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척이 없다). “안에 계신가요? 진료소장입니다.” 까치발 세우고 몸을 담장 안으로 들이밀었다. 대문 기둥에 묶인 복실이는 꼬리를 흔들어대며 아까부터 짖어댄다. 요 녀석! 네 목소리가 큰가, 내 목소리가 큰가, 내기할까나?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요! 계신가요?” 강씨 이름을 불렀다. 당신은 귀가 어두우니 내 목소리가 안 들릴 수도 있겠다. 소리를 더 높였다. 대문은 안에서 잠겨 있다. 쇠문 고리를 흔들었다. 마당에는 넓적 징검돌 몇 개, 빨랫줄에 비딱하게 기대 누운 장대 나무 끝으로 햇살이 눈부시다. 삐거덕 방문이 열렸다.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하니, “미안하구먼. 들어오지 말고…,” “네?” “약은 거기 대문에 걸린 조마니에 넣고 가시오.” ‘뭐지?’ 요샛말로 갑분싸(!)해지면서 말이다. 기분 참 이상했다. 들어오지 말고 주머니에 넣고 가라니. 이전과 달라진 어르신 태도가 적잖이 낯설다. 조심스럽게 약을 넣고는 돌아섰다.
보건진료소 통합정보시스템 진료대상자 업무 스케줄에 의하면 분명 3∼4일 전에 혈압을 재러 오거나 처방약을 받으러 왔어야 하는 이씨.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전화를 안 받으신다. 출장길에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정방문 길에 올랐다.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르신은 내가 걸어오는 것도 모르고 아래채 한켠에서 달래를 다듬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려도 묵묵부답. 더 다가가니 깜짝 놀라시더니, “작년에 다듬고 남은 것을 흩뿌려놓고 흙을 덮어 줬더니 겁나게 나부렀네. 된장 넣고 지져 잡사봐. 참말로 맛나당게!” 용무를 말씀드리기 전에 한 움큼 달래부터 쥐여주시고는 담배 한 대 물으신다.
서울에 사는 아들딸들이 아침저녁으로 즈그 어매 살아 있나 전화한다는 이야기, 손주가 아홉이라 왔다 가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은근한 자랑, 그란디 시방은 콜라병(?) 때문에 가도 오도 못한다는 이야기에 회관도 문 닫고 동네도 너무 조용해서 영판 사는 것이 심심하다는 이야기.
“장에 가걸랑 간고등어 한 손 사다 주시구려!” 주섬주섬 혈당계 혈압계를 정리하는데 어르신이 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네주신다. 계란 두 판도 추가하신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이른 아침이면 “뜨끈뜨끈한 두부가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돼지고기, 닭고기, 김, 미역, 부산오뎅, 청국장, 양파, 대파가 왔어요!”를 외치며 골목을 누비는 이동슈퍼. 골고루차가 마을에 들어오지 않은 지도 한참이다. 어르신은 병원이라도 다녀올라치면 등에는 가방,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으니 걷기조차 힘들다. 시장에 나가 먹거리를 사서 들고와야 하는 일이 이씨에게는 코로나 이후 힘겨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전(Before COVID-19)에는 대문 앞에 기다리다 트럭이 다가오면 그깟 두부 한 모 사는 일 쯤이야! 계란 한 판, 간고등어가 예외이랴.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하셔도 된다고 하니 이것도 미안하다며 두 손을 저으신다.
마을 어귀로 나왔다. 볕 좋은 지붕 아래 서너 분이 계신다. 한 분은 땅바닥에, 한 분은 너른 돌 위에-유모차는 어르신 옆에-, 한 분은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햇살에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주시한다. “소장~! 콜라병 등께로 가까이 다가오지 마러!” 나는 멈칫했다. 다가오지 말라는 말이 저린 발등을 가시로 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웃자고 허는 얘기네!” 어르신들도 나도 하하하 웃었다. 땅바닥과 돌판과 휠체어 사이를 따로 떨어져 앉아 계신 간격이 눈에 들어왔다. 시키거나 강제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떨어진 저 자연스럽고도 평화로운 거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부르면 다가갈 수 있는 거리. 옆 사람과 속삭여도 다 들릴 만한 물리적 거리. 그것이 가능하도록 작동된 무의식이 조성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멀리에서 바라만 보아야 하니 봄꽃이 더 애닯다. 꽃시절이라 웃고 있어도 마음 밑바닥에는 밟으면 으스러질 것 같은 살얼음이 일렁인다. 정체모를 냉랭함과 불안을 극복하자고 전문가들은 2주, 2주만 참으라고, 다시 2주만 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를 두자고 호소한다. 힘을 모으자고 한다. 마음은 가까이 하되, 움직이지 말라 당부한다. 세상 요란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살랑살랑 산복숭아 꽃망울은 터질 듯 안달이다.
바깥출입이 어렵고 거동이 불편한 재가 노인의 안부를 살피고 건강을 돌보는 방문 간호,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다리 아파 걸어갈 수 없으니 약 좀 갖다 주시게!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하니 약 좀 갖다 주시오! 하루 종일 괭이질에 온몸이 으슬으슬 춥고 쑤십니다. 우리 동네 사람이 보건진료소에 가거든 약 좀 보내주시오. 아프다는 증상 호소에서 상담 전화와 부탁은 늘어만 간다. 게다가 소장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니 찜찜하다고, 대문에 걸린 주머니에 약을 넣어 두고 가라는 ‘적극적’ 비대면 셀프 자가 격리 거리 두기까지 진행 중이다.
코로나 위기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한시적 조치로 조건부 대리처방이 허용되었다. 치료약은 왜 안 나오느냐고, 예방주사는 언제 나오느냐고, 답 없는 질문도 반복된다. 국가 재난이라고 지자체들 긴급 조치도 경쟁하듯 쏟아지고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무주군민에게 10만 원 씩 주겠다는 재난기본소득 지급도 코앞이다. 많은 것이 새로우면서도 어색하게 변해가고 있다. 어쩌면 이전의 일상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은 적응 부전의 암울함으로 들린다. 외줄 위에 앉은 아슬아슬함 속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라는 조언들, 농촌이라고 감염병이 비껴가겠는가.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코로나를 콜라병이라 부른다. 병이 옮을까 무서우니 마당에 들어오지 말라고 금줄 치기 대신, 너에게 다가가지 않을 테니 나에게도 다가오지 말라고 선 긋기 대신, 무주 사람에게 나눠줄 24억 2천만 원 대신, 당신과 나 사이의 빗장이 풀어지길, 천 원에 두부 한 모, 만 원에 간고등어 한 손쯤 집 앞에서 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도록, 이동슈퍼 아저씨의 파랑 트럭이 이 골목 저 골목 누비고 돌아다니길,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기를, 파견 의료진들은 속히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옵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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