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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속도로 Feb 04. 2024

가디건 찬가

실용적인 삼계절 메이트

완연한 봄, 가을과 겨울 사이. 한겨울 점퍼 안에도 그가 있었다.


환절기 국민 겉옷부터 12월 정갈한 윗도리까지, ‘카디건’의 바다 같은 활용도는 취향을 넘어, 본의(衣) 없는 옷장을 어딘가 건조하고 의아한 곳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특유의 포근한 감성. 나의 카디건 연대기 첫 장은 학창 시절부터다. 주변 교복 대부분이 와이셔츠에 조끼일 때, 몇몇 신생 학교들은 베스트 대신 카디건을 택했다. 고급스러운 브라운 톤에서는 성적과는 별개로 인텔리 기운이 느껴졌다. 소년, 소녀다우면서도 차분하고 어른스럽다니. 부러움이 애정으로 변하는데 필요한 건 오직 순간이더라.


바야흐로 2024년, 강산은 변했고 내 사랑은 유효하다. 여전히 카디건을 즐겨 입지만 소비 기준만큼은 확연히 달라졌다. 브랜드 네임, 할인율을 최우선으로 여겼었다면, 지금은 ‘잘’ 입을 옷에 카드를 꺼낸다. 수더분하지만 비밀 하나쯤은 있는, 어떤 아이템과도 무리 없이 섞여 고민 없이 손이 가는 그런 옷에.




겨울이 좋다. 추위야 반갑지만, 옷은 고민되더라. 모든 브랜드가 앞다퉈 혜택을 뱉어대는 요즘, 나의 우선순위는 역시나 실용성이다. “1년에 몇 번이나 입을 수 있냐고.” 겉과 속에 두루두루 활용 가능한, 적절한 포인트를 가진 카디건을 찾아 온 플랫폼을 들쑤셨다.


퇴근시간, 청담역을 향하는 발걸음이 어제보다 어둡다. 그림자가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의연한 생김새로. 부쩍 길어진 해를 체감하며 출처 모를, 긍정적인 정서적 환기를 경험했다. ‘또 한 겨울이 가네.’ 자리에 멈추어 최선을 다해 아쉬워했다. 다가오는 패딩의 끝, 서른의 새봄까지 전심으로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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