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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Oct 09. 2022

오미사피엔스

간호일기

오미사피엔스


야야! 내 몸땡이가 좀 이상허다. 콧구녁 쑤신다는 검사 좀 해 봐야겄다, 아들한테 전화했지요. 열이 오르고 한축 나고, 죽는 줄 알았어요. 목도 아프고 목소리는 쇠아서 갈라지고, 가래가 나오고. 큰아가 대전서 검사하는 것을 사 왔드라고요. 두 줄 나왔다고 빨리 보건소로 가자 하드만요. 양성이라고, 그게 뭐요? 저녁 내내 끙끙 앓았다닝게. 남원에서는 전화가 왔더라고요. 직원 하는 말이, 할머니! 그렇다네요. 그래서 내가, 좋은 약 좀 보내주시요, 그랬지. 보건소로 약 보냈으니 잘 드셔요, 하더란 말이오. 날마다 하루 두어 번씩 전화가 와요. 다들 참말로 애쓰등만.


  결국 우리 아들도 걸리고 며느리도 걸리고.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지, 뭔 놈의 염병이 이런지. 몸은 사방이 아프더라고요. 약을 먹응게 입이 마르고, 사람이 등신이 된 거 마냥 우두커니 서 있고 기분이 멍멍해지고요. 밤만 되면 지침이 더 나고 나중에는 귀가 아파서 안 들리고 말이죠. 닷새 정도 지나니 밖으로 나가도 된다고 하더만, 그란디 이웃들헌티 폐 끼칠 깜시 열흘 넘게 방에서 안 나왔어요. 보름 정도 있다 나와 봉게, 완전 딴 시상이 되아부렀더만요. 봄꽃이 언제 피고 지었는지, 천지가 온통 풀색이더라니까(웃음).


  갑자기 환자가 많아져서 그런가? 갸웃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날의 피로도는 확실히 달랐다. 딱히 단정하기 어려웠지만 매우 달랐다. 오후 세 시쯤, 나는 보건진료소 문을 잠그고 소파에 누워 새우잠을 청했다. 끈끈한 물엿에 젖은 몸이 추우욱-축 늘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늘어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적잖은 힘이 필요했다. 눈 뜨니 다섯 시 반. 서둘러 퇴근길에 올랐고 다음 날 출근하였다. 이번에는 목이 아파졌다. 전화 대응이 힘들게 느껴졌다. 두통도 시작되었다. 체온 37.8도. 아무래도 이상했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검사받으러 갑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보건진료소 현관에 안내문을 게시했다. 읍내 모 내과의원으로 달려갔다. 양성이었다. 나는 다시 보건진료소로 돌아가지 못했다. 재택 치료자로 격리되었다. 티메롤이알서방정, 엘도틴, 슈다페드, 투리온, 헥사메딘 0.12% 15mL. 처방전에 적힌 약품명이 낯설었다. 그날 저녁부터는 가래를 뱉고 또 뱉었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고 피곤했다. 밀린 잠을 자라는 몸의 신호인지 자도 자도 졸음이 몰려왔다. 아침 6시 기상이 보통이거늘, 오후 1시로 늦춰졌다. 마당을 잠시 거닐거나 화초에 물을 주었다. 잡초 몇 개 뽑으면 피로감이 몰려왔다. 비대면 재진료를 요청했다. 처방이 바뀌었다.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보고되었을 때 긴장감이 소환되었다. 열흘 정도 지나니 전라북도에 첫 사례가 보고되었다. 200여 일이 지나자 무주군에 첫 확진자가 보고되었다. 코로나19 대응 지침도 부단히 수정 보완되었다. 확진자의 동선이 몇분 단위로 잔인하게 공개되는가 하면, 접촉자는 2주일이나 격리되기도 하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동아리 회원뿐 아니라 가족들의 만남도 제한되었다. 사람이 다가오면 은연중 피하게 되는 기현상도 생겼다. 혹시 나로 인해 피해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염려한 까닭이었다. 이제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추가 예방접종까지 잘 마쳤고, 마스크도 잘 썼는데 왜 걸린 것이냐, 보건진료소에 오신 어르신들은 나에게 물었다. 치료 경험이 있지만 명쾌한 답을 드릴 수 없었다. 하루 백 명 넘게 확진되는 규모에 놀랐지만, 지금은 별로 놀랍지도 않은 뉴스이다. 단계적 일상 회복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는 지나간 2년 반 동안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던졌던가.


기운이 항개도 없고 밥맛도 없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먹어요. 코안이 바짝 말라서 숨을 못 쉬겄더라고요. 콩도 심어야 하고 고추도 심어야 하고 인삼밭도 매야 허는디. 내 몸이, 영 내 몸이 아니고만요.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고, 피곤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습니다. 뭔 약을 먹어야 좋을까요? 약 좀 주세요. 어르신들의 하소연은 이어진다.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오미크론 감염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봄꽃이 피고 지는 동안, 김씨와 나는 방에 갇혀 오미크론과 동행하다 초록 세상으로 나아왔다. 콜라병(코로나19를 지칭하는 말) 앓고 났더니 귀가 멀어진 것인지 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어르신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말씀도, 그토록 좋아하는 카페라테 한 모금 머금으니 담배꽁초 우린 맛이라니. 너희는 이 음식을 먹고 백일 동안 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왜 이 음성이 들려왔는지 모르겠다. 육식동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이라니, 겨울잠 없는 그에게 빛을 보지 말라는 처방이라니.


  감염병의 창궐로 무수한 목숨을 죽음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권력 몰락과 제도 변화를 불러온 역사를 생각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하빌리스에 이르는 동안 인류는 얼마나 많은 질병과 마주했을까. 마스크 쓰기, 손 씻기, 거리두기를 지켜야 했던 지난 팔백여 일은 호모사피엔스에서 오미사피엔스로 진화하기 위한 찰나적 담금 시간이 아니었을까. 나름 최선을 다하여 인내하고도 남은 오미크론 피로와 우울감, 그와 더불어 커피 맛을 탐하지 못하는 나의 혀는 아직 롱홀러(Long haulers)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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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읍,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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