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자전거, 커피, 농구, 우유

-프롤로그-

by 아인파파

나는 1984년 2월 14일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당시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2살 터울의 남동생까지 6명이었다. 우리 가족이 산 곳은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한 빌라. 그 곳에서 나는 20년을 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과 장소이기에 조용히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본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퇴근길에 빵을 사 오셨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빵 봉지를 건네받아 동생과 함께 골라 먹었다.

"손가락 빵, 소보루 빵, 소라 빵은 내 거"

"팥빵, 크림빵은 너 꺼"

이러면 당연히 싸울 것을 아셨던 아빠는 늘 같은 빵을 2개씩 사 오셨다. 당시의 추억을 떠올려 보고 싶지만, 잘 나갔던 빵집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졌다.


고물상을 하셨던 할아버지는 하루도 쉬는 날을 보지 못했다. 모아 놓은 고물들을 리어카에 싣고, 2km 정도를 이동하셨다. 시간이 되는 날에는 리어카를 할아버지와 함께 밀기도 했다. 어느 날 폐자전거들의 부품을 모아 자전거를 만들어 선물해 주셨다. 기어가 무려 5단이었던 것에 동네 아이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그 뒤로 동네 아이들이 할아버지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엄마가 일을 나가면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배고프지 않냐며, 밥 줄까?라는 말을 지겹도록 하셨다. 당시 마르고, 약해 보였던 나를 더 키우고 싶어 하셨다. 어느 날 할머니가 커피를 타는 법을 알려 주셨다. 할머니가 없을 때 할아버지 커피를 대신 타서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커피 4스푼, 프림 4스푼, 설탕 5스푼 넣고, 물은 컵의 반 정도 넣고, 한 번 저은 다음 가득 채워"

거의 30년이 지나 가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의 커피 맛을 봤다. 달달하니 참 맛났다. 어쩌면 나는 이때부터 단 커피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아메리카노보다 다방커피를 더 좋아한다.


어렸을 때 동생은 참 귀찮은 존재였다. 친구들이랑 놀려고 하면 늘 동생이 따라왔다. 놀이를 하던, 어디를 가던 동생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그런 동생과는 만화를 자주 그렸다. 책에 나온 그림들을 보고서 그대로 따라 그렸고, 아빠에게서 누가 더 잘 그렸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 때 내 꿈은 화가이기도 했다. 집에서 농구를 했던 기억도 난다. 당시 국민학생이었지만 스포츠를 즐겨봤다. 야구부터 축구, 배구, 레슬링까지. 이중 농구대잔치는 나와 동생을 농구의 세계로 빠지게 했다. 방 문 위에 미니 농구대를 설치했고, 하루 종일 뛰어 놀기도 했다. 우리 집이 1층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엄마는 참 많은 일을 하셨다. 그중 우유 배달을 하실 때는 나와 동생이 따라다녔다. 하루 배달을 다 마치고, 돌아올 때는 남은 우유들이 나와 동생 차지였다. 엘리베이터도 없던 아파트 4~5층을 뭐 좋다고 신나게 뛰어다녔을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엄마 일을 빨리 끝나게 해야지"

당시 내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엄마는 계란 판을 찍어내는 일도 했었다. 당시 엄마에게 일을 준 사람이 동네 친구의 엄마인 것이다. 우유배달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존심이 있었는지 엄마가 그런 일을 하는 게 그냥 싫었다.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봤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나의 가족이 바뀌었다. 2013년 10월 19일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고, 2018년 5월 18일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한 가정에서 가장의 길을 걷고 있다. 가족만이 아닌 사는 곳, 사람들, 일 등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바뀐 환경 속에서 잘 적응하고,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근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왜 그때가 한 번씩 그리운 것일까?

큰 성과나 결과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지금과 달리 작은 것에서 느낀 행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행복이 추억이라는 일기장에 쓰였다. 나에게 있어 빵, 자전거, 커피, 농구, 우유는 과거로 돌려주는 타임머신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라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의 과거가 되고, 내일은 모레의 과거가 된다. 과거가 없는 날은 우리가 죽는 날이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는 말은 어쩌면 더 좋은 과거를 만들기 위해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나는 나를 오늘로 돌려줄 나만의 타임머신을 브런치를 통해 만들어 가려한다.

한 부모의 아들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