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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28. 2015

엄마의 흰머리

20대 후반에만 해도 나는 엄마의 흰머리를 뽑아드렸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엄마는 가끔 퇴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미안해하며 뒷머리 쪽 흰머리를 부탁하셨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꽤나 가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 흰머리를 골라내려면 여간해선 힘들었다. 그래도 연세에 비해 흰머리가 몇 가닥 없었던 엄마의 뒷머리.


뒷머리에 난 흰머리를 신경 쓰셨던 것도 어쩌면 나 때문 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앞자리에 앉아계시는 아주머니의 파마머리에서 몇 가닥 솟아 나온 유독 거슬리던 흰머리가 너무 보기 싫어 엄마에게 집에 자식들이 있다면 그런 거 안 챙겨주고 뭐할까?라고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날 이후 유독 신경 쓰시던 엄마.


흰머리를 부탁받은 어느 날 저녁 눈에 보이는 몇 가닥 흰머리만 뽑아드리면 되겠지. 하고 한가닥씩 뽑아나가는데, 감춰진 곳곳에 숨어있던 흰머리들이 보였다. 이런 걸 남겨둘 순 없지 하고 뽑아나가는데


뒤에도 그렇게 많이 있니?

하며 물어보시는 힘없는 목소리. 나는 뽑는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순간 흰머리가 아닌 '지금이 나이에도 흰머리는 같은 또래보다 많지 않다는' 엄마의 달콤한 착각을 뽑아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유독 고개를 내밀고 있는 흰머리만 없애야겠다 했던 다짐도 벌써 5년 전이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 몇 년 사이 확늘어버린 엄마의 머리는 이제 염색약만이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나는이제 어릴 적 사진 속 엄마의 나이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 엄마도 예뻤고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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