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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Aug 14. 2023

일기 2023-8-13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랜덤 플레이에 걸려 우연히 듣게 된 곡을 한 주 내내 돌려 듣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맞다는 대답을 할 거예요 - 이강승




같이 일하는 친구 둘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한 친구는 미술 전공이고, 다른 한 친구는 요즘 미술사에 푹 빠져 있다. 


'요즘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전시를 하는데 주말에 문화생활 한번 하는 거 어때요?'


날씨에, 일에, 팍팍한 생활이 이어진다 해도 자신을 보듬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짧지 않은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기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꽤 효과가 좋은 것 중 하나가 문화생활이다. 주말은 대부분 여유롭고, 전시회도 꽤 오랜만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다. P인 친구들(물론 나도 P)과의 전시회 관람 약속이라니 기대가 되네. 토요일인지, 일요일인지, 아니 이번 주말인지 조차 명확히 이야기를 안 해 줬지만 난 괜찮았다. 

그러다가 금요일이 되었다. 이번 주라면 오늘 즈음은 연락이 올 테고, 그러지 않으면 이번 주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일 아침에 연락이 올 수도 있잖아?'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친구에게 메시지가 온다. 


'토요일에 봐요!'


평소 같았으면 그 정도로도 충분했을 거다. 하지만, 토요일은 저녁에도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추가 회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몇 시에 모여?'


그러자 조금 포즈를 두고 답이 왔는데,


지금 숨이 턱 막혀서 쓰러질 뻔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또 나는 이해가 가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좋은 음악감상실을 알게 됐는데, 거기도 갈까요?'


전시를 보고 성수동의 맛집을 간다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거기에 음악감상실까지? 아니, 그 동선이 하루에 소화 가능한 걸까?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그런데, 가지 말자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는 이야기.




전시에서 모딜리아니의 '알제리의 여인'이라는 그림에 나도 모르게 끌렸다. 모딜리아니의 초상은 대부분 눈동자가 없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오롯이 받아야 하는 모델의 시선이 버겁고 두려웠을까? 하지만, 전시된 초상화 속의 여인은 눈동자가 그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그녀가 모딜리아니에게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전시회의 출구 뒤쪽에는 굿즈를 판매하는 곳이 준비되어 있었고, 친구들은 무엇을 살지 한참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모두 하나씩 집어 들자 왠지 나도 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옆의 연필을 집어 들었는데, 사고 보니 목공용 연필이었다. 물론 태어나서 나무로 뭔가를 만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음. 

 



읽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놓은 것은 아닌 책들이 몇 권 있다. 그중 하나가 호프 자런의 '랩걸'인데, 오늘 시간이 나서 다시 조금 읽었다.(이런 책은 어디까지 읽었는지 찾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데, 용케 찾아 읽다 보면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삼십 분쯤 읽었을까? 읽는 것을 멈추고 이북 기능을 뒤적뒤적하다가 - 진득하게 읽는 적이 없음 - 옛날에 저장해 둔 인상 깊은 문장들을 보게 되었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물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음.




계속된 장마와 태풍을 지나 요 며칠 맑은 날이 계속되었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오는데 햇살 아래로 매미소리가 엄청났다. 평소에도 그랬겠지만 당연하다 생각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겠지. 하지만, 여름 하면 누가 뭐래도 뜨거운 햇빛과 공간을 압도하는 매미소리다. 이 소리가 없다면 여름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아직 올해 여름은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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