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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이스콘 Feb 09. 2023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다람출판, 2022)

제자리를 맴도는 고민도 세월따라 사라지겠지.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김미월, 김이설, 백은선, 안미옥, 이근화, 조혜은, 2022, 다람출판)


엄마 읽는 책엔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들이, 이 표지를 보고선 내용을 꽤 궁금해했다.

"글쎄, 네 생각엔 대충 어떤 내용일 것 같아?"라고 되물었더니, "장애인들이 힘들게 사는 얘기?"라며 눈을 동그린다. 아이와의 일문일답은 가끔 꽤 신선한 사고의 전환이 되는데, 이 제목을 보고 '쓰다'를 'write'로 직감한 나와, 'use'로 해석한 아이의 생각이 너무 달라 재미있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는 작가이자 엄마인 6명의 여성들이 육아와 가정, 일의 모순 속에서 살아남았고 또 그러려고 노력하는 글 모음이다. 저자가 여럿이라, 한참 유아기 육아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는 작가, 중고등 어느 정도 키워놓고 보니 한숨 돌린 듯 싶지만 여전히 불안한 작가, 그때도 좌절이었고 지금도 좌절이라 외치는 작가 등, 저마다 구구절절하다. 작가들의 사연이다 보니, 단어 하나하나가 문장 구절구절마다 팍팍 내꽂힌다. 절망과 실망, 무기력과 우울함을 이렇게 우아하게 묘사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육아가 시작되는 순간 반비례의 속도로 사라져가는 자아에 대한 수많은 엄마들의 얘기가 있다. 그걸 소설의 힘으로 풀어낸 것이 <82년생 김지영>이라면, 굳이 픽션의 틀을 씌우지 않더라도 책, 블로그, 유튜브를 통해 비슷한 좌절과 고민의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는 요즘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쓰지 못한 몸'은 작가의 본업인 '쓰기'를 못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그런 날이 길어져 결국 무용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미도 있겠다. 그런 면에선 지원이가 떠올린 use도 이 제목에 내포되었을 것 같다. 밑줄 마구 그으며 읽고싶을 정도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한 대목만 고르기가 너무 어려웠으나, 읽는 순간 정말 내마음이다 싶었던 부분이 아래 단락.


"돌봄은 노동이었지만 일이 아니었다. 이건 시를 쓰는 일과도 비슷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시인은 직업이 아니었고, 내 몫의 육아와 가사 노동을 모두 마치고 가족들이 잘 시간에 시를 쓰는 것조차도 내게는 사치였다. 굳이 정의하자면 나는 가정에서 낮에는 돌봄 노동과 가사노동을 하는 엄마이자 아내였고, 밤에는 쓰는 노동을 하는 나이자 시인이었다. 이 가정에서 나는 전자 때문에 무시당해도 되는 사람이었고, 후자 때문에 비난 받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내 일터는 집이었고 작업실도 집이었고 쉴 곳도 집이었다. 모든 모순이 시작되는 곳도 바로 집이었다."(조혜은, p.164)


한때, 우리 연구실 여자박사들의 이야기를 글로 모아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 적이 있다. (제목은, 언젠가 지도교수님이 세미나 시간에 툭 던지신 <박사, 여자, 근대> ...당시 우리 연구실 박사과정이 대부분 여자이고, 전통건축은 안하고 모두 근대건축만 관심있다는 점을 꼬집으신 거였다.)


하지만 결론이 상상되지 않아 관뒀다. 아이 키우며 학교 다니고 강의 나가며 최종 학위를 얻기까지 저마다의 사연은 눈물 겹겠으나, 이걸 하나로 묶어봐야 자칫 읽은 이들로부터 "그래서 뭐?"라는 평가가 들려올 게 뻔했고, 우리끼리의 마무리 또한 "그래도 화이팅!"으로 끝나게 될 것 같은 느낌도 싫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워킹맘이 있고, 각자의 사연이 있지만, 그 사정들을 늘어놓고 절대적 우위를 평할 수 있을까? "우리 땐 더 했어", 아니면 "나는 더 힘들었어, 그래도 넌 어쩌구..."등의 고생 배틀이 되기 십상이란 점에서 내 고민을 늘어놓기도 들어주기도 가끔 주저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매 페이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면서도 속으론 내심, '그래도 작가 엄마는 글값이라도 받지, 공부하는 엄마는 내 돈 내고 투고해야 한다고!'라는 치사함이 스멀스멀 올라오지 않았는가.


그럼에도불구하고 이책과 같은 글들은, 기록의 측면에서 꾸준히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폭풍같던 시절이 지나가고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저 모든 것이 핑크빛이었다고 회고하긴 허무하니 말이다. ('도깨비'도 아니고...)


공부가 업이 되나 돈이 되지 못하는 위치의 삶이란, 애초에 주변의 이해따윈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답답하지만 반은 적응하거나 반은 포기한 마음으로 가늘고 길게 버티는 훈련을 해야지.

언젠가 동네엄마의 한마디가 꽤 오래 상처가 되었는데, 당시 한 학기 한 과목 강의를 맡고 있다는 나에이런 말을 했다. "어머~ 일주일에 세 시간만 일하시니, 리프레쉬되고 좋으시겠어요!"

그분은 도대체 대학에서 어떤 강의를 들으셨던 걸까.

"나에게도 내가 필요해서, 나는 나를 데리고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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