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하다 보니

by 두썸띵

21년부터 노트에 적은 기록물을 SNS로 공개했던 것 같습니다. 벌써 5년 차에 접어들었네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SNS를 통한 개인 브랜딩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따라 또는 되고 싶은 이상향을 그리며 만화를 그리기도 하고 사진이든 영상이든 개인 작업물을 꾸준하게 포스팅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주변에 그림 좀 그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웹툰 작가로 전향하기도 하고, 직접 만든 캐릭터로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어 펀딩으로 굿즈 사업까지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도 지인들을 따라 SNS 계정을 만들어 그림을 올리기도 하고 일상 사진도 올리면서 나름 그 흐름을 타보려고 꽤나 노력했습니다. 주변이 시끌시끌하니 '그럼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당시 이직 2년 차에 급작스럽게 팀을 옮기면서 부랴부랴 적응하던 시기였고 하루하루 번아웃을 버티기도 했던 시기였습니다. 사전 면담도 없었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금요일에 짐을 챙겨 다음 주 월요일에 다른 층에 있는 팀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직을 또 한 느낌이랄까요? 비슷한 업무를 이어서 하는 형태였지만 이전 팀장님과 스타일이 완전 다른 새로운 팀장님, 갑자기 10명으로 늘어난 팀원들까지 바뀐 사람들과 다시 적응하느라 꽤나 애를 먹었습니다. 이전 팀에서 충분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뭔가 부족해서, 팀에 도움이 안 되어서 강제로 옮겨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를 더 옥죄더라고요. 더 열심히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들며 천천히 번아웃이 왔습니다. 긴장되는 매일이 이어지자 시야도 좁아지고 자신만의 일을 잘 꾸려가는 주변 지인들을 보며 나는 아직까지 자리도 못 잡고 붕 떠 있다는 조바심이 저를 조금씩 갉아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SNS에 그림을 올리는 횟수가 줄며 로그인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연 좋아하세요?

우연히 무언가를 하게 됐는데 그게 직업이 되었다던가 이전에는 아예 모르던 분야였는데 하다 보니 전문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저는 우연을 좋아하거든요.

회사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지쳐있는 와중에 부모님의 권유로 가톨릭 교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3~4개월 동안 미사를 듣고 교육을 받으며 숙제도 해야 했는데, 그때 저를 가장 많이 괴롭히던 교리 과제는 '성경 필사'였습니다. 평생 그림 그리고 디자인하느라 연필이든 태블릿 펜이든 펜은 많이 쥐어봤지만 필사를 한 적은 없었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필사는 학생 때 숙제를 안 해오면 선생님이 시키던 *깜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깜지: '까맣게 될 때까지 쓴 종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로, 시험 암기를 위해 특정 내용을 노트나 종이에 빈틈없이 빼곡하게 반복해서 쓰는 학습 방법을 뜻합니다.

충격이긴 했지만 하기로 한 이상 해야 할 일은 해야 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매일 한 페이지씩 성경 필사를 했습니다. 학생 때도 필기 노트가 지저분하기로 유명했던 저이기에 지렁이 기어가듯 꾸불거리는 글씨를 보며 괴로운 날이 이어졌습니다. 매일 날짜를 기입하고 써야 했기에 필사를 위한 시간을 내야 했고, 미루면 미루는 대로 나중에 몰아 쓰느라 괴로울 테니 게을리할 수도 없었습니다. 정말 하루하루 꾸역꾸역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넘어가던 필사 노트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신기하게도 편견이 조금씩 줄어들고 제 생각도 점점 변하게 되었습니다. 문장을 편하고 빠르게 옮겨 적으려면 문장을 최대한 길게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외우느라 잡생각이 줄어들고 오로지 쓰는 것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게 저를 불안감에서 구해줬던 것 같습니다. 머리를 시끄럽게 하던 잡생각 대신 문장들을 옮겨 적는 손, 그리고 펜이 종이를 긁는 마찰 소리가 저를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그릴지, 구도는 괜찮은지, 색감의 밸런스도 생각하며 생각을 쉴 새 없이 하기 때문에 도중에 탈진하는 일이 많았는데 필사는 아무 생각 없이 쓰기만 하면 되니 내가 명상을 한다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게다가 억지로— 시작한 필사가 좋아졌습니다.



다시 로그인

저의 기록은 성경 필사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록 지금은 성당도 안 나가고 성경을 펼치지도 않지만— 필사가 재미있어지니 성경 말고 좋아하는 책을 필사해볼까 하는 생각에 전보다 독서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 권을 겨우 읽거나 사놓고 책장에 껴둔 채로 몇 년이 흐르기도 했거든요. 교리가 끝날 때쯤 제 손에는 다 쓴 성경 필사 노트와 개인 필사 노트 두 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쓰는 재미에 빠져 작은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요. 제가 이렇게나 꾸준하게 뭔가 한 적이 별로 없는데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회사에선 내 의지가 아닌 일 투성이라 괴롭고 힘든 일 투성인데 오로지 내 의지로만 해낼 수 있는 일이 생긴 것이 제게 활력을 주었습니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필사와 일기로 풀고 그렇게 점점 번아웃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일기를 SNS 계정에 업로드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꾸역꾸역 하다 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

전에는 뭔가 꾸역꾸역 한다는 게 괴로운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괴로워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컸거든요. '꾸역꾸역'이란 말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늘 내가 즐거워하는 일만 할 수는 없더라고요. 게다가 과거에 하고 싶었던 일과 지금 재미있게 하고 있는 일이 다르고 이 모든 것은 우연히 알게 된 것들이란 생각에 뭐든 꾸역꾸역 끝까지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괴로웠던 시간이 지나고 진급을 하며 회사에 잘 정착하게 되었고, 동시에 기록인으로써 크리에이터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고비도 있었고 어느 날은 아무것도 쓸 수 없어서 —심지어 문장을 옮겨 적는 일까지도— 괴롭기도 했지만요. 그때마다 저를 타이를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냥 해. 엉망이어도 괜찮으니 일단 하고 생각은 나중에."


제가 만약 교리 과제가 괴롭다고 멈추었다면 당장은 편할 순 있었겠지만 필사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늘 꾸역꾸역 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우연히 누군가의 권유로 기록인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다음은 제가 저질러야만 시작되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제 이야기가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꾸역꾸역 하다 보니 찾아온 기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From. 두썸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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