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 박도순 Feb 20. 2016

[포토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키니코틴엘로렌즈, 민트향니코프리, 아로마파이프. 이쯤되면 무엇을 이름인지 경험(!)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김 씨가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대기실에서 말없이 순서를 기다리던 그가 머뭇거리며 진료실로 들어섰다. 수년간 유지해온 금연이 무너져 흡연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다시 금연을 결심하였다는 것이다.


결심이 무너진 이유를 듣는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여름이었어요. 내 앞에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죠. 담배를 피우며 가더라고요. 뒤따라 걷는데 우산 밖으로 자욱한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냄새가 말이죠, 아주 죽이더라고요. 소장님은 담배를 안 피우니 제 심정을 모를 겁니다. 옥상에 올라가서 딱 한 개비만! 딱 한 개비만! 그랬다가 그만.


몹시 배가 고픈 어느 날, 빵 굽는 가게 앞을 지날 때의 구수함 같았을까. 창문 너머 골목길로 번져가는 갓 볶은 커피 향 같았을까. 나는 여읍여소(如泣如笑)의 심정으로 김 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담을 시작하였다. 개인정보처리 동의서에 서명을 받은 후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와 금연지지자, 혈압과 질병력, 음주와 운동 여부, 과거 금연 시도 여부와 금연 실패 이유 등을 기록하였다.


하루 중 가장 흡연을 참기 힘든 시기는 언제인가, 금연 동기와 자신감, 준비 정도는 10점 만점에 몇 점인가를 묻는 흡연자 평가와 하루에 몇 개비 피우는가, 아침에 일어나 얼마 만에 첫 담배를 피우는가, 금연구역에서 흡연 욕구를 참기 어려운가, 하루 중 담배 맛이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를 묻는 니코틴 의존도 평가 등 모든 항목의 답변도 기록하였다.


김 씨에게 금연보조제를 처방하면서 성공을 위한 격려를 약속하였다. 금단증상이 생길 경우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하라고 권하면서 그를 안아드렸다. 김 씨는 현재 석 달째 금연을 이어가고 있다. 다이어트, 금연,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등.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 흔히 다짐하고 결심하는 약속들이다.


미국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 조사했다는 새해 결심 통계(New Years Resolution Statistics)를 보아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약속 순위를 알 수 있다. 새해가 되면 47% 사람들은 배움과 자기 계발, 38%는 건강과 관련된 결심을 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새해 첫 계획이고 다짐이니 모든 사람이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일진대 8%의 사람만이 결심을 성공적으로 이어간다는 것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오래된 성어(成語)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굳어진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새해’라는 변수로도 넘을 수 없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채(城砦)일까. 결국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삼일 전 습관으로 되돌아가 버리기 일쑤이니, 작심삼일을 백 번하면 일 년이라는 무한 긍정 격려가 때로는 무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결심조차 하지 않는 사람보다 결심하고 다짐하는 사람이 목표를 이룰 확률이 높다는 결과는 큰 위로를 준다. 고추바삭순살, 허니커리통날개치킨, 리얼바비큐, 체다치즈불고기피자. 여기 산골에서는 주문할 수도 없고, 시내로 나가기에는 너무 먼 것이 감사하다. 늘었다 줄었다, 나의 몸무게는 수년째 제자리이다. 더도 말고 딱 3kg만 줄었으면 좋으련만!


올해는 반드시 목표를 이루겠노라고 작심삼월(!) 중이다. 봄이 다가온다. 밤이 깊었다. 불현듯 김 씨 생각이 난다. 치킨도 피자도 아니요, 저녁에 먹다 남은 저기 저 된장국에 새콤한 묵은지 쫑쫑 썰어서, 참기름 한 방울! 쓱쓱 비벼서 뚝딱 한 번 만, 진짜 딱 한 숟가락만, 한 숟가락만 먹으면 안 될까요? 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 23절)

.

.

.


복있는 사람(도서출판 생명의 양식, 2016. 03/04월호)

@부남면 굴암리, 20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