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박완서의 부엌

호원숙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세미콜론, 2021)

by 얼그레이스콘
엄마는 집에서도 한복 치마저고리 차림에 광목으로 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현대문학》이나 《사상계》를 보면서 잠시 누워 있던 엄마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호원숙, 세미콜론, 2021)



보름 전쯤, 사흘 새벽에 나눠 읽었다. 엉엉 울어본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 느껴질 정도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작고 얇은 책이라 단숨에 읽어주마 덤벼들었던 것이 잘못이었던 듯, 마치 제대로 한대 얻어맞은 것 마냥 머리가 얼얼했다. 눈물 훔칠 때마다 안경을 내려야 하는 것도 힘들어, 아예 책을 코 앞에 가까이 들었다. 차라리 노안이 와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난생처음. 눈물이 책장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간격만 두고서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우습게도 시간이 좀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만큼 울 일이었나 싶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도로 내 기억력이 형편없다. 분명 책을 읽을 때는 온몸을 꼬집듯 사무치는 깨달음이 많았었는데, 고새 까먹었다. 아무래도 가장 바쁜 와중에 전공서 제쳐두고 일탈처럼 읽었던 수필집이라 카타르시스가 더 컸던 탓도 무시하진 못하겠다. 뭐하러 그렇게 울었었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겨두고 싶은 생각들이 있어 적어둔다. 읽었으면 써야 한다.


사실... 호원숙 작가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매스컴의 선전이 하도 요란해 일부러 외면했던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 10주기"라는 띠지가 박완서의 명성에 묻어가려는 출판사의 대단한 장삿속 같아 그냥 싫었다. 더구나 부제도 마음에 안 들었다.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라니. 평소 부엌에 담긴 여성 서사를 거부하는 편이라, 이도 저도 다 탐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되었다. 근거 없이 반감부터 가졌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 책의 곳곳에 나를 대입해 볼 부분이 많아 놀랐다. 가족과 인생에 대한 감상이 음식을 중심으로 서술되는데, 그 좋은 기억은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시던 '7시 30분'처럼 오롯하다. 마치 나도 그 시간 그 집 식탁에 앉아있는 것 마냥 생생하게 읽혔다.


호원숙,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세미콜론, 2021, p.91

부제는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지만, 자신의 요리 일상이 번갈아 나와 마치 과거와 현재가 교차 편집되는 영화 장면처럼 흘러간다. 우연히 시작한 베이킹에 '혹시 내가 소질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장면은, 유튜브로 베이킹에 입문한(?) 나를 보는 것 같아 피식 웃음도 나왔다. 글을 읽으며 울다, 웃다, 오랜만에 나를 비울 수 있었다.


내가 혹시 베이킹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즐기고 있다는 게 든든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루하다면 지루한 남은 인생에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하나 늘어났다는 건 또 얼마나 좋은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생각은, 좋은 글을 읽는다는 건 문장의 수려함보다 그 '생각'에 반하는 것이란 점. 어떤 책에서 가장 감명받는 때는 내 생각과 비슷한 부분을 발견하게 될 때, 타인의 글에 나를 투영해 볼 수 있을 때인 것 같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내내 되새겼다.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어쩜 제목을 이리 잘 지었을까, 그저 감탄할 수밖에.


호원숙,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세미콜론, 2021,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