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코로나 간호사의 목소리 3.
벙어리 간호사들
이 글에선 기자님들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여기 상황이 많이 알려진 것은, 여기까지 뻗은 도움의 손길들을, 힘내서 움직이는 의료진들을 보며 많은 분들께서 안심하실 수 있었던 것은 기자님들의 공입니다. 이 곳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불철주야 애써주신 기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혹시 더 여유가 있으시거든, 꽃피고 햇빛 벙글어지는 병원이 얼마나 예쁜지, 그것도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정말 예쁩니다. 환자분들께 보여드리지 못하는 게 야속할 만큼요. 활찍 핀 꽃들과 솟아나는 새싹들을 보면 환자분들도 얼른 나아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저희를 사람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마구 찍어도 되는 꽃이 아니라, 호오를 가진 사람으로요. 물론 저희는 사진에 찍힙니다. 저희의 말들도 나갈 때가 있어요. 질문들은 단순하죠. 힘드세요? 환자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그러나 저희가 인터뷰하는 내용 중에 저희의 호소와 저희의 생각은 기사로 나오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땀에 젖고 지친 간호사들을 매스컴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저희의 고생은 특정한 형태로 전시될 뿐입니다. 각도 잡아 찍은 꽃들처럼요. 저희가 처음 이 곳에 도착해 근무를 시작한 날 아침, 휴게실에서 아침을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갑자기 휴게실 문이 열리고 남자 둘이 들어와 우리한테 호통을 쳤습니다.
'선생님들 몇 시 몇 분까지 상황실로 오라는 말 못 들었어요? '
'예 갔는데요. 아무도 없던데요? '
'우리가 선생님들 찍으려고 했는데 기다렸어야지! 찾아다녔잖아요! '
우리는 막 혼이 나는데 왜 혼이 나는지 몰라서 넋이 나갔습니다. 그분은 모 다큐 PD였어요. 그분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많은 분들에게 힘이 됐겠죠. 그렇지만 우리한테는 주눅을 줬습니다. 왜 우리가 혼났는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한테 상황실로 오라는 공지를 준 사람들은 왜 우리가 인터뷰를 하게 될 거라는 걸, 취재 대상이 될 거라는 걸 말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자원했어요. 도움을 주고 싶어서 멀리 왔습니다. 하지만 기자 여러분의 기삿감이 되겠다고 자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몇몇 기자분들은 저희 얼굴, 저희의 행동과 식사 장면, 이동 과정을 전부 카메라를 대동하고 따라붙으면서 공공재처럼 마음대로 찍으세요. 누구도 저희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사람들의 알 권리를 위한 프로정신을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저희도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물건처럼 대우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저희를 찍지 마시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전염병으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치료받는 환자들도 기사로 우리 모습을 봅니다. 시민들과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 감사하게 여깁니다. 다만 저희에게 동의를 구해주세요. 여러분들이 저희를 보면, 저희도 여러분을 봅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옹졸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건 하소연이에요. 저는 여기서 일하면서 큰 모멸감을 한 번 느꼈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부터 저희를 따라온 기자님이 한 분 계세요. 그분의 기사가 많이 유명해졌으니 뭐 여러분께서 한번 읽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분은 의사 면허가 있어서 의료봉사자로 병원에 저희랑 같이 있었어요. 저는 함께 일한 적이 없어서 그분께서 이 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분과 같은 분들의 헌신으로 이 곳이 숨을 쉬었다는 것을 알아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저희한테는 왜 그러셨는지 묻고 싶어요.
그분이 여기 도착해서 저희 대표셨던 고연차 간호사 선생님께 '명령' 한 것은 숙소를 알아봐 달라는 거였어요. 병원 측에서 그 기자님을 봉사자로 대구시에 전달하지 않았대요. 그게 간호사들이 기자님 비서 노릇을 해야 할 이유가 되나요?
그분은 병동과 중환자실에 들어와서 병동에 비치된 의료진의 의사소통을 위한 핸드폰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서 본인 핸드폰으로 전송했습니다. 바쁜 간호사들에게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 인터뷰를 따고, 저한테는 친구 어머니가 입원했다며 환자상태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걱정 속에서 기다리고 계실 아드님을 생각해 보호자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설명했어요. 그분께서는 저에게 특별히 잘 봐주세요 하고 가시더군요. 주치의인 줄 알았어요. 환자가 좀 더 회복되면 영상통화 연결을 시키라는 둥 명령도 하고요.
