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이리역에서 기차를 탔다. 용산역에 도착했다. 다시 청량리역으로 갔다. 강릉 가는 기차를 탔다. 1988년 5월에 나는 간호과 3학년이었다. 나이팅게일 체전을 준비하는 즈음이었다. 탁구 종목에 자원하였다. 연습 후 탁구장 계단 아래로 내려오는데 두 사람이 올라와 몸을 벽에 붙였다. 가방끈을 길게 멘 파랑 잠바 입은 한 사람. 후배와 같이 올라오던 모습이 기억에 선연한 것은 푸른 색감이 이채로웠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학생! 후배들이 왔는데 저 녀석들이랑 복식 한 게임만 더 하고 가지! 탁구장으로 다시 올라갔다. 첫 만남이었다.
그와 그렇게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무역학과 4학년 복학생. 중앙도서관에 가면 대학 본부 건물 쪽 구석에 틀림없이 앉아 있던 사람. 밤 9시 40분이면 정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 사람. 학교 버스 타고 익산역으로 나가 역전에서 전주행 막차를 타는 그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성실했다. 그는 말수가 별로 없었다. 어쩌다 친구들과 어울려 도시락이라도 먹을 때면, 떠드는 건 늘 나의 몫이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과묵해서 좋았고, 잘 웃지 않는 모습이 귀엽게 여겨졌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나의 눈동자는 그를 찾았다. 보이면 안도했다.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고 내 심장이 더워졌다.
달아오르는 것을 그가 눈치챈 것일까. 그가 나를 피하고 있구나 느껴졌다. 예민한 촉이 작동되었다. 마음은 있으면서 거리두기 하는 모습은 순박했다. 거리는 점점 벌어졌지만 내 마음은 그의 중심부로 들어가 용소龍沼의 포말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고, 무심한 시간이 흘러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혼자 용산행 기차를 탄 것이었다. 35년 전 일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소설 속 그녀가 된 나는 짝사랑에 빠졌다가, 저 혼자 이별녀가 되는 시나리오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부끄러움이 성장하는 동사動詞라면 그즈음 부끄러움은 유아기 수준이 아니었을까.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강릉행 기차 안에서 1박을 했고, 강릉역에서 내린 후 경포대를 향해 걸어갔다. 가는 도중 선교장에 들어갔다. 고택의 품격이 묻어나는 곳이었지만, 천정은 낮고 방은 좁아 어떻게 그 많은 식솔이 살 수 있었을까. 아흔아홉 칸이나 되는 양반집 사람들의 삶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활래정活來庭은 가난한 자취생이 갖지 못한 멋스러움의 풍요를 한껏 드러낸 다른 세상이었다. 동해시까지 어떻게 이동했는지 잘 모르겠다. 두타산頭陀山에 오른 기억이 있다.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독특한 이름처럼 절벽과 계곡에 놓인 큰 바윗덩어리들 생김새는 웅장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명산이었다. 다시 망양정해수욕장 쪽으로 내려왔다. 민박했다. 코펠에 밥을 짓고 묵은김치와 참치로 저녁 식사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울진에서 영덕, 청송을 거쳐 영주 희방사까지 닿았던 3박 4일의 청춘의 그림자. 여행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도서관에서 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안부가 궁금했다. 내 마음은 졸아드는 간장처럼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자취하던 집으로 편지가 왔다. 한 봉투에 다 담을 수 없는 부피였다. 세 통이 한꺼번에 도착하였다. 내가 학교에서 보이지 않으니 나를 찾았노라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등산 장비를 챙겨 지리산으로 올랐노라고 했다. 화엄사에서 쓴 편지, 쌍계사에서 쓴 편지, 천왕봉에서 쓴 편지, 어느 민박집에서 쓴 편지. 그는 머무는 곳에서 바라본 풍경과 자신의 마음을 꾹꾹 담아 보내왔다. 나는 편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추신: 나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다면, 학교 앞 학림커피숍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나오지 않으신다면 이 편지를 끝으로 그간의 감정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는 양복까지 챙겨입고 나와 있었다. 딴사람 같았다.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안녕하세요, 존대했다. 자리에 앉으려고 의자를 꺼내는데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다소 커 보이는 양복이 어수룩해 보였다. 그는 말했다. 이제 앞으로는 제 앞에 앉지 마시고, 식당에 가거나 기차를 탈 때 옆에 앉는 사람이 되어 달라, 그렇게 해 줄 수 있느냐, 고. 그 말이 어찌나 멋진 천둥소리로 들리던지. 옆에 앉는 사람에게는 차별이 없을 것 같았다. 극진한 보호를 받는 기분도 들 것 같았고, 나 또한 내 옆에 앉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야 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세상은 참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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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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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오래되면 힘이 세어질까. 등을 떠민다. 마음마저 흔들었다. 동해 여행을 남편에게 제안했다. 35년 전 나 홀로 배낭을 메고 다녀온 그 길을 당신과 함께 왔다. 나는 삼척 바닷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옛날 받았던 그의 편지는 편지가 아니라 화산에 달궈진 돌이었구나. 돌멩이 하나 나의 심장으로 들어와 용암으로 흘렀구나. 마음 접어야겠다고 향한 동해안은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함이 아니라 그에게로 향하는 길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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