈이다. 아무튼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는 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