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있잖아. 되돌아보니 여러 조각들을 찾을 수 있었어.
동물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이 당연한가에 대해 질문하던, 어쩌면 일찍이 비건이 될 수 있었던 순간의 조각들 말야.
기억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
‘으악!’ 소리와 함께 엄마가 싱크대에서 멀어지며 조리도구 같은 것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던 모습.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싱크대에 담겨있던 건 어느 날은 꽃게였고, 또 다른 날은 고등어나 오징어 같은, 소위 해산물로 통칭하는 물살이들이었지. 엄마는 살아있는 동물을 직접 죽여서 요리할 때 유독 무서워하고 힘들어했어. 난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어. ‘저렇게까지 왜 먹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떠올렸지. 그 막연하고도 소중한 질문은 입 밖으로 꺼내어지지 않았고, 이내 사라졌어. 이게 바로 첫 번째 조각이야.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성인이 되었고, 동물을 왜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어린 날에 끊긴 채로 내 마음 어딘가에 작게 존재하고 있었어.
그러다 어느 식사시간에 먹히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스치듯 나왔지. 그때 엄마는 ‘감사히 먹으면 괜찮아.’라고 했던 것 같아. 과연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 일일까? 동물들은 자기 생을 스스로 내어준 적 없기에 도무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오히려 ‘죄스럽게 먹어야 해.’라는 답을 얻었더라면 어땠을까? 죽임 당한 동물에게 죄스럽고, 죽이는 행위를 포함한 모든 과정을 외주화 하여 그저 편하게 소비만 하면 되는 것에 죄스럽고, 고통을 외면하고 맛있게 먹는 행위에 죄스럽지. ‘감사함’은 식탁 위에 오른 동물의 고통에 대해 숙고하지 않고 고른 틀린 감정이었던 것 같아. 감사함이란 감정에 가리어진 이 죄책감들을 이때 인지했더라면, 좀 더 일찍이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비건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 아마도 이 사건이 두 번째 조각이었던 것 같아.
감사히 먹으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또 몇 년을 보내다 우리의 코코를 가족으로 만나게 됐지. 이때부터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돼. 사랑하는 고양이 코코와,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들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그리고 그즈음에 카라에서 주관한 <식탁 위의 동물들>이라는 주제의 공론장에 참여한 경험과, 영화 <옥자>가 나를 비거니즘 실천의 일상으로 들어오게 했어. 외면하는 마음을 직면하는 마음으로 바꾸려 할 때, 그때부터는 오래 품어왔던 질문에 불이 밝혀지듯 선명해지더라. 이 세 번째 조각을 발견하고서야 나는 동물을 먹지 않게 되었어.
이때부터 엄마와 나는 우연한 계기로 서로에게서 독립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계속 함께 살았다면 엄마도 지금쯤 나와 같은 비건 일상을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 왜냐하면 내가 엄마에게서 발견한 비건 감수성은 아주 오래되고도 꾸준했거든. 엄마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내가 몇 가지 떠오르는 걸 얘기해 볼게.
부엌 방충망에 매미가 붙었던 날에는 ‘매미가 너무 우렁차게 울어서 힘이 들진 않을까, 뭐라도 먹을 걸 줘야 하지 않을까’하며 방충망 사이로 수박을 잘라 놓아줘 보던 엄마의 손길. 집에 벌레가 들어오면 웬만해선 죽이지 않고 휴지에 싸서 베란다 밖으로 놔주던 엄마. 다리를 다친 비둘기가 먹이 활동을 잘 못하는 걸 보고 편의점에 들어가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조금 부스러트려 먹어보라고 놓아주던 모습. 다리를 다친 고양이의 소식을 전했던 땐 ‘어떻게든 치료해 줄 순 없을까 돈은 엄마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구조할 수 있으면 구조해 보라고’ 하던 엄마의 간절한 마음. 마음이 쓰이는 게 힘들어서 외면하고 싶지만, 알아버리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엄마의 성향. 모든 생명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쓰던 그 모습들에서 나는 엄마의 비건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비건이 되었어.
사실 엄마와의 일화 말고도 동기가 된 몇 가지가 더 있어.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환경미화부장을 맡았던 걸 알고 있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는데, 교실 뒤 게시판을 꾸미는 일이 하고 싶어서 지원했던 게 시작이 됐어. 중고등학교 때에는 그냥 남는 자리가 환경미화부장이어서 자원했는데, 고등학교 때 만난 환경미화 담당 선생님이 엄청난 강성이셨어.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들을 아주 철저하게 분리 배출 하도록 하셨는데, 그게 정말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어느새 그 모습이 나에게도 스며들었어.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표어, 포스터 같은 것들을 숙제로 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환경보호 교육을 받다 보니까 환경을 더럽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내게도 강박처럼 자리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쓰레기를 덜 만드는 것, 잘 분리하고 분류하는 것에 집착했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늦게 알게 된 거야. 만일 환경 문제를 육식과 연결하여 교육받을 기회가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두 번째 조각을 찾기도 전에 비거니즘을 따르게 됐을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소’에 관한 이야기야.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는데 친구의 친구가 소를 키워 돈을 번다는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기 소를 사서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서 먹는 소로 판매한다는 이야기였어. 그러면서 ‘소를 키울 땅만 있다면 나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라고 하는 친구의 말에, 나는 무심결에 ‘다른 소는 몰라도 내가 키운 소는 못 먹을 것 같아.’라고 말을 뱉었지.
그 말을 듣고 또 다른 친구가 ‘그럼 너는 이건 왜 먹어? 소도 먹지 말고, 돼지도 먹지 말고, 이것도 먹지 말고, 다 먹지 마!’라고 말했어. 그때 연어가 올려진 초밥을 먹고 있었거든.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명치에 비수가 꽂힌 것만 같았어. 너무 맞는 말이라서. 나의 모순을 친구의 말로써 직면하게 된 그날 밤 나는 많이 아팠어. 실제로 밤새 끙끙 앓다 온몸에 열이 나서 병원 신세를 졌었지. 이날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먹는 동물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나. 나는 그때, 더는 동물을 먹고, 쓰고, 입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돌이켜보니 여러 조각들이 있었네.
앞서 말한 기억들 중 코코와 가족이 된 일을 제외하면 좋은 기억들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몰라.
엄마는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잊으라고 하지만 때로 어떤 좋지 않은 기억들은 오래 갖고 있으면서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아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이 기억의 조각들을 주워다가 손에 쥐고 계속 문지르는 거야. 그러다 어느 날 이 조각들이 내게 큰 깨달음을 주는 원석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거지.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어떤 투박한 경험들을 손에 쥐고 오래도록 문질러서 나침반 삼으려고 해. 그 나침반을 따라 걷다가, 누군가 나처럼 조각들을 찾고 있는 걸 보게 된다면 그에게 작은 조각이 되어 줄 수도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
내가 선택한 나의 신념이 엄마와 이렇게 가까이 닿아 있으니, 엄마도 엄마의 조각들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해.
그래줄래?
2022년
엄마가 찾게 될 조각이 궁금한
딸 올림.
*이 글은 <청년 비건의 시선 작품집>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