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긴 깨달음

열심히 일하되 삶을 잠식당하지 않는 것

by 더블와이파파

처음 사원증을 목에 걸었던 날을 기억합니다. 그 빳빳한 플라스틱 카드는 단순한 출입증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존재 증명서 같았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보상받으리라'는 믿음은 마치 신앙처럼 견고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불을 끄고 나오는 뒷모습이 성실함의 훈장이라 여겼고,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 믿으며 기꺼이 나의 저녁과 주말을 상납했습니다. 하지만 15년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며 깨달은 사실은, 우리가 믿어왔던 '열심'의 공식이 때로는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었습니다.


하나, '열심히'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우리는 흔히 퇴근 후에도 업무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니,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행위가 반드시 업무의 효율이나 성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언제든 연락하면 답을 주는 사람', '무리를 해서라도 일을 끝내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며, 조직 내에서 당연하게 소모되는 존재로 남게 될 뿐이었습니다.

회사는 내가 비운 자리를 금세 다른 이로 채우지만, 내가 비운 나의 삶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회사 밖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살피는 시간이 확보될 때 비로소 내일의 업무를 마주할 건강한 동력도 생겨나는 법입니다.


둘, 충성의 대상을 조직에서 '나'로 옮기기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나를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착각이었습니다. 회사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전략을 수정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유기체입니다. 어제의 공로가 오늘의 안위를 보장하지 않는 비정한 생리가 흐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에너지를 쏟아야 할 곳은 막연한 '조직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어떤 파도가 몰아쳐도 나를 지탱해 줄 '나만의 실력'입니다.


셋,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의 가치

가장 뼈아픈 깨달음은 '시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성과를 위해, 혹은 인정받기 위해 내 개인의 시간을 갈아 넣었을 때, 언젠가는 근사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은 것은 치열했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아니라, 일 때문에 놓쳐버린 소중한 사람들과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아이의 첫걸음마, 부모님의 야윈 어깨, 그리고 정작 돌보지 못했던 나의 마음 건강. 한 번 흘러간 시간은 결코 되감기 할 수 없습니다. 직장은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중요한 공간임이 분명하지만, 결코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물리적 공간의 분리만큼이나 심리적 시간의 분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직장 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달리는 마라톤입니다. 열심히 일하되 삶을 잠식당하지 않는 것, 조직에 기여하되 나를 소모하지 않는 것. 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직장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동시에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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