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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Apr 07. 2024

앵콜요청금지

브로콜리 너마저


친구와 나의 일부를 묘하게 공유하던 동아리 사물함에서 꽤 오랫동안 꺼내지 않아 이제는 내 것인지 그 애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물건 같은 곡,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


이 곡의 도입부 기타는 나를 한참 전 모든 것에 서툰 시절로 이끄는 힘이 있다. 




브로콜리 너마저가 '앵콜요청금지' EP를 발매한 것은 2007년이었지만 내가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건 그 후 십 년이 더 지나서였다. 어느 해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즈음 나는 사월이 될 때까지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겨울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그건 확실하게 기억난다. 봄이겠거니 하고 조금 얇은 옷을 입고 나가면 하루종일 기분 나쁘게 온몸이 으슬으슬했고, 집을 나설 때 온기가 느껴져 이제 봄이 오나 보다 하면 오후에 비가 내려 지면의 온도를 끌어내렸다. 이 정도면 지구가 다시 빙하기로 접어드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러던 어느 날 몇 개월 동안 꼭꼭 닫혀있던 방의 창문을 살짝 열었는데, 그 틈 사이로 엄마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그 바람은 창 바깥과 방 안을 하나로 이어주었고, 하나가 되어버린 그 공간은 이미 봄으로 가득했다. 그때 책상 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곡이 '앵콜요청금지' 였다. 


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만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바라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갈 미련인 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바라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갈 미련인 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아무래도 네가 아님 안 되겠어
이런 말하는 자신이 비참한가요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가 좋을 것 같아요


가슴 아픈 이별노래였지만, 내겐 이 곡이 지긋지긋한 겨울이 더 이상은 봄을 넘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겨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은 물론이다. 그때부터 이 곡은 내 여러 플레이리스트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끈질긴 겨울은 그 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긴 했지만, 이 곡의 남자는 다시는 그녀를 만나보지 못했겠지. 


악기와 보컬 트랙 사이로 종이 한 장 밀어 넣을 공간조차 없는 요즘 음악도 매력 있지만, 나는 우주공간이나 양자진공*(양자 필드 이론에 의한 양자 사이의 빈 공간) 사이를 유영하는 것 같은 여백 가득한 음악을 더 좋아한다. 전자가 대형 콘서트의 관객이 된 느낌이라면, 후자는 작은 무대지만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다고 할까? 아무래도 관객보다는 주인공이 더 멋지다.

그런 음악을 들으면 가끔 매끄럽지는 않지만 예쁜 모서리 같던 옛날의 나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어설프긴 했지만 나름 괜찮았던 나. 홍대 극동방송국 아래쪽 블루스하우스에서 해가 질 때까지 록음악만 들었던 건 조금 말리고 싶지만, 다 잘 될 거라고 토닥거려주고 싶어 진다. 물론 그다지 잘 되지는 않았음.




올해도 과거의 그때처럼 겨울이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삼월부터 '앵콜요청금지'를 시간 날 때마다 돌려들었더랬다. 겨울을 빨리 밀어버리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서 계속 봄을 기다릴 수 있게 힘을 준 곡. 보편적 예술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 음악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치유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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