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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Feb 27. 2022

눈길을 걸으며

간호일기

눈길을 걸으며


‘아, 정말이지 다시 안 해. 이번에만! 하자’ 서른아홉 번째 슬라이드를 넘기며 다짐, 또 다짐한다. 결기와 밤이 깊어갔다. 지난번 자료 그대로 사용해도 좋겠다는 말씀은 부담을 덜어주려는 교수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년 사이에 보건의료 현장은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고 변해가는 중이잖은가. 전라남도 모 간호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3학년 학생들이 보건소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코로나19 환자 확증으로 실습받기 어렵다는 입장이라 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실습 대신 현장 사례를 듣기로 하신 것이다. 농촌 지역 일차보건의료와 지역사회간호사 역할을 아우르는 토론 수업.


  비대면 줌(Zoom) 방식, 두 시간. 호스트 초대로 온라인에 접속하였다. 잇따라 30여명도 입장하였다. 작은 창이 열리자 이름과 프로필 사진-혹은 배경-이 하나둘 펼쳐졌다. 강의실에서 진행하던 수업과 비교할 수 없는 시공(時空)의 변화 앞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깝게는 50km, 멀게는 2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가지 않아도, 어색한 정장을 입지 않아도, 안방에서 가능한 수업이라니! 모니터 아래로 이불이 펼쳐 있든, 잠옷이 널브러져 있어도 화각 밖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영상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럴 듯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이크를 켜고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공유하였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수강생 중에 누가 집중하고 있는지, 졸고 있는지, 지루해하는지 보이는 것이었다. 오프라인 강의실과 사뭇 다르면서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사이버 느낌이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플랫폼.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 온라인 강의실과 학생들, 그리고 수업 태도. 각자 있는 곳에서 마주하는 비현실적 현실 공간의 새삼스러운 경험이 스스로 신기하여 미소가 지어졌다.


  40여 년 전,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 보건의료 사각지대에 보건진료소가 설치되었다. 운영 배경과 철학, 관련 법규, 무주군 현황과 공진보건진료소 지역주민 특성, 지자체의 코로나19 대응 사례, 자가 격리 경험, 진료 실적과 통계, 유의미한 결과들. 두 시간 동안 펼쳐진 백여 장의 슬라이드는 농촌지역 일차보건의료와 지역사회간호사 역할을 설명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대도시 병원의 임상과 다른 농촌 보건진료소 이야기. 학생들은 강의 소감문을 채팅창에 적어 올렸다. 50대 중반은 훨씬 넘어 보이는 백발의 학생이 눈에 띄었다. 잘못 보았나 싶어 자꾸만 그분(?)에게 눈길이 쏠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퇴임했습니다. 예순네 살이고요, 편입생입니다. 간호학은 공부하면 할수록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워낙 힘들잖아요.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인데다가 머리가 안 따라줘요. 조별 과제해야 하는 경우 동기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나는 그 학생에게 왜 하필 간호학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 돌보는 의료협동조합이 있습니다. 간호학과 졸업 후 저는 그쪽으로 합류할 계획입니다.”


  쪽방촌 사람들,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자, 외국인노동자들. 평소 당신이 존경하는 선생님이 당신의 병원을 내놓고, 기꺼이 재능까지 자원한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선생님 월급은 누가 주는가, 질문으로 이어졌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내놓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정부 지원받을 필요 없고요, 요청도 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런 선생님들이 계시더라고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오십니다. 먹고 사는 일, 왜 걱정이 안 되겠어요? 그런데 그런 염려 없이 살더라고요. 저도 지금까지 한 끼도 안 굶고 살아왔어요. 그분들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간호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사는 게 뭐 별거 있겠어요? 세끼 밥 먹고, 아프면 병원 가고, 병원 못 가면 조금 더 아프면 되겠죠(웃음). 그러나 신(神)이 더 아프게 두지 않더라고요. 그분들이 천사죠. 소장님 강의는 매우 현실적이고 현장감 있게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도전도 받았고요. 고맙습니다.”


  그외 학생들 소감문까지 읽으며 나는 소름을 훑어 내리는 듯한 어떤 전율을 느꼈다. ‘아, 정말이지 다시 안 해. 이번에만! 하자’ 했던 다짐이 부끄러운 훈짐으로 번져왔다. 줌(Zoom) 너머 만학도의 포부 앞에서 나는 어떤 응원의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가르치는 사람이고 배우는 사람인가. 나는 먼저 걸어간 선배 간호사로서 강의라는 이름으로 다가갔을 뿐, 학생들은 산(山)이었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가 격리 중에 겪는 대상자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얼마나 클까요. 우리 간호사들은 그 감정까지 살피고 돌봐야 한다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보건소 실습은 못 나갔지만 진료소 사례들로 생생한 경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 계신다는 것이 보건진료소 간호가 나이팅게일이 말하는 진정한 돌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제가 생각하던 간호‘상(像)’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창밖 눈밭 풍경이 고요 중에 하얗다. 밤새 지상으로 내려온 별가루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눈을 뚫고 걸어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라셨거늘, 학생들은 이미 그들의 방식으로 자-알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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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읍,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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