저희는 모든 환자를 공평하고 동등하게 돌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기자님과 친분도 없었던 저희가 그런 명령을 들어야 했는지 모르겠어요.
본인 기삿거리를 수집한 것은, 그래요 그렇다고 치겠습니다.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사용해야 하는 휴대폰을 본인 인터뷰 촬영 용도로 사용하신 것도 그래요 그렇다고 칠게요. 그런데 동의를 구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일을 해야 하는 간호사들에 게요. 왜 저희에게 이렇게 마구 대하세요?
기자님이 말씀하셨어요. 한번 들어가서 두 시간 있는것도 힘든데, 안철수씨는 오전에 두시간 오후에 두시간 두번을 하더라. 존경스럽다. 제가 말했어요. 간호사들은 매일 네시간씩 두시간 간격으로 일해요. 중환자실은 여섯시간도 일해요.
기자님이 대답하셨죠. 선생님들은 젊잖아.
젊음이 한 일은 조금 더 가벼운 일인가요. 그렇지만 저희는 누구보다 무겁게 일했습니다. 저희 간호사들의 25% 정도는 40대가 넘은 선생님들이셨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저희는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제일 긴 시간, 가장 격렬하게 노출되고 가장 큰 위험을 감수했습니다만, 한 번도 불만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의 일이 젊음을 이유로 무시당할 것은 아니죠. 선생님. 같이 환자들을 보는데 누구의 일은 고상하고 고생스러운 일이고 누구의 일은 당연한가요?
저희가 “선생님들은 환자 30분 슥 보고 가지 않느냐, 환자의 몸을 허리 부서지도록 들지도, 손가락이 삐도록 클램프를 돌려대지도, 인력이 없어 10키로짜리 투석액 박스를 두세박스씩 안고 옮기지도, 둔한 손으로 헛손질해가며 약을 준비하고 물품을 챙기지도, 없는 물건을 찾느라 아수라장인 병동을 숨이 차 머리가 아프도록 뛰어다니지도 않지 않냐. 토사물을 받아내고 닦아내고, 가래를 뒤집어쓰면서 석션을 하지도 않지 않냐. 쉬는날 좀 없으면 어때. 우리도 없어. 선생님들은 돈 많이 벌잖아.”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잖아요. 저희의 존중을 원하시면 저희를 존중해 주시기를 바라요.
이후에도 저희에게 기삿거리가 될 만한 내용에 대해 자세히 적어 보내라, 동영상을 본인 핸드폰으로 보내라, 매번 명령하신 것은 정말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기자님은 명령하신적 없다고 하셨죠. 명령형인지 청유형인지 찬찬히 읽어보시고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제가 말씀드렸구요.
이 내용은 개인적으로 항의도 했지만요, 한마디 사과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본인이 쓴 기사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됐다고 하셨죠. 그게 저희한테 사과하지 않을 이유가 되나요?
기자님께서는 2주간 봉사하신 후 이곳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셨어요. 간간히 저희에게 커피마시자 술한잔 하자는 연락을 하시고요, 저는 이게 제대로 자가격리가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보호구를 착용하고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은 자가격리가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알고 있지만요, 자가격리를 하시기로 결정하시고 저희를 왜 자꾸 부르셨는지요. 검체검사도 절대 안하겠다 하신 분께서요. 저희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환자를 직접 보러 나가야 하는 의료진이고, 모든 위험을 피해야 해서 거절했습니다. 섭섭하셨을 것은 알지만요, 사실은 저희가 가장 섭섭했고 가장 실망했습니다.
모든 기자분들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좋은 기자님들이 아주 많고, 정말 많은 좋은 기사들을 쓰신 것을 알아요. 그러나 사람에게서 얻는 상처는 오래 갑니다. 글도 사진도 아주 오래 남지요. 그래서 기자님들께 부탁드려요. 간호사들에게 예의를 지켜주세요. 저희는 의지와 감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말 좀 하지 마시고요.
여러분들의 저희의 목소리를 담지 않는것은 이해하겠어요. 여러분들의 역할이 그것이 아닌 것은 알아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부탁합니다. 저희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